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중국의 역사왜곡 논리
2024년 08월 01일(목) 00:00
중국 요녕성(遼寧省) 서쪽의 능원시와 건평현(建平縣)이 교차하는 지점에 ‘우하량 홍산문화유지(牛河粱紅山文化遺址)’가 있다. ‘유지’는 ‘유적(遺蹟)’이라는 뜻이다. 홍산문화는 6000년 전 신석기 유적인데 그 중심이 우하량 유적이다. 홍산문화는 동쪽으로 지금의 요녕성 요하부터 서쪽으로는 하북성, 북쪽으로는 내몽골 시라무렌강과 남쪽으로는 발해까지 걸치는 광범위한 고대문화다. 홍산문화의 중심이 우하량(B.C.3500~B.C.3000) 유적인데 1980년대에 발견되었다. 최초로 하늘에 제사 지내던 제단이 발견되었고 두 눈을 옥으로 만든 여신상도 발견되었다. 무덤과 제사를 지내는 제단과 사당이 갖추어진 단묘총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어 중국을 놀라게 했다. 이 여신상을 현재 중국에서는 ‘중화민족 공동의 조상(祖上)’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 유적은 동이족 유적이다. 중국 학자 이민은 1987년 ‘우하량·동산취(東山嘴) 홍산문화의 귀속문제에 대한 시론’을 발표해 동아족의 일족인 조이(鳥夷)의 문화라고 주장했다가 퇴출되다시피 하고 말았다. 중국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큰 관점을 갖고 각종 역사공정을 진행하고 있는데, 홍상문화가 동이족 문화라면 그 큰 전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홍산문화를 동이족의 문화로 인정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한 인물이 소병기(蘇秉琦:1909~1999)인데, 그는 국가의 발전단게를 고국(古國)→방국(方國)→제국(帝國)의 순으로 정리한 이론을 내놓아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소병기가 홍산문화를 중화민족 최초의 문명이자 이미 고국 단계에 들어간 중화문명이라고 정리하면서 홍산문화도 중화문명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억지같지만 소병기가 주장하는 중화민족은 현재의 한족(漢族)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인데, 중화민족이라고 할 때는 한족만이 아니라 55개 소수민족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만주의 조선족 또한 중화민족의 범주에 들어간다. 인구 수로 따지면 한족이 91%를 차지하고 55개 소수민족이 9% 정도에 불과하지만 역사영역으로 따지면 인구의 9%인 소수민족의 역사영토가 63% 정도이고 인구의 91%에 달하는 한족의 역사영토는 현재 중국강역의 37%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소수민족들이 독립한다고 치면 중국은 현재 강역의 37% 정도로 축소되기 때문에 소수민족을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틀 속에 가두는 것은 국체(國體)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비롯해 국가 차원의 각종 공정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국가공정의 큰 틀은 동이족의 역사를 한족, 곧 화하족(華夏族)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국가공정 중에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이란 것이 있다. 단대란 역사시기를 특정해 끊는 것을 말하는데, 중국의 고대 삼대(三代)라고 불리던 하·상·주라는 세 나라가 존속했던 기간을 정리하는 공정이었다. 그전까지 중국 학계에서는 하·상·주 삼대 중에서 상(商)나라까지만 실제 존속했던 왕조로 인정하고 하(夏)나라는 전설상의 왕조로 치부해왔다. 그런데 하·상·주 단대공정의 결과 하(夏)나라는 서기전 2070년부터 서기전 1600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라고 정리했고, 현재 중국의 각급학교에서 중국사 교과서에 실어 가르치고 있다. 은(殷)이라고도 불리는 상(商)은 동이족 국가이기 때문에 상나라를 중국 왕조의 시작으로 설정하면 중국 국가공정의 뿌리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이런 각종 국가공정을 전 세계에 퍼뜨리는 전파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늘 말하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을 만나서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학계는 이 망언에 항의하는 시늉도 하지 않았고, 이것이 한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대한민국의 미래지속성도 보장하기 힘들다고 할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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