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고관수 지음
미생물, 보잘 것 없는 존재? 인류와 공생하며 함께 진화
![]() 미첼 스위츠 작 ‘아테네 역병’, 술과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효모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 |
루이 파스퇴르는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876년 효모가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발효가 효모에 의한 생물학적 과정임을 알아냈다. 또한 그는 알코올과 젖산, 아세트산 발효도 미생물의 작용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파스퇴르와 관련된 일화 중 프랑스 포도주 산업을 와해 위기에서 구해낸 이야기가 있다. 대학 교수 재직 시 파스퇴르에게 양조업자가 찾아온다. 포도주맛이 시큼해지는 이유와 해결방법을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파스퇴르는 변질된 술통의 액체가 멀쩡한 술통과는 다르게 먼지 같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각 술통의 시료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발효가 잘 돼 맛이 좋은 포도주를 만드는 술통은 작고 둥근 구조(효모)가 보인데 반해 반대의 시큼한 맛의 술통에서는 검고 길쭉한 구조가 관찰된 것이다. 조사 결과 이 시료에는 젖산이 가득했는데 이것이 포도주 맛을 변화시켰다. 이를 토대로 파스퇴르는 포도주 맛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오염균만을 제거하는 저온살균법을 개발했다. 오늘날 이 방식은 술이나 우유를 멸균할 때도 활용된다.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드리워져 있다. 마치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민초들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미생물도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미세한 나머지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아시아태평양감염연구재단 연구실장을 역임하고 성균관대 의과대 미생물학교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하는 고관수 박사의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는 미생물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공생하고 공격하며 공진화해 온 인류와 미생물의 미래’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미생물의 과거를 매개로 인간의 미래를 가늠한다.
고대 그리스를 몰락시킨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역병도 그 중의 하나였다. 지난 1994년 아테네 지하철 연장 공사 중에 집단 매장지가 발굴됐다. 240여 구 유해가 발굴됐는데 약 10명은 어린이였다. 고고학자들이 ‘미르티스’라는 이름을 붙인 소녀의 치아 유골에서 DNA를 추출했는데 하나의 병원체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장티푸스 원인균인 살모넬라였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는 1000개가 넘는 폴리스가 있었다. 일명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를 상대로 스파르타 등 그 반대 세력 국가들이 벌인 전쟁이었다. 막강한 해군력에 난공불락의 성을 쌓은 아테네가 초기에는 승산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 발발 이듬해 아테네 위성 항구 피레우스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점점 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성벽 안에는 시신을 태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병으로 7만5000명에서 10만 명 가량이 사망했다. 급기야 전쟁 총지도자 페리클레스에게까지 덮쳤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함대를 스파르타에 넘겼고 과두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스파르타도 내부 혼란을 겪다 아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정복당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종말로 치달았다. 즉 아테네 역병의 여파는 ‘최초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 유럽사회는 결핵을 ‘White Death’(백사병)이라 불렀다. 14세기 흑사병에 빗댄 말로 그만큼 대규모 목숨을 앗아갔다는 의미다.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폐질환인 결핵을 낳았다. 좁은 공간의 먼지와 분진에 섞여 비말로 떠돌아다니는 결핵균은 노동자들의 폐를 공격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1851년부터 1910년까지 약 400만 명이 결핵으로 죽었으니 ‘하얀 페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70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영국은 결핵 발생이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도 결핵이 폭증했다.
이밖에 책에는 전쟁보다 사람을 많이 죽인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곰팡이 속 미생물이 치료제가 되기까지의 과정, 세균보다 작은 황열바이러스가 바꾼 역사적 순간들 등 흥미롭고 이색적인 내용들이 기술돼 있다.
한편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 교수는 추천사에서 “책은 역사와 과학을 넘나들며 미생물이 우리 삶과 생태계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다”고 평한다. <지상의 책·1만8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파스퇴르와 관련된 일화 중 프랑스 포도주 산업을 와해 위기에서 구해낸 이야기가 있다. 대학 교수 재직 시 파스퇴르에게 양조업자가 찾아온다. 포도주맛이 시큼해지는 이유와 해결방법을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파스퇴르는 변질된 술통의 액체가 멀쩡한 술통과는 다르게 먼지 같은 이물질이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각 술통의 시료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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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를 몰락시킨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역병도 그 중의 하나였다. 지난 1994년 아테네 지하철 연장 공사 중에 집단 매장지가 발굴됐다. 240여 구 유해가 발굴됐는데 약 10명은 어린이였다. 고고학자들이 ‘미르티스’라는 이름을 붙인 소녀의 치아 유골에서 DNA를 추출했는데 하나의 병원체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 장티푸스 원인균인 살모넬라였다.
![]() 고대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 당시 원인 모를 질병 등이 원인이 돼 패배했다. |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는 함대를 스파르타에 넘겼고 과두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스파르타도 내부 혼란을 겪다 아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에게 정복당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종말로 치달았다. 즉 아테네 역병의 여파는 ‘최초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과거 유럽사회는 결핵을 ‘White Death’(백사병)이라 불렀다. 14세기 흑사병에 빗댄 말로 그만큼 대규모 목숨을 앗아갔다는 의미다.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폐질환인 결핵을 낳았다. 좁은 공간의 먼지와 분진에 섞여 비말로 떠돌아다니는 결핵균은 노동자들의 폐를 공격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1851년부터 1910년까지 약 400만 명이 결핵으로 죽었으니 ‘하얀 페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1700년대 말에서 1830년대 영국은 결핵 발생이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도 결핵이 폭증했다.
이밖에 책에는 전쟁보다 사람을 많이 죽인 인플루엔자를 비롯해 곰팡이 속 미생물이 치료제가 되기까지의 과정, 세균보다 작은 황열바이러스가 바꾼 역사적 순간들 등 흥미롭고 이색적인 내용들이 기술돼 있다.
한편 김응빈 연세대 시스템생물학 교수는 추천사에서 “책은 역사와 과학을 넘나들며 미생물이 우리 삶과 생태계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나아가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다”고 평한다. <지상의 책·1만85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