누군가에겐 당연한 세상- 양 미 영 조선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년
2024년 12월 24일(화) 00:00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조선시대 여성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서 모임을 꾸렸다. 가사노동에 익숙해진 여성들이 한글 창제 이후 평등한 언어 위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정점이 된 시기는 바로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부터였다. 일본에 진 빚을 갚아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공론이 형성됐을 당시, 집회에서 제시한 보상금 마련 방식으로는 3개월간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그 돈을 모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때 담배는 남성들만 향유하는 기호품으로써 이러한 결정은 남성만 국채보상금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여성 배제 논리에 격분한 여성들이 일어나 여러 단체를 설립해 여성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취지서를 발표했고 이 시기에 생겨난 여성 단체는 전국에 30개가 넘었다.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여성 공론장을 시작으로 여성 대학은 출발했다. 이름만 남녀공학인 남학교에 가지 않아도, 양성평등이라고 외치는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임원이 남성이어도, 여성 대학 안에서만큼은 이러한 규범에서 자유로움을 얻었다. 공용화장실에 구멍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은 삼가야 하며, 때론 아무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하는 세상이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 균형이 흐트러진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시초로써 여성 대학은 기능한다. 사회인이 되기 전 여성들로 가득하고 서로가 안전을 지켜주는 세상 속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 기울어진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거듭해서 얻어낸 산물을 누구나 배움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이유로, 떨어지는 학령인구 문제로 여성 대학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단순히 공학 전환이 학령인구 감소에 있어 당장 나은 대안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태임에도 그저 여성 대학만 문제시 삼는 건 되려 역차별이 아닐까.

학령인구에 따른 문제는 되려 자율형사범고등학교(이하 자사고)에서 일어난다. 현재 자사고의 비율을 보면 전국에 있는 34개의 자사고 중 남녀공학과 남고는 각각 16인 반면, 여고는 2곳뿐이다. 이 말인즉슨 남학생이 자사고를 진학할 때 총 32곳의 선택지가 있지만, 여학생은 그에 절반에 가까운 18곳만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서울 소재 자사고로 좁히게 되면 성비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남성이 갈 수 있는 자사고는 15곳(남고 11곳, 공학 4곳)인데 반해, 여학생은 여고 2곳을 포함해 자사고 6곳에만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남녀공학임에도 불구하고 남녀 학생 선발 비율에 차이를 두는 학교도 있다. 남고였던 전북의 모 자사고는 남녀공학으로 전환했음에도 몇 년간 성비를 2대 1 성비로 차별을 둔다.

이외에도 여전히 사회에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젠더 문제가 곳곳에 놓여있다. 여대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에도 단순히 여대의 투쟁이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여성의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잇따랐는지 생각해보자. 긴 역사 속 수많은 투쟁의 결과를 여대 무용론에 마주 선 이유로, 비논리적인 혐오 담론을 수용하는 것은 그저 과거 지향점으로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세상이 다른 이들에겐 투쟁과 시위 끝에 겨우 얻어낸 노력의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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