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웰빙 잇는 새 트렌드 뭘까…‘웰다잉’에 주목했죠”
<8> 웰다잉 지도사 백경랑 씨
노년의 삶 길어지며 ‘아름다운 죽음’ 화두
웰다잉협, 올 광주·전남서 강연·상담 잇따라
40여년간 나주시청서 민원봉사 업무
2009년 퇴직 앞두고 ‘죽음의 개념’ 관심
활동 10년…광주·전남 17개 지부 총괄
복지관·경로당 등 연계 강연·심리상담 등
2024년 07월 29일(월) 08:00
“새로운 트렌드에 수십 년간의 경험을 접목하는 것이 인생 2막 성공의 비결이 아닐까요.”

노년층 비율이 높아지면서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웰 다잉(Well-Dying)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백경랑(여·74·사진)씨의 말이다.

웰 다잉은 웰빙(Well-Being)과 다잉(Dying)의 합성어로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자기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점에서 최근 노년층을 중심으로 관심이 높다.

과거에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는 죽음을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고령화와 노년의 삶이 길어지면서 일명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지역민들이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한웰다잉협회 광주·전남지역 각 지부에서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만 70여건이 펼쳐졌고, 2000여명의 지역민들이 상담을 받았다.

3일에 한 번 강연이 열리고, 강연 한 번에 30여명의 지역민이 상담을 받는 꼴이다.

백씨는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간 나주시청 등에서 민원봉사과장 등 직책을 지내는 동안 인생 2막에 대한 큰 고민은 없었다.

웰다잉 지도사가 상담을 진행한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돕고 있다.
그가 이러한 트렌드에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난 2009년 접수된 한 민원 때문이다.

고령의 민원인은 건강이 좋지 않아 주기적으로 대학 병원을 방문했고, 자식에게 더 이상 의료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혹시라도 행정적 지원 방안이 있는지를 문의하기 위해 나주시청에서 일하고 있는 그를 찾은 것이다.

당시 민원인을 병원 복지사업부서에 연결하는 것 외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그는 “이 상담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주변 사회구성원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은 인생조차 행복하게 보내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면서 “나 자신도 고령층에 접어든 만큼, 웰다잉에 대한 공부를 통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말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고민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던 그는 서구권에서는 사회적 트렌드로 떠올랐지만, 지난 2001년 국내에 도입됐음에도 10년 가까이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던 웰다잉 지도사에 관심을 갖고, 그 길을 걷게 됐다.

어느덧 10년 가까이 인생 2막인 웰다잉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현재 대한웰다잉협회 광주전남지부장을 맡아 광주시 5개, 전남도 12개 등 총 17개 지부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소재 보건소·복지관·경로당 등과 연계해 ‘죽음’을 주제로 강연을 하거나, 심리상담을 하는 등 지역 곳곳을 누비며 웰다잉 지도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웰다잉 지도사를 선택한 이유에는 과거 상담직 공무원의 경험이 컸다”고 했다.

웰다잉 상담 등 행사에 참여한 노인들이 함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각종 상담을 해왔기 때문에 어르신들과의 상담에는 자신이 있었다는 점에서다. 상담할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인 ‘상대 입장에서 잘 듣기’라는 것도 그에게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죽음이라는 큰 고민이 있는 상대의 상황을 고려하고,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마무리 방식을 정하는 일생일대의 결정에 앞서 심적 부담을 한결 덜어줄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그는 “평생 상담을 진행해오면서 새로 선택한 길을 천직으로 느꼈고, 상담하면서 지역민들과 함께 숨 쉬며 일상을 공유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면서 “퇴직 후 인생 2막에서도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지역민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상담을 받으러 온 지역민들은 남겨질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더 자주 토로한다”면서 “자녀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는 말을 가장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고령층 대다수가 원하는 죽음이 ‘내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지만, 75% 가량은 병원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런 현실 때문에 자녀의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는 동료들과 함께 웰다잉 강의뿐만 아니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운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지난 2018년 사전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향후 임종 과정에서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 및 호스피스에 대한 의향을 문서로 작성해 둘 수 있게 된 데 따른 것이다.

또 고인이 될 것을 대비해 유언장 작성을 돕기도 하고 자녀가 여러명인 어르신인 경우 상속에 대한 상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웰다잉 강연’에 참석한 지역민들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그는 전남지역에서는 지난 3월 ‘바람(HOPE) 호스피스지원센터’를 화순군에서 최초로 운영했으며, ‘존엄한 죽음 준비하기’,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경험 나누기’ 등을 주제로 서로 논의하는 자리인 ‘데스 카페(Death Cafe)’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그는 죽음에 대한 사회 인식 변화 및 웰다잉 문화 확산의 필요성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최근 수도권에서는 여러 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에서 웰다잉 관련 전공과목까지 생겨나고 있고 30~40대의 젊은 교수들이 트렌드에 발맞춰 전공 수업에 웰다잉 문화를 접목한 강의를 펼치고 있지만, 아직 광주·전남지역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백 씨는 “인생이 찬란했던 젊은시기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끝을 맺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대다수의 끝은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며 “다수의 젊은 세대까지 모두 웰다잉 문화에 공감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홍보 및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이어 “앞으로도 말 못할 심적 고민이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우리 모두의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 하게 하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덧붙였다.

/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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