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경험’이 재산…전문지식 발판 삼아 재취업·창업 장려
<5> 은퇴 인구 해결책 해외 사례는?
일본·영국·독일 등 ‘엑티브 시니어’ 명명 일할 기회 제공 경제 동력 삼아
독일 쿠비아, 복지 등 다양한 직업 훈련 제공…극단 운영해 여가 활성화
스웨덴·美, 출판·환경 등 전문가 역량 발휘 기회…日, 경력 활용 창업 지원
2024년 06월 16일(일) 20:10
쿠비아가 2014년 진행했던 ‘액션 데이’ 행사 장면. <ⓒ kubia_Stephan Eichler>
신중년(50~69세) 세대 증가는 광주·전남을 비롯한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가 모두 같이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지구촌의 고령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본·독일·북유럽 등은 이미 20~30년 전부터 고령층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 인구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이런 나라들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신중년 세대 문제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나섰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고령인구 20% 이상)에 진입한 국가들은 신중년 세대가 증가하는 문제를 복지 차원에서 접근했다. 특히 일본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신중년 문제 중에서도 단카이 세대(2차 세계대전 직후 태어나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끈 베이비 붐 세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국가 전체가 소비 침체로 빠졌다고 지적한다.

돈을 벌던 시기엔 왕성하게 소비했지만 은퇴 후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면서 일본 경제도 활력을 잃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도 1970년대 중반 고령 취업자 비율이 올라가고,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자, 1977년부터 연금 수령 시기를 65세에서 60세 아래로 낮춰 장년층의 조기 퇴직을 유도했다. 하지만 오히려 영국의 청년 실업률은 전보다 5%p 올라갔다. 신중년이 조기 은퇴하면서 소비를 줄이자 경제 활력이 떨어져 청년 고용도 덩달아 감소했다.

이에 이들 국가들은 은퇴 후 활발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5~60대 신중년을 ‘액티브 시니어’, ‘50+세대’ 등으로 명명하고 관련 프로젝트 및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 국가는 결국 ‘일하는 노인’이 많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은퇴한 이들을 복지적 관점으로만 대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일하게 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또 다른 동력으로 삼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고령화 이후 신중년이 사회의 중추로 변화하는데 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침체 될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독일은 신중년의 직업훈련을 위해 연방정부와 주정부, 시민사회 등이 협력하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독일 노트르라인 베스트발렌 주 렘샤이트에 문화예술교육 및 문화 연구소가 ‘노년기 문화예술교육 및 포용적 문화 역량센터’를 기치로 걸고 설립한 ‘쿠비아(Kubia)’는 독일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대표적인 신중년 교육 및 정착 센터다.

쿠비아는 노인들의 인생 이모작을 위해 민관 협력 문화노년학 자격증 1년 과정 등을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문화예술 및 교육, 사회복지, 요양보호관리 등 다양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

쿠비아는 단순 재취업뿐 아니라 신중년이 삶의 활력을 잃지 않도록 동기부여까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동기부여가 되어야만 시니어들의 창의성이 발현돼 재취업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를 위해 쿠비아는 노인연극포럼 ‘황금연극(Theatergold)’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베스트팔렌주에서 활동하는 80여 개 노인 극단으로 이뤄진 ‘황금연극’은 신중년 세대가 주축이 되는 연합 극단이다. 이들은 연극 ‘서머 나이트 룸’ 상연은 물론 극예술연구, 노년층 커뮤니티 활성화 등에 기여하고 있다.

고향 기류시 재생에 앞장 선 시미즈 씨 <ⓒ 주식회사 기류재생>


이러한 사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로 ‘수리(Repair) 카페’를 창립한 마틴 포스트마(50) 씨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환경 문제를 다루는 프리랜서 기자였던 그녀는 업사이클링을 새 비즈니스 모델로 제시했다. 수리 카페는 지역 주민들이 고장 난 물건을 가져오면 고쳐주거나 다른 물건으로 교환해 준다.

작은 물품을 수리해 주는 카페인 까닭에 신중년층이 운영하기에 큰 힘이 들지 않는다. 수리카페는 전 세계에서 ‘리페어 카페’ 모델로 확산해 한 해 매립폐기물 25만여 kg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결국 신중년의 경험에 의한 창의성 발휘가 재취업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북유럽 스웨덴에서는 신중년 세대를 사회 재진입시키는 데 목표를 두는 단체인 ‘카린스됫트라르’가 눈길을 끈다. 단체의 프로그램 참가자는 10명 내외, 이중 절반 이상이 5~60대 신중년 세대와 40대 이상의 중년층이다.

참가자들은 주로 직조물이나 수공예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12개의 사회적 기업이 모인 협동조합 베겐웃(Vagen ut) 또한 시니어들의 사회 재진출을 성공리에 이끌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양한 신중년 사회 재참여로 인해 스웨덴 노동시장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고도로 안정화됐다. 2017년 기준 55~64세 고용률은 76.4%로 조사됐으며, EU 평균 고용률인 57%를 훨씬 웃도는 수치를 기록했다.

스웨덴 정부는 신중년 세대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엄격한 고용 정책’(주로 연금과 관련된)을 병용했다. 장애연금 등과 관련한 장애보험 수혜 자격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 부족한 기금을 충당했다.

중장년층은 젊은 층보다 활동성이 부족하지만 경험이 더 많다는 점을 활용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이용한 재취업도 성공적이다.

미국의 경우 기업 라이프타임 아트가 전미주예술진흥기관연합회와 협력해 운영 중인 ‘크리에이티브 에이징’ 프로그램이 그 예다.

이 프로그램은 55세 이상 문화예술 전공자 등 신중년들이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문화예술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일주일에 1회(90분) 총 8회차 수업을 진행하며 지역 전문예술가가 강사로 참여한다. 수업 결과는 친구, 가족 등 공동체에 ‘전시회’ 형태로 공유되며 직접 만든 작품을 지인과 관람하며 신중년 사회 재참여, 커뮤니티 형성을 유도한다.

환경 분야 중장년 은퇴자의 재취업을 위해 미연방 환경청에서 운영하는 미국의 ‘SEE’(Senior Environmental Employment)도 신중년 전문 지식을 활용한 프로그램이다.

미 환경청은 전국단위 고령화 관련 민간단체 6곳과 협정을 맺고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SEE 소속 시니어들은 주로 상수도 공급관리, 환경정보 공개/제공, 환경교육 및 원조 관련 출판물 편집/제작, 쓰레기 매립지 확인 및 등급 분류 및 학교 석면 검사 등 업무를 맡고 있다. 총 1200여 명 회원이 활동하며 신중년 세대가 환경 분야에서 전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중년들의 가장 큰 고민인 창업 성공 사례도 이들 나라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50세 이상의 창업 러쉬가 이어지는 일본 또한 한국이 참조할 수 있는 ‘오래된 미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치킨집 등을 차리기 보다는, 신중년들의 경험을 살린 창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신중년 및 고령인구(50세 이상)가 기업을 창업한 비율이 90년대 초 11.5%에 그쳤으나, 2010년 이후 25.9%까지 상승했다. 이 같은 흐름은 50대 이상이 창업한 기업을 ‘숙련 기업’(起業)이라 칭하는 일본의 사회적 풍조와도 맞물려 있다. 숙련 기업들은 첨단 하이테크뿐만 아니라 범용 기술에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본 NPO법인 ‘기류(일본 군마현에 위치한 도시)재생’은 그 좋은 예다. 창업주 시미즈 히로야스 씨(창업 당시 62세)는 금융기관에서 40여 년을 근무한 뒤 고향에서 에너지기업 기류재생을 창업했다.

창업당시 기류시에는 술, 된장, 간장 등을 양조했던 창고가 많았지만 그는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에 주목해 관광 산업을 개척했다. 역전에 관광 안내소를 설치했으며 전동관광버스 ‘MAYU’를 개발하는 등 비즈니스 모델과 지역 재생을 접목했다.

이는 익숙한 지역문화유산을 사업에 접목하는 장년층 특유의 인사이트, 최신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중년층의 과감함을 복합적으로 발휘한 신중년 창업 성공 케이스다.

네덜란드의 비영리사업 모델 ‘수리 카페’를 창업한 마틴 포스트마(50). <ⓒ IFITXIT>


도쿄에서 열차로 1시간 거리인 가마쿠라에서 회원제 도서관을 설립한 신중년 스즈키(60) 씨 일화도 눈길을 끈다. 그는 광고 대행사에서 20년 이상 일한 뒤 도서관 ‘가마쿠라 역전 장서실’을 건립했다. 스즈키 씨는 가마쿠라시 관광과의 사업 공모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응모하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회원은 400명 이상에 달하며 회원 간 활성화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 역할도 톡톡히 맡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대학이 고령자 재교육을 통한 사회 재진출을 지원하는 케이스도 있다. 일본 시가현 ‘레이카디어 대학’은 지역활동 담당자로 활약할 수 있는 시니어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곳은 신중년 세대와 고령세대의 사회참여 의욕을 높이기 위해 필수강좌로 ‘향토이해’, ‘사회참여’는 물론 선택강좌로 ‘원예’, ‘도예’, ‘생활과학’, ‘문예’,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과목 등을 개설한다. 대학 졸업생 70% 정도가 지역사회 활동가로 환원될 만큼 효과도 크다.

지역 학계는 “신중년들의 사회참여를 위해 우선 그들 스스로가 사회 참여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동시에 지자체 등은 ‘사회적 인프라 구축’과 ‘정책 개발’에 전념해 효율적 사회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중년 세대를 연구해 온 전남대 이서연 가정교육학과 교수는 “신중년 사회 참여는 당사자들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노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사안이다”며 “해외 사례들처럼 신중년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에 건강, 경제력, 사회적 관계를 성찰하고 경제적 자구책도 모색해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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