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마을 살리는 ‘테마’… 마음 이끄는 ‘이야기’
찾고 싶은 이유가 있다 - 인기 테마마을의 매력
고창 ‘책마을 해리’ 책속에 묻히다
모든 공간에 책…‘책 만들기’ 인기
부산 ‘감천문화마을’ 동네가 미술관
동네 곳곳에 벽화·예술 작품 설치
경남 ‘동피랑 벽화마을’ 주민도 화가
골목길마다 알록달록 벽화 보는 재미
2024년 08월 07일(수) 10:00
나무 위에 지은 고창 ‘책마을 해리’ 동학평화도서관.
도시가 살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휘황찬란한 건물이 들어서고 명품숍이 생겨나고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도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마을의 역사를 지키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곳, 테마마을이 뜨는 이유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테마마을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어 있는 걸까. 폐교를 리모델링해 쇠락해가던 마을을 살린 ‘책마을 해리’, 철거예정이던 달동네마을을 관광객이 몰리는 벽화마을로 변화시킨 ‘동피랑 벽화마을’, 폐가와 골목에 예술작품들을 설치해 도시의 랜드마크로 발전시킨 감천문화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골목길을 되살린 ‘김광석 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본다.

◇폐교의 변화가 마을을 살린 ‘책마을 해리’= 해리포터 촌장이 신비한 마술을 부리는 곳.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바람언덕, 대나무하우스, 책마을 책감옥, 버늘눈도서관, 책숲시간의 숲, 만화공방, 갤러리 해리 등을 마음껏 오고간다. 이곳은 전북 고창군 해리면 나성마을에 자리한 마법같은 공간 ‘책마을 해리’다.

판타지 소설 속 마법사 해리 포터의 ‘해리’, 해리면의 ‘해리’까지 중의적인 표현으로 ‘책마을 해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마을이 아닌 공간의 이름이 ‘책마을’이지만 이제는 ‘책마을 해리’ 하면 고창과 해리면이 떠올려질 만큼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옛 나성초등학교의 폐교를 재구성에 지난 2012년 책을 읽고 책을 짓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든 이는 ‘해리포터’를 꼭 닮은 이대건 대표와 부인 이영남 관장이다. 나성초등학교는 이 대표의 증조부가 설립한 후 나라에 기부했다가 2000년대 초 폐교됐다. 매물로 나오게 된 학교를 후손인 이 대표가 사들이면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성초등학교는 규모가 꽤 큰 학교였습니다. 한 때 학생수가 1000명 가까울 때도 있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 수가 줄어들자 해리초등학교 나성분교로 격하되었다가 결국 폐교가 된 거죠.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마을도 함께 쇠락해 갔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해지고, 학교가 문을 닫으니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을의 많은 활동이 줄어들기 시작했지요. 그만큼 마을에서 학교의 역할은 단순히 교육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는 거에요. 새롭게 태어난 책마을 해리는 다시 마을과 함께 커가고 있습니다.”

책마을 촌장으로 불리는 이 대표가 추구하는 건 한가지다.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을 모토로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책을 만드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점이면서 도서관이 되고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되기도 한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도 마을학교에 참여하면서 책을 만들기도 한다.

교실을 리모델링한 각각의 공간에는 온통 책이 가득하다. 이 대표가 소장하고 있던 책과 기증받은 책이 20만 권이 넘는다. 운동장에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공간들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있을 것 같은 느티나무 위에는 ‘동학평화도서관’이 자리하고 본건물 뒤편의 ‘책감옥’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교실 두 칸을 합쳐 만든 ‘책숲시간의숲’에서는 강연이나 심포지엄, 포럼 등이 열리기도 한다.

야외 중앙의 거대한 부엉이 조형물은 책마을 해리의 상징이 되었다. 2020년 겨울 나무 위 도서관 아래서 세상을 떠난 작은 부엉이를 기리기 위해 부엉이 모형의 도서관을 지었고 지금까지 생태환경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8월 7~10일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김경균 교수와 함께하는 씨클래스 워크숍 ‘2024 책마을해리 여름책학교’가 진행된다.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오는 10월 새단장될 예정이다.
◇주민 참여로 일궈낸 ‘감천문화마을’=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초록 망토와 붉은 목도리를 한 어린왕자가 앉아 있다. 옆에는 그의 친구 사막여우가 나란히 앉아 마찬가지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소부터 떠오른다. 항구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감천문화마을의 재미난 풍경이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은 역사마을이자 예술마을이기도 하다. 1950년대 6·25 피난민들이 몰려와 계단식 단층 주택을 다닥다닥 짓고 살면서 형성된 ‘달동네’는 이후 1958년 ‘태극도’ 신도 4000여 명이 모여들면서 반달고개 주변에 1000세대가 넘는 판자촌이 들어서게 된다.

감천마을이 ‘감천문화마을’로 불리게 된 건 감천동 미술 프로젝트 사업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한 때 거주인구가 3만 명에 달했던 이곳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면서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쇠락해져 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예술가들이 나섰다.

예술가들은 사하구와 주민들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마을 곳곳에 10여 개의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꿈을 꾸는 부산의 맞추픽추’ 마을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재건축·재개발 대신 빈집 30여 채를 창작 전시공간으로 꾸미고 골목에는 벽화와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감천문화마을에는 마을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함께한다. 골목투어 지도를 판매하고 마을 해설사를 소개받을 수 있는 ‘감천문화마을 안내센터’와 노후화된 옛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한 ‘감내어울터’, 마을지기와 만물수리공이 상주하는 ‘마을지기사무소’, 마을 입구에는 마을 조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작은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상징이 된 대구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마을을 지켜낸 ‘동피랑 벽화마을’= 경남 통영시 동호동에는 ‘동피랑 벽화마을’이 있다. 통영의 대표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편 언덕에 위치한다. ‘피랑’은 절벽·벼랑을 뜻하는 순 우리말로 동쪽 벼랑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동피랑 마을이라 불린다.

마을 위에 오르면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 내려다보이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마다 알록달록 재미난 담벼락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동피랑마을은 ‘마을을 살린 벽화’ 사연을 가지고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은 산동네는 지난 2007년 통영시가 마을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설치했던 통제영 동포루가 있던 자리에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십년 간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 사라져간다는 생각에 두려웠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제1회 전국 벽화 골목전’이었고 그렇게 시작한 벽화는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마을의 변화를 본 통영시는 철거방침을 철회하고, 마을 꼭대기 3집만을 철거해 동포루를 복원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이후 2014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로부터 지속가능발전의 모범사례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지속가능발전교육 공식프로젝트’ 인증까지 획득했다. 동피랑마을에서는 지금도 2년에 한 번씩 공모전을 개최해 낡고 색상이 바랜 벽화들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다.

항구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감천문화마을 풍경.
◇추억의 노래로 이어가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는 상징적인 마을이 하나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로 불리는 김광석거리 벽화마을이다. ‘노래하는 시인’ ‘가객(歌客)’으로 불리던 싱어송라이터 고(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을 가수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만들었다.

2010년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하나로 조성하기 시작한 김광석 길은 지금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조성된 지 14년이 지났지만 방치가 아닌 꾸준히 변화를 시도하며 마을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350m 길이의 벽면을 따라 이어진 길에는 김광석 조형물과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말아주는 김광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공연하는 김광석 등 생전의 모습과 노래 가사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벽화 뿐만 아니라 카페, 식당, 옷가게, 게임타운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마을의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광주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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