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언어 ‘사물의 초상’을 만나다
‘ACC 포커스’ 구본창 개인전
22일 개막…내년 3월 30일까지
조선 백자·신라 금관 등 유물연작
한강·안성기 등 인물 초상도 전시
2024년 11월 19일(화) 19:50
구본창 사진작가의 전시가 ACC 복합전시관 3·4관에서 오는 22일부터 내년 3월 30일까지 열린다. 도자기와 왕관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연말과 올 봄까지 개최한 전시는 지나온 발자취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번에 ACC에서 다시 대규모로 전시를 열게 됐는데 공간의 크기에 압도됐어요. ‘여기서 어떻게 전시를 해야 할지’라는 고민을 했어요.”

한국 현대사진의 선구자로 일컫는 구본창 작가. 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이강현, ACC)에서 개인전(22일부터 내년 3월 30일까지)을 연다.

2024 ACC 포커스 ‘구본창: 사물의 초상’ 개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구본창 작가를 만났다.

이번 전시는 ACC가 세계적인 아시아 현대미술 거장을 소개하는 시리즈 ‘ACC 포커스’ 일환으로 기획됐다. 첫 예술가로 한국 현대사진의 선구자인 구본창 사진작가를 초대한 것. 특히 이번에는 미공개 영상 작품 ‘코리아 판타지’가 최초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자주색 자켓에 검은 뿔테 안경, 희끗희끗한 머리는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났다. 학자의 분위기도 배어나왔는데, 평생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에게서 느껴지는 아우라였다.

구본창 작가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테마를 했는데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다”며 “작업한 것 가운데 사물에 집중을 해보면 충분히 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사물은 그 자체 존재 외에도 바라보는 자, 소유하는 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환기한다. 거대서사와 미시서사는 물론 그 안에 한국성과 아시아적 정서를 담고 있다. 특히 구 작가의 사진은 피사체의 물성과 그 내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물을 촬영했음에도 초상사진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전시 작품은 사진 외에도 영상 등 다양하다.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아” 98년 개인전 당시에도 영상을 촬영한 적이 있다. 특히 이번 작품 가운데 한국 고유의 단청은 영상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구 작가는 “단청에 숨어 있는 리듬 같은 것을 좀 더 다이내믹하게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했다”며 “대형 스크린 안에 펼쳐진 단청은 색깔과 형태를 반복적으로 바꾸며 강렬한 패턴을 리드미컬하게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그가 우리 한국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넘어 천착을 하게 됐던 것은 70년대 독일 유학 당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정서’ 때문이었다.

“외국인 친구들이 제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줄로 알고 있었어요. 한국의 문화는 뭐가 있을까, 한국적인 것을 찾아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었죠.”

이번 전시장에 ‘한국적인 작품’이 많이 걸려 있는 것도 그런 연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언어는 그의 렌즈를 통해 다양한 해석으로 전이된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역사를 품은 사물에 숨결을 입히다’는 역사적 배경을 품은 유물을 만난다. 한국전쟁유물, 조선백자, 신라 금관 등 유물 연작을 영상과 설치작품으로 변주했다. ‘백자 연작’은 해외로 유출된 백자를 촬영한 작품들로 구성해 10미터 높이의 ACC 전시장에서 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족자 작품으로 천장에 매달린 백자들의 모습은 그 영혼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장면을 연상시킨다.

2부 ‘일상 속 사소한 사물을 발견하다’는 구 작가가 발견한 사물 연작이 주제다. 소장품을 촬영한 ‘컬렉션’을 비롯해 15세기부터 프랑스 고건축물의 장치인 샤스루를 담은 ‘샤스루’, 빈 상자 혹은 비어있는 공간을 주목한 ‘인테리어’와 ‘오브제’, 일상 사물인 ‘비누’ 등 다양한 연작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3부 ‘구본창의 시선과 마주하다’는 피사체가 됐던 수집품, 대중매체와의 협업 작품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동안 촬영했던 작가 한강, 배우 안성기 등 예술인들의 인물초상작품을 전시한 공간이다.

구 작가는 한강 작가 사진을 촬영했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한강 작가 사진은 지난 2003년도에 촬영한 작품입니다. 당시 어느 단체에선가 영화감독, 기업인,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앞서가는’ 여성들을 선정했죠. 댁에 방문해 서재에서 촬영했는데 벽면에 걸린 이번 사진은 아파트 밖 놀이터에서 찍은 작품입니다. 그날 비가 내려 우산을 들고 촬영했는데 한강 작가는 내성적이고 수줍은 성격이지만 내면은 굉장히 강인한 면들이 있는 듯 했습니다.”

한편 오는 30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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