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행복한 도시- 정영창 재독 서양화가, 나주 레지던시 작가
2024년 06월 27일(목) 21:30
폴란드 북부 발트해에 자리한 항구도시 그단스크는 유럽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다. 전시 장소 ‘WL4’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 무기 창고로 쓰이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건물은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전시주제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전쟁&생명’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이번 전시는 2023년 ‘나주 레지던스 프로젝트’ 인연으로 성사됐다.

지난 2022년 나주시는 윤병태 시장 출범과 함께 예술 관광 활성화를 위한 특화단을 만들었고 장현우 단장에 의해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기획, 추진되었다. 당시 초대된 작가들 중 폴란드 그단스크 예술대학 교수이자 전시 기획자인 아드리아나(Adriana M)와 그녀의 남편이자 조각가인 케스와바(Czesław P)가 참여했다. 필자 또한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으며 이런 인연으로 폴란드에 초대받았다.

지난해 당시 나주 레지던스에 참여했던 케스와바는 광주를 방문하여 5·18을 간접 체험했다. 이어 서울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기획된 정영창의 5·18 43주년 기념전 ‘목숨’을 관람하고, 5·18을 특별하게 공감했다. 당시 그는 폴란드로 돌아가면 2024년 5월에 그단스크 솔리다르노시치 기념관 전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곳은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영웅 레흐 바웬사 기념관이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알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념관 전시는 무산되었다. 대신 그단스크 WL4 전시장에서 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 전시를 제안했다.

전시장소 변경과 적은 예산으로 인해 나주 작업실에 있는 대부분의 5·18 관련 작품들을 그단스크까지 운반할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뒤셀도르프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로 대체되었고 전시 주제는 5·18에서 ‘전쟁과 생명’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가자와 이스라엘 전쟁을 상기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하든 폴란드 사람들에게 5·18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전시 공간에 5·18 관련 정영창 그림과 정태춘 노래를 콜라보 한 ‘5·18 영상’을 상영했다.

‘전쟁과 생명’ 전시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그림들은 전쟁의 상흔이 남긴 특정 장소 공간에 잘 어울렸다. 매일 많은 시민들과 유럽 관광객들 그리고 학생 단체 관람까지 이어졌다. 뜻밖에도 관람객들은 5·18 영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궁금한 것은 내게 묻거나 검색을 통해 광주와 5·18을 알고자 했다.

고맙게도 ‘전쟁과 생명’ 전시가 성황을 이룬 덕에 전시기간이 6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또한 새로운 도시 비트코쉬쯔에서도 7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이 내 작품이 보여지기를 바라는 WL4 기획 덕분이다.

이곳 WL4는 끊임없이 전시가 이루어진다. ‘전쟁과 생명’전은 ‘저항의 예술’ 그룹전으로 이어진다. 세계에서 모인 작가들이 사회, 정치, 환경 문제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전시다. 얼마나 멋진 전시인가! 그단스크에서 머물며 제작한 내 작품 5점도 함께 전시된다.

폴란드 그단스크 WL4 기획자인 아드리아나의 기획력은 대단하다. 배울 점이 많다.

그녀는 외국에서 온 레지던스 작가들의 고충을 꿰뚫고 있으며 작가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할 엄청난 업무량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사가 물 흐르듯 진행된다. 그녀는 진정한 프로다. 그단스크 레지던스 & WL4 전시 기획 방침은 예술을 꽃피우고 싶은 도시들이 명심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준다. 즉, 전시란 관람자도 중요하지만 우선하여 예술가들을 위해 기획되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가는 행복해지고 행복한 예술가는 그 도시를 아름답게 변화시킨다는 것. 문화 선진국이 되려면 많은 예술가들을 유치하고 그들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단스크 WL4에서 만난 예술가, 기획자, 관람자들의 예술을 향한 마음은 아름답고 진지했다. 그 안에 머물렀던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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