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업 비약적 성장…미래 성장동력 자리잡았다”
광주일보가 만난 경제人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
전국 광기업 절반 광주에 자리…매출액 27배, 고용인력 4배 늘어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
전국 광기업 절반 광주에 자리…매출액 27배, 고용인력 4배 늘어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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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가 만난 경제인 신용진 한국광기술원장
물리(物理), 즉 만물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함께 기초학문으로 분류되는 수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에 비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복잡한 수식으로 우주, 물질, 전기, 열, 에너지, 힘, 공간, 시간, 차원 등 모든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며 물질과 자연현상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규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직스(physics)는 자연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푸시아(phusia)에서 기원하였으며, 물리라는 말은 중국의 사서(四書)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비롯되었다. 자연과학을 형이상학과 분리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 유럽 중세 초기인 1088년 이탈리아 볼로냐에 고등교육기관인 지금의 대학이 처음 생겨 법학·의학·신학을 가르쳤다. 이후 파리, 케임브리지, 살라망카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까지도 물리학은 철학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그리고 500년 이상이 지난 1657년 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에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Accademia del Cimento)가 설립되면서 과학적 실험이 최초로 진행되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인물의 등장과 그의 실험적 검증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고전역학(古典力學)’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인 아이작 뉴턴에 의하여 시작되고 완성되었다. 그가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을 통해 그 유명한 만유인력과 관성의 법칙, 운동 방정식,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한 것이다. 20세기 전까지 이 고전역학에 의해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볼 수 있는 물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대물리학의 시대를 연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원자, 원자보다 작은 입자인 아원자, 빛의 가장 작은 덩어리인 광자 등을 다루고 있다.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양축이 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의 개념 및 구조를 새롭게 규명하고, 빛의 속도와 강한 중력이라는 조건 속에서 물리 현상을 설명하였다.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빛은 중요한 주제였다. 아이작 뉴턴은 그 성질에 대해 “빛은 입자이며 매우 작은 질량을 가져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후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두고 수백년간 논쟁이 벌어졌고, 아인슈타인이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중성(duality)을 내세우며 그 종지부를 찍었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상으로 방사되는 파동인 전자기파로, 입자이기 때문에 직진성을 갖고, 분산굴절시키면 색상이 파장에 따라 분산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빛의 속력을 알기 위한 노력은 고대부터 계속되었고, 1972년에서야 미국 NBS(Boulder) 연구실에서 측정한 광속(光速)은 초속 약 30만km였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고,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으며, 태양까지는 약 8분 거리다.
물리학에서 밝혀낸 빛의 본질, 원리, 속력 등은 첨단산업에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센서, 렌즈, 레이저 등으로 소재가 되고, 다시 반도체, 디스플레이, 첨단모빌리티, 우주항공산업,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안전재해 등의 부품이 된다. 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치를 깨닫기 시작한 인간은 자신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며 그 현상을 알아내 진출하고,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 3D 프린팅, 나노 기술 등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빛과 첨단산업과의 융합이 ‘시대 과제’가 된 것이다.
광주(光州)는 빛고을이다. 무주, 무진주 등으로 불리다가 후백제시대 광주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고, 고려 태조 23년(940년) 광주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색이 ‘석서정기(石犀亭記)’라는 책에서 광주를 가리켜 ‘광지주(光之州)’라고 적었다.(석서정은 광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지금의 사직공원 입구에 있는 양파정 맞은편에 보를 쌓아 그 위에 만든 정자로, 절경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볕이 따뜻하고 일조량이 높아서 또는 무등산 서석대에 햇빛이 반사되어 멀리서 반짝거려서 등이 설득력이 있는 정도다. 빛과 떼어놓을 수 없는 도시, 광주와 빛을 이용하여 소재·부품·제품을 생산하는 ‘광산업’의 만남은 숙명적일 수밖에 없다.
광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내려 시도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당시 광주시장·공직자·전문가·지역 정치권 등의 아이디어, 실천력, 설득력, 집요함 등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 것이다. 광산업 클러스터의 핵심이자 근간이 되는 것이 ‘한국광기술원’이다. 2001년 개원하여 23년을 보내면서 초기에는 기반을 구축하고, 이후 기술 개발, 기업 지원 등에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등장하며 과거의 것을 무력하게 하는 ‘새로움의 시대’, 지역 내 연구개발기관의 중요함과 가치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본원(本院)으로 광주에 자리한 유일한 국가연구개발기관이다. 광반도체·디스플레이, 광영상정보, 광ICT융합, 디지털조명, 광에너지 등 연구 관련 5개 본부가 있고, 그 산하에 무려 23개의 센터가 빛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여기에 산하에 경기광융합기술센터(광명), XR광학거점센터(안양), 광디지털치료연구센터(천안), 광섬유센서실용화센터(양산) 등 4개의 센터가 전국 각지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의 원장은 신용진(69) 박사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문생산기술연구소 중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그는 지난 2019년 이후 5년째 한국광기술원을 이끌고 있다. 1974년 광주일고, 1981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유학길에 올라 1990년 뉴욕대에서 이학석사와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유학시절에 8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최첨단 원자핵물리학과 의학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미국에서 물리학 관련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1990년 귀국해 서울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 마침 공모중이었던 조선대학교 교수를 선택했다.(당시는 미국 박사, 특히 물리학 전공이라면 전국 대학들을 골라서 교수로 갈 수 있었던 시기였다.) 20여년만에 내려온 고향의 모습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때부터 ‘광’을 통한 지역 발전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9년 한·중 광기술 공동연구센터 한국 대표 전문위원을 지내면서 그 생각은 전략으로 바뀌고 이어 한국광기술원의 밑그림이 되었다.
단순히 광 관련 기업 지원 센터로 출발하려던 한국광기술원에 연구개발기능을 더하여 ‘빛을 생성·제어하고 활용하는 소재·부품·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기관’으로 격상시킨 것도 신 원장의 기여 덕분이다. 광특화연구센터 소장(2000~2002), 한국광기술원 이사(2006~2007), 광주전략산업기획단장(2007~2009), 한국광학회 부회장(2008~2018), ‘물리학과 첨단기술’ 편집위원장(2013~2014), 한국물리학회 부회장(2015~2016) 등 경력이 이야기하듯 그는 물리학자이자 광 전문가이다. 신 원장이 바라보는 한국광기술원의 과거·현재·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물리, 듣기만 해도 어렵다.
▲일단 물리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 끈기 있게 시간을 투자하면 이해력 역시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리도 결국 확률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변수, 변이, 변용, 변화 등을 감안하면서, 규명하고 원리·법칙을 알아내는 것이 쉬울리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물리로 인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편리함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생물은 살아 있는 모든 것, 물리는 그 외의 모든 것을 다룬다. 유학을 갈 때만 해도 각 대학에 물리학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대 외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 점은 좀 아쉽다.(그가 교수로 있었던 조선대도 물리학과를 수학과와 통합해 융합수리과학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지금 물리학의 대세인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이중성이며, 이는 빛이 가진 두 가지 성질 즉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리를 연구하다보면 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융통성과 연계성을 가져야 하는 학문이다.
-물리를 전공한 이유가 있나.
▲솔직히 고등학교 선생님이 물리학과의 전망이 밝다고 해서 갔다. 고려대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정말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군 만기제대 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전액 장학금을 받아 미국 뉴욕대에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미 해군성이 진행하는 국방과학연구에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최종단계에서 외국인으로서 배제되긴 했지만 미사일 방어용 레이저 연구라는 당시의 최첨단 과학을 접할 수 있었으며, 원자핵물리학(Atomic Nuclear Physics)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한데, 갑자기 장학금이 없어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정말 막막했다. 그 때 학과장이었던 울프 교수가 기업 연구소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나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 어렵던 시절, 무엇인가 돌파구가 마련되니 가장 기뻤던 기억이다. 원자핵물리학 전공 박사가 불가능해지면서(사실 그는 국적을 바꾸라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학과장 추천으로 의학 물리학 교수를 찾아갔다. 원자핵물리학을 기반으로 미국 동부 최초로 뉴욕병원에 설치하는 MRI(핵자기공명영상)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면서 의학물리학(Medical Physics)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MRI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그 덕분에 한국에 와서 현대아산병원, 강남성심병원, 전남대병원 등의 MRI 시스템 구축을 도울 수 있었다.
-광산업을 광주에 적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여년 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놀다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공부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다, 내일 죽더라도 학위는 받고 죽자는 마음으로 나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유학생활과 연구원 시간을 보내고 20여년만에 고향 광주에 내려와 보니 과거와 똑같이 산업도, 대기업도 제대로 없는 삭막한 도시로 남아 있었다. 배운 것을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해보자고 생각하고, 당시 박광태 국회 산자위원장, 광주시 관련 공직자, 전문가들에게 전략산업으로 키워보자고 건의했다. 그분들이 기꺼이 동의해주셨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각 지역에 전략산업 육성하는 정책을 폈고, 광주는 광산업, 창원은 기계산업, 부산이 신발산업, 대구는 섬유산업 등을 각각 추진했었다. 23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광산업밖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아마도 지역에 산업이 상대적으로 워낙 미흡하다보니 광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정착하는데 수월했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저가 공략, 산업을 주도할 앵커기업의 부재 등의 난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광산업은 이제 광주 주축산업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 되었다.
-광산업과 한국광기술원을 모르는 분들도 있다. 간단히 설명한다면.
▲빛을 다양하게 활용해 소재, 부품, 제품 등을 만드는 산업이다. 크게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LED, 레이저, 렌즈, 센서 등이며, 이들 소재들이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에너지, 환경, 의료바이오,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디스플레이 등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한국광기술원은 지난 2001년 ‘산업기술혁신촉진법’에 의한 광기술분야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 개원했으며, 광융합산업 선도 및 기술 개발 거점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광기술원은 정부 차원의 광융합기술 중장기 R&D 전략 수립과 더불어 기업이 겪고 있는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함은 물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험생산, 시험인증, 창업보육, 인력양성, 기술이전과 사업화 지원 활동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개원 이후 2008년까지 기반을 구축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그 성과를 확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광 관련 기술은 세계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광산업 중 디스플레이(시각 정보를 출력하는 전자기기) 부문은 세계 1, 2위 수준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5위 정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LED제조기술,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등을 확보하고 있지만 영세한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중국의 저가 공세 등의 요인으로 최근 성장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어 이를 타개하고자 정부에서 광융합산업진흥법을 제정한데 이어 광융합기술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위기를 극복할 재도약 기틀을 닦았다. 정부와 지자체, 광 관련 주요 지원기관들과 힘을 합쳐 ‘광융합산업 글로벌 TOP 3 선진국’ 지위 확보를 위한 광융합 산업 생태계 기반 조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부품과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전자·자동차·에너지·나노·조선·농업·의료기기사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과 융·복합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광기술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주 광산업의 지금까지 성과를 요약해달라.
▲광 관련 기업들이 수도권에 절반, 광주에 절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집적은 잘 되어 있다. 수도권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광주로 불러오는 것이 현재의 과제다. 광주는 2000년부터 첨단산단 등 광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생산·연구·교육·지원 등 단지 내 모든 기능을 집적화시켜 성장해 오고 있다. 광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광기술원 등 특화연구소 및 지원기관이 16개나 위치하고 있으며,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 성과의 사업화 및 마케팅 지원시스템을 구축하여 활발히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혁신의 중심인 석·박사 이상 핵심 전문인력도 6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을 비롯하여 여러 광융합산업 지원기관과 중앙정부 및 광주시의 지원 및 광융합산업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 우리로, 옵티시스, 오이솔루션, 피피아이’ 등이 코스닥에 상장되는 등 광주지역 기업들도 계속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광주의 광산업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매출액이 27배, 고용인력은 4배, 기업 수는 6배로 각각 늘었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스닥 및 코넥스 상장 기업도 6개를 배출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매출액 100억 이상 기업이 1999년 0개에서 2023년 30여 개가 되었다. 이는 단일 산업 클러스터로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를 볼 수 없는 성과이며, 타 지역에서는 부러워하고 함께 연계 사업을 해보려고 여러 제안들을 할 정도다. 광주 광산업 발전의 저변에는 한국광기술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성과를 살펴보면, 지난해 호남 559개, 경기 553개, 호서 159개, 영남 84개, 강원 27개 기업을 지원했다. 공동연구개발을 했던 기업이 628개, 지원을 받은 기업이 790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창업보육한 기업이 165개, 연구소기업이 15개에 양성한 인력만 6824명에 달한다. 기술 이전 실적은 누적 630건(계약 금액 194억원), 전문연구개발기관 기술이전 효율성은 3.38에 달한다. 또 한국광기술원은 2005년 KOLAS(Korea Laboratory Accreditation Scheme) 국가공인기관 인증을 받은 이후 2016년 국가연구개발 성과 100선 선정, 2018년 방사청 전문연구기관 위촉, 2020년 광융합기술 전문연구소 지정(산업통상자원부)·국가연구시설 지정(광학유리소재, 렌즈, 모듈)·산업통상자원부장관 단체표창(기술이전·기술거래 공로), 2021년 대통령 단체표창(계량측정산업 발전), 2022년 고용부 최우수 공동훈련센터 선정(국가인적자원개발)·호남권 최초 빛공해 검사기관 지정, 2023년 고용부 2년 연속 최우수 공동훈련센터 선정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기초연구도 있지만, 사업화를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기업들과 연계해 상품화하는 것이 또다른 임무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가져와야 한다. 현재 중국이 LCD, OLED 등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저가 공략에 나서고 있고, 마이크로 LED를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R&D 뿐만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후발 주자들의 적극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초격차 광융합기술의 기술 패권 확보와 광융합산업 활성화를 위해 크게 3가지 관점의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광융합 세계 최고 기술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R&D 추진 및 확대가 시급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안전·우주국방·에너지 등 광융합 산업 육성을 위해 광융합 핵심 소재 및 부품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개별 기업이 구축하기 힘들지만 기술고도화에 필수적인 광융합 공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한 국내 벨류체인 강화와 기업 지원 원스톱 솔루션 제공으로 해외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적기에 창출하고 견고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다. 셋째, 광융합 분야 미래 유망시장 발굴과 글로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개발된 제품의 국내외 수요처를 발굴하고, 시험·인증, 테스트 베드 구축 등을 통한 해외 진출까지 아우르는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후 과제가 있다면.
▲1.5km 반경 내에 대학, 연구기관, 지원기관, 기업 등이 집적되어 있는 곳은 광주의 광산업 클러스터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이제 외국에서도 이를 인식할 정도이며, 최근 체코와 국제공동연구를 하기로 하는 등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역량만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자동차연구원, 기계연구원 등과 협력사업을 구상중에 있으며, 세계의 기업들과도 첨단기술을 개발하는데 함께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표 기술,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유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정부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는데, 어렵게 보냈다. 아내와 막 결혼해서 함께 미국에 가 나는 물리학을, 아내는 경영학(MBA)을 공부했다. 그때는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집에 왔다. 뉴욕 지하철이 밤에는 매우 위험했고, 차라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전에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밤을 샌 적은 셀 수도 없다. 딸(36세)·아들(31세)이 있는데 딸은 아내가 5년만에 MBA 자격을 얻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미국에서 출생했고, 아들은 귀국한 후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둘이 공부하면서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지금은 둘이 살면서 저녁식사 후 여유롭게 손잡고 산책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교육자로서 제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나.
▲조선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처음에는 잘 따라오지 못하다가 서서히 속도가 붙어 잘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공부는 정말 철두철미하게 시켰다. 제자 중에서 카이스트, 지스트에 진학하거나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로 유학을 간 경우도 있다. 지금은 많은 제자들이 각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제 몫을 하고 있어서 자랑스럽고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제 연구실에서 공부할 때 처음에는 외국 학회를 데려가고 다음부터는 혼자만 보냈다. 그러한 경험들이 그들이 넓은 시야를 갖고 성장하는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광 전문가로서, 자신이 쓴 논문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2000년 초에 발표한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이었는데, 바다에 떠 있는 선박 주위에 레이저를 쏴서 그 반사를 통하여 오염물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였다. 현재는 공장 굴뚝에 레이저를 쏴서 공기 중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지를 파악하는 연구와 기술의 기반이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지금 최선을 다하라고 해주고 싶다. 무엇인가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대학교 1학년때부터 매년 여름방학 때는 전국 배낭여행을 갔고, 겨울방학 때는 붓글씨, 타자 치는 법, 운전을 익혔다. 시간이 있을 때 나중에 도움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놓을 것을 권하고 싶다.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한국광기술원은 세계적인 연구개발기관이며,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충남·경남에서는 그 잠재력과 성과를 인정해 무엇이라도 협력사업을 하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응원해줬으면 한다. 또 한국광기술원은 박사인력만 120여 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지스트, 전남대 출신도 상당하다. 고급인력이 지역에 정착해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라는 의미다. 광주·전남과 지역민이 한국광기술원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기를 바란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물리(物理), 즉 만물의 이치를 배우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함께 기초학문으로 분류되는 수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에 비해서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복잡한 수식으로 우주, 물질, 전기, 열, 에너지, 힘, 공간, 시간, 차원 등 모든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며 물질과 자연현상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규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빛은 중요한 주제였다. 아이작 뉴턴은 그 성질에 대해 “빛은 입자이며 매우 작은 질량을 가져 측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후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두고 수백년간 논쟁이 벌어졌고, 아인슈타인이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중성(duality)을 내세우며 그 종지부를 찍었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상으로 방사되는 파동인 전자기파로, 입자이기 때문에 직진성을 갖고, 분산굴절시키면 색상이 파장에 따라 분산되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빛의 속력을 알기 위한 노력은 고대부터 계속되었고, 1972년에서야 미국 NBS(Boulder) 연구실에서 측정한 광속(光速)은 초속 약 30만km였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고,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으며, 태양까지는 약 8분 거리다.
물리학에서 밝혀낸 빛의 본질, 원리, 속력 등은 첨단산업에도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센서, 렌즈, 레이저 등으로 소재가 되고, 다시 반도체, 디스플레이, 첨단모빌리티, 우주항공산업, 인공지능(AI)과 에너지, 안전재해 등의 부품이 된다. 물리학의 발전으로 이치를 깨닫기 시작한 인간은 자신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며 그 현상을 알아내 진출하고, 제4차 산업혁명을 통해 빅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 3D 프린팅, 나노 기술 등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빛과 첨단산업과의 융합이 ‘시대 과제’가 된 것이다.
광주(光州)는 빛고을이다. 무주, 무진주 등으로 불리다가 후백제시대 광주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고, 고려 태조 23년(940년) 광주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색이 ‘석서정기(石犀亭記)’라는 책에서 광주를 가리켜 ‘광지주(光之州)’라고 적었다.(석서정은 광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지금의 사직공원 입구에 있는 양파정 맞은편에 보를 쌓아 그 위에 만든 정자로, 절경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볕이 따뜻하고 일조량이 높아서 또는 무등산 서석대에 햇빛이 반사되어 멀리서 반짝거려서 등이 설득력이 있는 정도다. 빛과 떼어놓을 수 없는 도시, 광주와 빛을 이용하여 소재·부품·제품을 생산하는 ‘광산업’의 만남은 숙명적일 수밖에 없다.
광산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내려 시도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당시 광주시장·공직자·전문가·지역 정치권 등의 아이디어, 실천력, 설득력, 집요함 등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 것이다. 광산업 클러스터의 핵심이자 근간이 되는 것이 ‘한국광기술원’이다. 2001년 개원하여 23년을 보내면서 초기에는 기반을 구축하고, 이후 기술 개발, 기업 지원 등에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등장하며 과거의 것을 무력하게 하는 ‘새로움의 시대’, 지역 내 연구개발기관의 중요함과 가치가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본원(本院)으로 광주에 자리한 유일한 국가연구개발기관이다. 광반도체·디스플레이, 광영상정보, 광ICT융합, 디지털조명, 광에너지 등 연구 관련 5개 본부가 있고, 그 산하에 무려 23개의 센터가 빛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여기에 산하에 경기광융합기술센터(광명), XR광학거점센터(안양), 광디지털치료연구센터(천안), 광섬유센서실용화센터(양산) 등 4개의 센터가 전국 각지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의 원장은 신용진(69) 박사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문생산기술연구소 중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한 그는 지난 2019년 이후 5년째 한국광기술원을 이끌고 있다. 1974년 광주일고, 1981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유학길에 올라 1990년 뉴욕대에서 이학석사와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유학시절에 8년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최첨단 원자핵물리학과 의학물리학을 공부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미국에서 물리학 관련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1990년 귀국해 서울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다가 1994년 마침 공모중이었던 조선대학교 교수를 선택했다.(당시는 미국 박사, 특히 물리학 전공이라면 전국 대학들을 골라서 교수로 갈 수 있었던 시기였다.) 20여년만에 내려온 고향의 모습이 ‘그대로’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때부터 ‘광’을 통한 지역 발전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9년 한·중 광기술 공동연구센터 한국 대표 전문위원을 지내면서 그 생각은 전략으로 바뀌고 이어 한국광기술원의 밑그림이 되었다.
단순히 광 관련 기업 지원 센터로 출발하려던 한국광기술원에 연구개발기능을 더하여 ‘빛을 생성·제어하고 활용하는 소재·부품·시스템 전반을 다루는 기관’으로 격상시킨 것도 신 원장의 기여 덕분이다. 광특화연구센터 소장(2000~2002), 한국광기술원 이사(2006~2007), 광주전략산업기획단장(2007~2009), 한국광학회 부회장(2008~2018), ‘물리학과 첨단기술’ 편집위원장(2013~2014), 한국물리학회 부회장(2015~2016) 등 경력이 이야기하듯 그는 물리학자이자 광 전문가이다. 신 원장이 바라보는 한국광기술원의 과거·현재·미래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물리, 듣기만 해도 어렵다.
▲일단 물리는 엉덩이가 무거워야한다. 끈기 있게 시간을 투자하면 이해력 역시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리도 결국 확률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변수, 변이, 변용, 변화 등을 감안하면서, 규명하고 원리·법칙을 알아내는 것이 쉬울리 없다. 분명한 것은 이 물리로 인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편리함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생물은 살아 있는 모든 것, 물리는 그 외의 모든 것을 다룬다. 유학을 갈 때만 해도 각 대학에 물리학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대 외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 점은 좀 아쉽다.(그가 교수로 있었던 조선대도 물리학과를 수학과와 통합해 융합수리과학부로 명칭을 바꾸었다.) 지금 물리학의 대세인 양자역학은 기본적으로 이중성이며, 이는 빛이 가진 두 가지 성질 즉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물리를 연구하다보면 철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융통성과 연계성을 가져야 하는 학문이다.
-물리를 전공한 이유가 있나.
▲솔직히 고등학교 선생님이 물리학과의 전망이 밝다고 해서 갔다. 고려대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정말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군 만기제대 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전액 장학금을 받아 미국 뉴욕대에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미 해군성이 진행하는 국방과학연구에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최종단계에서 외국인으로서 배제되긴 했지만 미사일 방어용 레이저 연구라는 당시의 최첨단 과학을 접할 수 있었으며, 원자핵물리학(Atomic Nuclear Physics)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한데, 갑자기 장학금이 없어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워지면서 정말 막막했다. 그 때 학과장이었던 울프 교수가 기업 연구소 프로젝트들을 하나씩 나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 어렵던 시절, 무엇인가 돌파구가 마련되니 가장 기뻤던 기억이다. 원자핵물리학 전공 박사가 불가능해지면서(사실 그는 국적을 바꾸라는 주변의 조언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학과장 추천으로 의학 물리학 교수를 찾아갔다. 원자핵물리학을 기반으로 미국 동부 최초로 뉴욕병원에 설치하는 MRI(핵자기공명영상)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면서 의학물리학(Medical Physics)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MRI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그 덕분에 한국에 와서 현대아산병원, 강남성심병원, 전남대병원 등의 MRI 시스템 구축을 도울 수 있었다.
-광산업을 광주에 적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여년 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놀다가 죽은 사람은 있어도, 공부하다가 죽은 사람은 없다, 내일 죽더라도 학위는 받고 죽자는 마음으로 나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유학생활과 연구원 시간을 보내고 20여년만에 고향 광주에 내려와 보니 과거와 똑같이 산업도, 대기업도 제대로 없는 삭막한 도시로 남아 있었다. 배운 것을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해보자고 생각하고, 당시 박광태 국회 산자위원장, 광주시 관련 공직자, 전문가들에게 전략산업으로 키워보자고 건의했다. 그분들이 기꺼이 동의해주셨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각 지역에 전략산업 육성하는 정책을 폈고, 광주는 광산업, 창원은 기계산업, 부산이 신발산업, 대구는 섬유산업 등을 각각 추진했었다. 23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광산업밖에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아마도 지역에 산업이 상대적으로 워낙 미흡하다보니 광산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정착하는데 수월했다는 점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의 저가 공략, 산업을 주도할 앵커기업의 부재 등의 난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광산업은 이제 광주 주축산업이자 미래 성장 동력이 되었다.
-광산업과 한국광기술원을 모르는 분들도 있다. 간단히 설명한다면.
▲빛을 다양하게 활용해 소재, 부품, 제품 등을 만드는 산업이다. 크게 4개 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LED, 레이저, 렌즈, 센서 등이며, 이들 소재들이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에너지, 환경, 의료바이오,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디스플레이 등과 결합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한국광기술원은 지난 2001년 ‘산업기술혁신촉진법’에 의한 광기술분야 전문생산기술연구소로 개원했으며, 광융합산업 선도 및 기술 개발 거점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광기술원은 정부 차원의 광융합기술 중장기 R&D 전략 수립과 더불어 기업이 겪고 있는 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함은 물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시험생산, 시험인증, 창업보육, 인력양성, 기술이전과 사업화 지원 활동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개원 이후 2008년까지 기반을 구축했고, 2009년부터 현재까지 그 성과를 확산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광 관련 기술은 세계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광산업 중 디스플레이(시각 정보를 출력하는 전자기기) 부문은 세계 1, 2위 수준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5위 정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LED제조기술,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등을 확보하고 있지만 영세한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중국의 저가 공세 등의 요인으로 최근 성장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어 이를 타개하고자 정부에서 광융합산업진흥법을 제정한데 이어 광융합기술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위기를 극복할 재도약 기틀을 닦았다. 정부와 지자체, 광 관련 주요 지원기관들과 힘을 합쳐 ‘광융합산업 글로벌 TOP 3 선진국’ 지위 확보를 위한 광융합 산업 생태계 기반 조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부품과 소재에 머무르지 않고 전자·자동차·에너지·나노·조선·농업·의료기기사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과 융·복합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광기술원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광주 광산업의 지금까지 성과를 요약해달라.
▲광 관련 기업들이 수도권에 절반, 광주에 절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집적은 잘 되어 있다. 수도권의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광주로 불러오는 것이 현재의 과제다. 광주는 2000년부터 첨단산단 등 광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생산·연구·교육·지원 등 단지 내 모든 기능을 집적화시켜 성장해 오고 있다. 광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광기술원 등 특화연구소 및 지원기관이 16개나 위치하고 있으며,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 성과의 사업화 및 마케팅 지원시스템을 구축하여 활발히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혁신의 중심인 석·박사 이상 핵심 전문인력도 600여 명이 상주하고 있다. 한국광기술원을 비롯하여 여러 광융합산업 지원기관과 중앙정부 및 광주시의 지원 및 광융합산업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 우리로, 옵티시스, 오이솔루션, 피피아이’ 등이 코스닥에 상장되는 등 광주지역 기업들도 계속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광주의 광산업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매출액이 27배, 고용인력은 4배, 기업 수는 6배로 각각 늘었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코스닥 및 코넥스 상장 기업도 6개를 배출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특히 매출액 100억 이상 기업이 1999년 0개에서 2023년 30여 개가 되었다. 이는 단일 산업 클러스터로 세계적으로도 그 사례를 볼 수 없는 성과이며, 타 지역에서는 부러워하고 함께 연계 사업을 해보려고 여러 제안들을 할 정도다. 광주 광산업 발전의 저변에는 한국광기술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간의 성과를 살펴보면, 지난해 호남 559개, 경기 553개, 호서 159개, 영남 84개, 강원 27개 기업을 지원했다. 공동연구개발을 했던 기업이 628개, 지원을 받은 기업이 790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창업보육한 기업이 165개, 연구소기업이 15개에 양성한 인력만 6824명에 달한다. 기술 이전 실적은 누적 630건(계약 금액 194억원), 전문연구개발기관 기술이전 효율성은 3.38에 달한다. 또 한국광기술원은 2005년 KOLAS(Korea Laboratory Accreditation Scheme) 국가공인기관 인증을 받은 이후 2016년 국가연구개발 성과 100선 선정, 2018년 방사청 전문연구기관 위촉, 2020년 광융합기술 전문연구소 지정(산업통상자원부)·국가연구시설 지정(광학유리소재, 렌즈, 모듈)·산업통상자원부장관 단체표창(기술이전·기술거래 공로), 2021년 대통령 단체표창(계량측정산업 발전), 2022년 고용부 최우수 공동훈련센터 선정(국가인적자원개발)·호남권 최초 빛공해 검사기관 지정, 2023년 고용부 2년 연속 최우수 공동훈련센터 선정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다.
▲기초연구도 있지만, 사업화를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기업들과 연계해 상품화하는 것이 또다른 임무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가져와야 한다. 현재 중국이 LCD, OLED 등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저가 공략에 나서고 있고, 마이크로 LED를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R&D 뿐만 아니라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후발 주자들의 적극적인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초격차 광융합기술의 기술 패권 확보와 광융합산업 활성화를 위해 크게 3가지 관점의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첫째, 광융합 세계 최고 기술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R&D 추진 및 확대가 시급하다. 반도체·디스플레이·자동차·안전·우주국방·에너지 등 광융합 산업 육성을 위해 광융합 핵심 소재 및 부품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개별 기업이 구축하기 힘들지만 기술고도화에 필수적인 광융합 공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한 국내 벨류체인 강화와 기업 지원 원스톱 솔루션 제공으로 해외에 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적기에 창출하고 견고한 성장을 지원할 수 있다. 셋째, 광융합 분야 미래 유망시장 발굴과 글로벌 시장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개발된 제품의 국내외 수요처를 발굴하고, 시험·인증, 테스트 베드 구축 등을 통한 해외 진출까지 아우르는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후 과제가 있다면.
▲1.5km 반경 내에 대학, 연구기관, 지원기관, 기업 등이 집적되어 있는 곳은 광주의 광산업 클러스터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이제 외국에서도 이를 인식할 정도이며, 최근 체코와 국제공동연구를 하기로 하는 등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다만 우리의 역량만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자동차연구원, 기계연구원 등과 협력사업을 구상중에 있으며, 세계의 기업들과도 첨단기술을 개발하는데 함께 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표 기술,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유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정부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는데, 어렵게 보냈다. 아내와 막 결혼해서 함께 미국에 가 나는 물리학을, 아내는 경영학(MBA)을 공부했다. 그때는 아침에 나가서 새벽에 집에 왔다. 뉴욕 지하철이 밤에는 매우 위험했고, 차라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전에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렇게 했다. 밤을 샌 적은 셀 수도 없다. 딸(36세)·아들(31세)이 있는데 딸은 아내가 5년만에 MBA 자격을 얻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미국에서 출생했고, 아들은 귀국한 후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둘이 공부하면서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지금은 둘이 살면서 저녁식사 후 여유롭게 손잡고 산책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교육자로서 제자들은 어떻게 가르쳤나.
▲조선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처음에는 잘 따라오지 못하다가 서서히 속도가 붙어 잘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공부는 정말 철두철미하게 시켰다. 제자 중에서 카이스트, 지스트에 진학하거나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로 유학을 간 경우도 있다. 지금은 많은 제자들이 각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제 몫을 하고 있어서 자랑스럽고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제 연구실에서 공부할 때 처음에는 외국 학회를 데려가고 다음부터는 혼자만 보냈다. 그러한 경험들이 그들이 넓은 시야를 갖고 성장하는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광 전문가로서, 자신이 쓴 논문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2000년 초에 발표한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논문이었는데, 바다에 떠 있는 선박 주위에 레이저를 쏴서 그 반사를 통하여 오염물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였다. 현재는 공장 굴뚝에 레이저를 쏴서 공기 중에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지를 파악하는 연구와 기술의 기반이 되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지금 최선을 다하라고 해주고 싶다. 무엇인가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대학교 1학년때부터 매년 여름방학 때는 전국 배낭여행을 갔고, 겨울방학 때는 붓글씨, 타자 치는 법, 운전을 익혔다. 시간이 있을 때 나중에 도움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놓을 것을 권하고 싶다.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한국광기술원은 세계적인 연구개발기관이며, 시민들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충남·경남에서는 그 잠재력과 성과를 인정해 무엇이라도 협력사업을 하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응원해줬으면 한다. 또 한국광기술원은 박사인력만 120여 명에 이르며, 이들 가운데 지스트, 전남대 출신도 상당하다. 고급인력이 지역에 정착해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기관이라는 의미다. 광주·전남과 지역민이 한국광기술원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기를 바란다.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