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민 으로 살아가기 <3> 시민자유대학
인문학에 목마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배움 놀이터’
2016년 학계· 예술계·교사 등 9명
3000만원씩 기금 출연으로 문 열어
코로나 이후 3학기 체제 유지
한 학기 수강생 50~100여명 등록
정기 회비 회원·후원자 471명
철학·음악 등 다양한 커리큘럼
2024년 08월 05일(월) 20:05
지난달 13일 (사)인문도시연구원 시민자유대학(이사장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이 전남대 용지관 컨벤션홀에서 개최한 ‘2024 철학캠프’에는 광주지역의 회원을 비롯해 진주, 대구,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400여 명이 참석했다. <시민자유대학 사진 제공>
지난달 22일 오후 6시, 전남대 인문대 앞은 삼삼오오 몰려드는 이들로 북적였다. 평소 같으면 여름 방학기간인데다 늦은 오후여서 한산할 터인데 이날은 달랐다. 7시가 가까워지자 건물 입구는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인문대 1호관 이을호 기념 강의실에서 열리는 ‘사회와 철학-관계를 보듬는 감정인문학’(6월10~7월22일)의 수강생들이다. 7주과정의 마지막 수업이어서인지 강의실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즐거워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6월 10일 소설가 공선옥씨의 ‘슬픔이라는 말’로 문을 연 이번 강좌는 (사)인문도시 연구원의 시민자유대학(학장 이유미)이 의욕적으로 기획한 2024년 여름학기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 탐구를 통해 개인과 타인,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양해경 사람과 평화 대표,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시민자유대학 이사장), 최유준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 정찬영 정신의학과 전문의(동명병원장) 등 7명의 명사와 함께 다양한 시각에서 ‘마음’을 들여다 보는 자리다.

지난달 22일 전남대 인문대 1호관에서 열린 사회철학캠프에 참가한 시민자유대학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앞줄 맨 왼쪽부터 방미자, 정찬영 원장, 이유미 학장, 최송아씨(맨 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박숭희(뒷줄 맨 오른쪽에서 세번째)씨.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이날 강의실에서 만난 방미자(69)씨는 매주 월요일 수업을 손꼽아 기다려온 열혈 수강생이다. 지난 1985년 광주에 처음으로 가죽공방을 연 그는 가정과 부업을 병행하느라 1인 3역을 할 정도로 바쁜 삶을 보냈다. 학창시절부터 꿈꿨던 미대 진학은 가정형편으로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지만 늘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둘째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4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광주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한 방씨는 가죽 공예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지난 2005년 서울살이를 시작한 딸을 따라 홍대 근처에 가죽공방을 낸 그는 한양대 평생교육원에서 수강생들을 지도하며 제2의 삶을 누렸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서울생활을 접고 광주에 내려온 후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수십 년간 바쁜 삶을 보내다 갑자기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조금 당황스럽더군요. 어떻게 하면 하루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 도서관을 찾아 에세이나 소설, 환경보호, 기후 온난화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나 사회문제 등에 관심이 생겨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게 됐는데, 이 때 박구용 교수의 ‘유쾌한’ 강의를 접하게 됐어요.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철학이나 미학 등을 특유의 입담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강의에 흥미를 느껴 박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시민자유대학에 신청하게 됐어요.”

지난 2017년부터 시민자유대학과 인연을 맺은 박숭희(55·여행사 대표)씨는 “음악, 미술, 철학, 건축,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강좌를 수강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뜨였다”면서 “철학 캠프를 수료한 후 수강생들과 독일로 여행을 다녀온 경험은 개인적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특별한 인솔자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독일 철학 수업을 함께 들은 이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을 살려 생생하게 들려줬기 때문이다. 시민자유대학의 회원 가운데 교사, 교수, 건축가, 예술가 출신들이 많아 미술관에서는 화가, 음악당에서는 성악가, 성당에서는 건축에 식견이 있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해설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어떤 곳에서도 접하기 힘든 살아있는 예술교육의 현장인 셈이다.

박구용 이사장이 ‘2024 철학캠프’에서 ‘문화비판으로 어린왕자 읽기’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박씨의 말처럼 시민자유대학은 시민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배움을 이뤄가는 열린 교육기관이다. 명칭에 대학을 붙인 것도 학위는 없지만 학문과 예술을 공부하는 시민대안학교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초기엔 사계절에 맞춰 4학기로 운영했지만 코로나 19 이후 3학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30대 현직 교사, 예술가, 회사원에서부터 일선에서 은퇴한 50~70세까지 다양하다.

시민자유대학이 문을 열게 된 건 지난 2016년. 박구용 이사장을 중심으로 동강대 김용근 교수,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류근성 연구원, 전남대 미술학과 서기문 교수, 전남대 건축학과 이효원 교수, 치평중학교 이유미 교사, 전남대 화순병원 심재연 간호과장 등 지역 학계와 예술계, 교사 등 9명이 3000만원씩 기금을 내놓게 된 게 씨앗이 됐다. 대부분 국내 인문학 강좌들이 예산 지원이 소진되면 명맥이 끊기는 만큼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당시 전남대 철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이었던 이유미(44)씨는 시민자유대학의 지향점에 공감해 3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기금을 쾌척했다. 현재 10명으로 구성된 이사진들이 돌아가면서 학장을 맡는 규칙에 따라 가정과 학교를 오가느라 바쁜 상황이지만 기꺼이 (학장직을) 수락했다.

이씨는 “시민자유대학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인문놀이터’”라면서 “취업이나 자격증을 위한 배움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서 소양을 쌓고 시대와 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갖는 ‘문화시민’ 양성이 목표”라고 말했다.

올해로 ‘개교’ 8주년을 맞은 시민자유대학은 그동안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한 학기에 50~100여 명의 수강생이 등록한 걸 감안하면 동문만 해도 얼추 수천 여 명에 이른다. 정기적으로 회비를 내는 회원과 후원자만 471명이나 된다.

무엇보다 시민자유대학의 가장 큰 자산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커리큘럼이다. 지난 2016년 봄학기 과정으로 개설한 최유준(음악비평가)전남대 HK교수의 ‘음악사와 음악미학’을 시작으로 ‘건축의 안과 밖’, ‘화가의 눈’, ‘철학하는 시민’, ‘한국미술산책’, ‘화엄경’, ‘시대를 흔들었던 열명의 여성작가들’, ‘다산 정약용’, ‘헤겔 예술철학’, ‘트라우마와 성장-집단치료와 심리극’, ‘2018년 광주비엔날레 읽기’, ‘독일문화-예술로 가는 여행’, ‘동양교전특강’, ‘중세철학의 얼굴들’, ‘이슬람 문화 바로 알기’, ‘영화로 읽는 명화’, ‘문화비판으로 어린왕자 읽기’ 등 차별화된 강의로 짜여졌다.

시민자유대학의 최송아 사무국장은 “시민자유대학은 매주 월요일(사회와 철학), 화요일(시창작 워크숍), 수요일(수학의 길, 에피소드), 토요일(철학캠프’ 등 각기 다른 테마의 강의로 진행된다”면서 “특히 지난 7월13일 열린 박구용 이사장의 ‘문화비판으로 어린왕자 읽기’는 회원은 물론 서울, 진주, 제주 등 전국에서 400여 명이 참가할 만큼 문화도시 광주를 대표하는 시민대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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