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경루와 소쇄원이 품은 도자기와 풍류
국립광주박물관 ‘조선의 공간과 도자기’전 인기
‘동양 제일 루’와 ‘조선 최고 정원’서 즐기는 풍류
2024년 07월 28일(일) 09:02
조선시대 희경루는 ‘동양 제일 누각’으로 평가받는 광주의 대표 정자였다. 희경루에서 연희가 펼쳐지는 장면을 담은 ‘희경루방회도’. <동국대박물관 제공>
“광산은 명승지라, 옛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득하구나/ 부(府)라 치한 것이 어느 시대며, 주(州)가 된 것이 몇 년이던가/ 산천은 도 안에서 제일이요. 민재(民財)와 어진 사람 많다고 일컬어 왔네/ 서헌(西軒) 마루 넓은 줄을 자못 깨달아 올라가 단편시 몇 수를 읊조리노라”

‘풍류문화의 상징인 ‘소쇄원 광풍각’을 재해석한 공간.
위 시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내며 곳곳의 누정에 시문을 남겼던 성임(1421~1484)이 지은 ‘산천웅일도’(山天雄一道)라는 시다. 작품이 수록된 문집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전라도 광산현’으로, 여기에는 누정에 관한 기록과 함께 여러 조목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제영이 있다. 제영(題詠)은 제목을 붙여 시를 짓는 것이자, 지역의 인문을 비롯해 자연 등을 작품으로 창작해 모은 것을 말한다.

‘적벽부’를 쓴 병.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애령)에서 진행 중인 ‘조선의 공간과 도자기’전(9월 22일까지) 인기가 높다.

이번 전시는 도자기와 풍류문화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시간으로, 누정은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풍류와 학문 그리고 교유를 나누었던 대표 공간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희경루와 소쇄원을 모티브로 한 콘텐츠다. 지난 2022년 광주공원에 중건한 ‘희경루’의 중요한 원형 자료인 ‘희경루방회도’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인 소쇄원 광풍각(光風閣)을 재해석했는데 역사적, 자료적 가치가 높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렇듯 풍류 공간인 정자에서 시문을 짓고 읊으며 차와 술을 마셨다. 풍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던 것이 도자기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전시 도입부는 ‘풍류의 공간, 정자’를 주제로 구현했다.

가장 눈에 띄는 ‘희경루방회도’는 지난 2023년 광주공원에 중건한 희경루(喜慶樓)의 원형 자료다. 희경루가 지니는 역사적 가치와 상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신죽주는 희경루를 일컬어 “남북이 5칸이고 동서가 4칸이니 넓고 훌륭한 것이 동방에서 제일이었다”라고 칭했다.

‘희경루방회도’ 속 누각은 중층 건물로 기둥이 높고 위용이 만만치 않다. 1567년 이곳에서 열린 연회에는 광주목사 최응룡을 비롯해 전라도관찰사 강섬, 전 승문원부정사 임복, 전라도병마우후 유극공, 전 낙안군수 남효용 등 5명이 참석했다. 30여 명이 넘는 기녀들이 누대에 올라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는데, 그들 앞에 놓인 희미한 그릇은 도자기로 보인다.

희경루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지나면 ‘최고의 민간 정원 소쇄원 그리고 도자기’를 모티브로 한 공간이 관객을 맞는다. 특히 소쇄원 광풍각은 도자기가 놓여 있던 공간, 이를 둘러싼 외부 공간을 초점화했다. 마치 시간을 역류해 지난 시대로 돌아가 정자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풍류문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다양한 도자기들.
다음은 김인후의 ‘소쇄원 48영’ 가운데 ‘제21영’에 해당하는 시다.

“빙빙 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보내며/ 물살 치는 돌 웅덩이에 둘러앉으면/ 소반의 술안주 뜻한 대로 넉넉해/ 빙빙 도는 물결에 절로 오고가니/ 띄우는 술잔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시와, 차, 술, 도자기, 정자는 모두 풍류로 수렴된다. 접빈 음료인 차와 술을 위한 그릇, 그리고 그릇에 새겨진 시는 선조들이 즐겼던 풍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문인들의 아취가 오롯이 담긴 다채로운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문인이 닮고 싶어 했던 ‘사군자 무늬 백자’를 비롯해 귀한 물건을 품은 ‘기명절지 무늬 백자’ 등을 보는 호사는 여느 즐거움에 비할 바 아니다.

‘대나무 무늬 대나무 모양 병’
한편 이애령 관장은 “지역 대표 콘텐츠를 재해석한 공간은 오늘날과 비교해 지나온 시간의 궤적과 의미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라며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누정과 도자기로 연계된 풍류문화를 통해 무더위와 장마로 지친 스트레스를 잠시 날려 버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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