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청년·노인 삶 연결하는 ‘다리 역할’ 하고 싶다”
코오롱그룹 우정선행상 대상 수상 곡성 ‘길 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
한글교실 열어 책 출간…청년조합 덕스텝, 아이들 웹툰·음악 교육
정원·벽화 등 전국 입소문…“운영 힘들지만 ‘따뜻한 관심’에 감사”
2024년 11월 05일(화) 20:10
김선자 ‘길 작은 도서관’ 관장<코오롱 그룹 제공>
곡성군 입면 서봉리 ‘길 작은 도서관’ 김선자(53) 관장이 도서관 문을 연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조손가정과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때론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본 그는 “따뜻한 밥 한끼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는 집 거실 한 켠을 개방해 아이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산책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몇 년이 지난 후, 도서관 책 정리를 도와주던 할머니들이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한글교실을 열었다. 열심히 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와 그림책 ‘눈이 사뿐사뿐 오네’를 펴냈고 시집 출간 과정은 다큐멘터리 ‘시인 할매’로도 만들어졌다.

김선자 길 작은 도서관 관장이 최근 코오롱그룹 오운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4회 우정선행상 대상(상금 5000만원)을 수상했다. 우정선행상은 고(故) 이동찬 코오롱 선대회장의 호 ‘우정’(牛汀)을 따 2001년 제정한 상으로 해마다 사회의 모범이 될 만한 선행과 미담 사례를 발굴해 시상한다.

길 작은 도서관 전경.
“오랫동안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앞날을 알 수 없어 막막한 때도 있었죠. 사립도서관이라는 이유로 지원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할 때는 야속하기도 했고요. 이번 수상으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은 기분입니다.”

김 관장은 “퇴직금을 중도 인출해 운영 비용을 마련하는 등 힘들 때도 많았지만 곁에서 늘 함께 해준 이들이 많았기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목회자인 남편과 함께 곡성에 둥지를 튼 김 관장은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삶을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참 좋아했는데 막상 두 분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는 세상을 떠나셨죠. 두 분에게 해드리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동네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렇게 시집과 그림책이 나왔죠. 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할머니들과 인형극 ‘시인 할매를 만나요’를 제작해 학교를 방문했어요. 학교에 다니지 못해 아쉬워했던 할머니들은 학교에 가고, 또 급식도 먹으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김 관장이 좌절하지 않고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 덕분이었다. 특히 멀리 경상도에서 할머니 시인들의 사인을 받으러 온 신혼부부를 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할머니들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는 다짐을 하는 ‘시작의 장소’로 삼고 싶어 방문했다는 부부였다.

김 관장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벽화를 제작하고 정원을 조성하는 등 마을 환경 조성에도 힘을 썼고, 도서관은 지역의 명물이 됐다. 최근 김 관장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건 몇년 전부터 마을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청년들이다. ‘덕스텝’이라는 협동조합을 꾸린 청년들은 아이들에게 웹툰과 음악을 가르치고 잡지도 만든다.

“도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과 그 친구들,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던 청년 등 인연이 닿은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도서관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죠. 아이들이 잘 커나가고, 청년들이 지역에 잘 뿌리내리고, 할머니들이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들을 연결시키는 것, 그게 우리 도서관과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30805000775814028
프린트 시간 : 2025년 06월 08일 14:4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