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나종영 시인 23년만에 세번째 시집 ‘물염의 노래’ 발간
불의한 시대 향한 외침·자연 예찬
26일 5·18기록관서 출판 기념회
2024년 10월 21일(월) 21:25
나종영 시인
“내 글이 시대와 세상 앞에 ‘물염(勿染)의 詩’이기를 희원합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시집 제목이 묵직하다. ‘물들지 마라’는 뜻이 죽비처럼 다가온다.

광주 출신 나종영 시인이 23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펴내 눈길을 끈다.

최근 인터뷰에서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삶, 다시 말해 시인으로서 잘 살았는지 그것의 물음에 자신 있을 때 창작집을 펴내자는 생각을 했다”며 “물론 지금도 그것에 대한 명징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우나 더 이상 시인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며 시집을 펴낸 이유 등을 전했다.

서글서글하면서 인상 좋은 이미지의 시인은 올해 고희(70)를 맞았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 칠십 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것은 드물다, 라는 뜻이다. 나 시인도 마음은 청춘이지만 가뭇없이 지나버린 세월이 덧없게 느껴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시집 제목의 모티브는 화순의 대표 누정 물염정에서 차용했다. 조선시대 사헌부 감찰 ‘물염 송정순’이 당쟁의 광풍에 환멸을 느끼고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정자를 은거했다.

이번 창작집의 제목이 은유하는 것은 ‘물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나 시인은 “그동안 나는 시를 쓰는 사람보다도 한 사람 ‘시인’으로서 시대를 살아오기를 염원해 왔다”며 “사물과 사람에 대한 사랑, 겸손, 겸애와 더불어 이 훼절의 시절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정자에 가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는 홀로 어디쯤 닿고 있는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물염적벽에/ 그대는 칼끝을 세워 청풍 바람 소리를 새기고”(‘물염정에 가서’)라고 노래하며 참다운 길이 무엇인가를 되뇌인다.

시인으로 그를 각인시킨 창작집은 지난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이다. ‘5월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불의한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울림 있는 시로 풀어냈다.

이후 두 권의 시집 ‘끝끝내 너는’,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를 펴냈다. 긴 침묵 속에서도 그는 시심을 버리지는 않았다. 시어를 붙들고 있었고 많은 시들을 창작했다. 단지 발표를 하지 않았을 뿐이며, 이번 발간 시집도 600여 편에서 고르고 고른 작품들이다.

김형중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는 “나종영의 시집 곳곳에서 반짝이는 저 수많은 것들은 일종의 사리다. 물론 그것은 오래 묵고 벼린 말(言)로 된 사리다”라고 평한다.

나 시인은 ‘문학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문학적인 생활’을 했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함평, 장성, 강진 등으로 초등학교를 옮겨 다녔어요. 여러 고을의 자연과 지리, 풍습을 체험할 수 있었죠. 후일 이런 체험은 문학을 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시인, 소설가를 배출한 광주고에서 문예반 활동을 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죠.”

이번 작품집의 스펙트럼은 넓다. 사회를 향한 뜨거운 목소리를 담은 시 외에도 풀, 나무, 꽃 등 자연을 모티브로 한 시들도 있다. 인간사 희로애락을 진솔한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도 눈에 띈다.

전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삶 속에서 ‘가치’를 구현하는 일에 초점을 맞췄다. 산업은행 광주지점에서 본부장까지 근무하며 정년퇴직을 했다. ‘시인’과 ‘은행’ 다소 어울리지 않는 관계처럼 보인다.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성실한 일상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의 삶 외에도 지역 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도 매달렸다. 80년대 초 광주민중문화연구회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며 광주·전남작가회의, 순천작가회의 출범을 견인했다. 무엇보다 지난 2005년 지역 최초 종합문예지 ‘문학들’을 지역 문학인들과 창간해 지금까지 통권 76호를 발간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편 시집 출판을 기념하는 출판회가 오는 26일 오후 4시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7층 다목적강당에서 열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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