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출신 작가, 혼종국가 미국의 정체성을 묻다
제 60회 베니스 비엔날레 88개국 국가관 화제의 작품들
한국관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경계 넘나드는 ‘향’ 통해 자유 노래
독일관, 터키 출신 감독 6명 예술가 협업 우주선·황폐한 집 대비 디스토피아 연출
호주관, 원주민의 광대한 역사 복원
이집트관, 영국 제국주의 폐해 꼬집어
베니스=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2024년 07월 03일(수) 00:00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미국관은 강렬한 빨강색과 과감한 패턴이 어우러져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를 주제로 개막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20일~11월24일)는 본전시(국제전)와 국가관 등 88개국에서 총 331명이 참여하는 매머드 전시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올해 처음으로 참가한 아프리카의 베넹, 이디오피아, 탄자니아, 동티모르를 포함 총 88개국의 국가관이 지아르디니 전시관과 아르세날레 전시관 등 두 곳에 설치됐다. 휘트니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콘텐츠다.

무엇보다 국가관은 자국의 예술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술감독이 본전시의 콘셉트와 전시를 총괄하는 것과 달리 국가국은 각 나라별로 직접 커미셔너와 기획자를 선정해 아티스트와 함께 전시를 구현한다. 말하자면 88개국의 작가들이 베니스에 모여 자국의 예술적 역량을 뽐내는 쇼케이스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은 회를 거듭할 수록 참여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본전시장인 지아르디니 공원 전시관(30개국)과 아르세날레 전시관(58개국) 등 두 곳에서 펼쳐지는 국가관을 둘러 보기 위해서는 최소 2일 이상 베니스에 머물러야 할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올해는 지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으로 참가한 한국관이 3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한국관에 전시된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
◇한국관

지아르디니 전시관의 독일관 옆에 자리한 한국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은은한 향기가 관람객을 맞는다. 향기의 진원지를 따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마치 외계인을 연상케 하는 검은 형상이 공중에 떠 있다.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다. 어린 아기 크기의 작품은 하늘에서 가볍게 내려 오는 듯한 모습으로 2분마다 한번씩 코에서 연기나 뿜어져 나온다. 향기라는 뜻의 ‘오도’(Odor)와 드라마를 뜻하는 ‘라마(Rama)’의 합성어인 ‘오도라마 시티’는 경계 없이 공기 속에 흘러다니는 ‘향’처럼 어디에서나 만나게 되는 이방인의 존재를 되돌아 보게 한다.

◇미국관

지아르디니 공원의 목좋은 곳에 자리한 미국관은 강렬한 빨강색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얼핏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고풍스런 외관과 컬러풀한 색채. 그리고 과감한 패턴의 조합은 참여작가인 제프리 깁슨(Jeffrey Gibson)의 작품 ‘내가 놓일 곳’(The space in which to place to me)을 형상화했다. 미시시피 인디언 밴드의 일원이자 체로키(Choctaw)족 출신인 제프리 깁슨은 미국의 고유한 다양성과 혼종성을 보여주는 작가로 미국관에서 단독으로 전시한 최초의 원주민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자연채광을 끌어 들인 전시장과 인체를 2~3배 확대한 조각상, 화려한 문양의 새 조형물을 통해 정체성, 공감, 민주주의, 자유 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호주관의 ‘친족과 친척’(Kith and Kin).
◇호주관

지아르디니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호주관은 5m 높이의 거대한 벙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전시관을 둘러 보면 천장에서부터 하얀분필로 빽빽하게 써내려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어두운 공간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하얀색의 글씨들은 규모와 양에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쿨린(Kullin)’ ‘쿰키(Kumki)’라는 이름들이다.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 아키 무어(Archie Moore)가 호주 원주민의 6만5000년이 넘는 가계도를 손으로 직접 그려넣은 작품 ‘친족과 친척’(Kith and Kin)으로, 호주 원주민의 역사속으로 사라진 광대한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국가관을 대상으로 뽑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황금사자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는 대형 우주선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독일관의 ‘임계점’(Threshold).
◇독일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화제를 모은 독일관은 한국관과 일본관이 자리한 지아르디니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미술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이 참석한 프리뷰 기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 들만큼 인기를 모았다. 터키 출신 예술감독 카글라 일크와 6명의 예술가가 협업한 ‘임계점(Threshold)’을 선보인 전시관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는 대형 우주선의 이야기와 석면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의 이야기가 두 축으로 구성됐다.

SF적이고 신화적인 우주선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잿더미와 분진으로 가득한 광부의 황폐한 집이 대비를 이뤄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편의 뮤지컬로 제작된 이집트관의 ‘드라마(Drama) 1882’.
◇이집트관

이집트관은 독일관과 함께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어야 할 정도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마치 영화 세트장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파스텔톤의 색감과 기하학적인 대칭을 이룬 화면 구도, 왈츠풍의 음악이 시선을 잡아 끈다. 마치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영상으로 풀어 놓은 듯 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미국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작가 와엘 샤키(53)의 뮤지컬 영상 ‘드라마(Drama) 1882’이다. 19세기 후반 영국 제국주의의 질서 속에서 핍박한 삶을 살아가는 시대상을 그린 이집트의 ‘우라비 반란(1879~1882년)’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했다다. 작품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제작진만 400여 명에 달하는 대작이다. 45분 분량의 작품은 관람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집중할 만큼 뛰어난 흡인력을 자랑한다.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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