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차경희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광주여성인권상담소장
2024년 07월 09일(화) 00:00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교제폭력 사건으로 법적 조치들이 강화되고 있다. 지난 1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교제폭력 범죄에 엄정 대응하고 피해자 보호와 사건처리 과정에서 가해자의 폭력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아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교제폭력에 대한 법적 조치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현실에서는 어떠할까? 광주여성의전화 상담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 피해자는 폭력과 스토킹 피해를 중첩적으로 경험했으며, 주로 가해자와 동거 중에 피해가 발생했거나 전 연인 관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주거지 등 개인정보를 알고 있어 가해자 처벌에 적극적이기보다는 쉼터 입소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제폭력은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폭력으로 끝나지 않고,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다정한 모습으로 애정을 드러낸 가해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집착,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변화를 기대하기도 하는 한편 연인으로서 좋은 감정을 공유하고 신뢰해온 관계이기 때문에 폭력을 인지하기도, 끊어내기도 어려워한다. 또 가해자의 회유, 협박 등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보복과 두려움으로 은폐하기도 한다.

최근 교제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몇 년 전까지도 교제폭력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는 없었다. 이에 광주여성의전화는 2021년 8월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스토킹·교제폭력 피해 비혼 여성 쉼터 ‘비상’’을 개소했다. 당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폭력 피해자는 관련법에 근거하여 다양한 지원이 가능한 반면, 스토킹·교제폭력 피해자는 상담 외에 의료, 법률, 쉼터 입소 등의 지원이 불가능했다. 2021년부터 스토킹 관련 법률이 제정되면서 올해부터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 긴급주거지원 등 교제폭력 피해자들에게 다양한 지원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안타까운 점은 교제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관계 중단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다수임에도 수사기관이 교제폭력의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단순 쌍방폭행으로 처리하거나,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에게 대질조사를 요청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친밀한 관계의 특징인 피해자의 신상을 잘 알고 있어서 손쉽게 보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를 만나야 하는 상황은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다. 더욱이 폭행죄로 취급되어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원석 검찰총장은 ‘교제폭력이 쌍방폭력 사안이더라도 실체를 명확히 밝혀 가해자의 폭력 위험성이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거나,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불합리하게 처벌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말과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가해자의 보복·협박·강요·위력 행사 등 불법행위에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 확인해 합의 과정에서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시가 실제 교제폭력 사건처리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까? 아직 현장에서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 첫째,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 위한 구체적인 예방 및 대응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폭력 행위를 방지하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므로 교제폭력 범죄의 특성과 차이를 반영한 별도의 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교제폭력이 발생하는 맥락과 특성을 제대로 고려한 피해자 지원 및 보호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울러 교제폭력에 대해 스토킹, 성폭력 등을 포함하여 확장적으로 바라보고 반복, 재발되는 교제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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