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산악인’ 김홍빈 정신 이어져야 한다 - 송기동 예향부장·편집국 부국장
2024년 07월 24일(수) 00:00
“두 손이 있을 땐 나만을 위했습니다/ 두 손을 잃고 나서야 다른 사람이 보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새로운 손이 그렇게 말합니다.”

고(故) 김홍빈 대장이 지난 2009년, 1월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봉(해발 4892m) 원정 당시 쓴 ‘손’이라는 제목의 시다. 시에서 ‘손’이라는 단어가 유독 울림을 주는 까닭은 그는 열손가락이 없는 산악인이기 때문이다.



원정대에 수색비용 청구한 국가



김 대장은 27살이던 1991년 5월 북미 알래스카에 자리한 데날리(해발 6194m·옛 이름 매킨리) 단독 등반 중 사고로 동상을 입은 양손의 손가락 모두를 절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극한의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산을 통해 다시 일어섰다. 그때 ‘사고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행복은 항상 나의 옆에 있다. 처음으로 혼자서 속옷을 입고, 뺀지를 이용하여 양말을 신고, 대소변을 혼자 가리고, 문을 열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혼자서 울었던 기억들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의 전도사로서 내가 해야 할 귀중한 삶이 기다리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 이제야 행복을 느낀 걸 보면 ‘삶은 처절할수록 아릅답다’.”

2021년 7월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시각). 김 대장은 브로드피크(해발 8047m) 정상에 올랐다. 7대륙 최고봉 등정에 이어, 마침내 히말라야 8000m급 14좌(座) 완등 기록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7대륙 최고봉 등정에 12년, 8000m급 14좌 완등에 9년 등 꼬박 20여 년의 시간을 들였다. 장애인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보다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하산 도중 해발 7900m에서 조난을 당했다.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기적’같은 그의 생환을 바랐다. 하지만 파키스탄 군 헬기를 이용한 수색활동에도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족은 2차 사고를 우려해 수색중단을 요청했다. 그렇게 그는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의 별’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2022년 김 대장 수색과 대원 구조에 소요된 비용 6800만원을 광주시 산악연맹이 부담해야 한다는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슬픔에 잠긴 유족은 물론 산악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비정한 조치였다. 앞서 정부가 김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선정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재판부는 1심에서 김대장 수색비용 2500만원을 광주시 산악연맹이 부담하고, 다른 대원 구조비용은 25%를 대원들이 부담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항소했다. 지난 6월, 정부는 민사항소 재판부의 ‘구조비용의 60%를 정부가 부담하라’는 화해 제안마저 거절했다. 지난 13일 고(故) 김홍빈 대장 3주기를 맞았지만 정부와 광주시 산악연맹의 입장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광주지역 국회의원 8명은 국위선양 행위중 발생한 사건·사고로 훈·포장을 받으면 국가가 사건·사고 수습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 개정안(일명 ‘김홍빈법’)을 공동 발의했다.

오래 전 김 대장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본다. 망설임 없이 내민 그의 조막손을 잡고 악수를 할 때 당혹감을 느꼈다. 뭉툭한 손끝에서 그의 강한 에너지가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했다.



‘김홍빈 기념관’ 조속 건립돼야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1886~1924)는 ‘왜 산에 오르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김 대장은 몸소 실천해 응답했다. 그는 ‘희망’을 오르는 산악인이었다. 교통사고로 인해 후천적 장애를 얻었던 양지훈(경기도 장애인스키협회) 선수는 지난 2월 ‘제21회 전국 동계장애인 체육대회’ 남자 알파인스키 회전 스탠딩(선수부) 부문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한 후, 김 대장의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에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소감을 언론매체에 밝힌 바 있다.

김 대장은 생전에 ‘(사)김홍빈과 희망만들기’를 꾸려 ‘보이지 않는 새로운 손’으로 청소년과 장애인, 사회적약자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고, 봉사활동을 통한 희망나눔을 실천했다.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도전정신과 희망나눔은 ‘김홍빈 정신’의 핵심이다. 이처럼 ‘김홍빈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김홍빈 기념관’ 건립이 빠른 시일 내에 추진돼야 한다. 광주시와 전남도, 지역 국회의원들, 산악계에서 발벗고 적극 나서야 한다. 정부 또한 이제라도 구상권 소송을 철회하고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서 예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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