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0년 맞은 이금이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우리 시대 독자들과 함께 끊임없이 성장하겠다”
[굿모닝 예향-초대석]
한국 첫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글 쓰면서 기쁨·보람 다 느껴
2024년 06월 11일(화) 08:30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 글작가 부문 최종후보(6명)에 선정됐던 이금이 작가.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작가는 그동안 동화에서 청소년 소설로, 역사소설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지평(地平)을 넓혀왔다. 일제강점기에 사할린으로 징용을 간 한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여성 디아스포라’ 세 번째 작품 창작에 몰입하고 있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일제강점기에 하와이로 떠난 10대 ‘사진 신부’들의 이야기(알로하, 나의 엄마들), 큰돌이·영미 가족의 성장사(밤티마을 시리즈), 세 아이의 성장동화(너도 하늘말나리야), 아동 성폭력을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유진과 유진)….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이금이(62)는 등단 이후 40년 동안 동화에서 청소년 소설, 역사소설로 문학세계의 지평(地平)을 확장했다. ‘지금, 여기’의 청소년들과 공명해 왔으며, 최근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주제로 한 새로운 ‘여성 디아스포라’ 작품 창작에 들어갔다.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 글작가 부문 최종후보(6명)에 선정됐던 작가를 서울 중구 신당동 약수역 인근 카페에서 만나 문학인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지난 5월 하순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 소야곶 ‘일본 최북단의 땅’ 비 앞에 선 작가.
◇한국 작가 최초로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 선정=“오랫동안 아동·청소년 문학을 해온 사람으로서 의미 있었던 건 제 개인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를 통해서 많은 언론이나 평소에 관심이 덜하던 분들까지 관심을 가져 주신 것이 더 좋았어요. 사실 저는 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나 보람은 그냥 쓰면서 이미 누렸기 때문에 솔직히 수상여부가 저한테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이번 기회에 아동·청소년 문학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었던 데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올해로 등단 40년을 맞은 이금이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는 지난 1~4월 ‘태어나서 글 쓰는 것 아닌 걸’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1월 중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이하 안데르센상) 글작가 부문 최종 후보(6명)에 선정됐다는 전화연락을 받은 날부터 4월 초순, 수상자를 발표할 때까지 두 달 여 동안 새롭게 시작하려던 소설창작 작업을 밀쳐둔 채 동분서주해야 했다. ‘안데르센상’은 덴마크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805~1875)을 기려 1956년 제정된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이다. IBBY(국제 아동·청소년 도서협의회)가 2년마다 글작가·그림작가 부문으로 나눠 한 명씩 선정해 시상한다. 이금이 작가는 지난 2020년 한국후보로 지명됐고, 올해는 최종후보(6명)에 올랐다.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작가는 5월 하순에 일본 홋카이도(北海島)로 답사여행을 다녀오는 등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가운데 밀쳐뒀던 세 번째 작품 집필에 들어갔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출간 30주년 맞아=충북 청원 태생인 이금이 작가는 1984년 가을 ‘새벗문학상’에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 같은 해 겨울 ‘소년중앙문학상’에 중편소년소설 ‘봉삼아저씨’가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동화창작교실’(2006년)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아동문학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아동문학이 날 선택해준 것 같다”라고 묘사한다. 모든 문예지를 구독했던 ‘문학청년’ 아버지와 이야기 들려주기를 좋아하셨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초등 3학년 무렵부터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를 남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꿈’을 꾸며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등단 10년째였던 1994년에 펴낸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은 어린이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처음으로 독자들의 팬레터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강렬한 요청으로 후속작인 ‘영미네 집’(2000년), ‘봄이네 집’(2004년)이 잇따라 탄생했다. 작가는 올해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출간 30주년 맞아 개정판을 내고, 4번째 작품인 ‘마리네 집’을 새롭게 선보였다. 네팔 국적 부모를 둔 초등학교 3학년 마리가 주인공이다.

동화에서 출발한 작가는 ‘너도 하늘말나리야’(1998년)와 ‘유진과 유진’(2004년) 등과 같은 작품 속에 가정 결손과 아동 성폭력 등 ‘지금, 여기’ 청소년들이 겪는 고민들을 폭 넓게 녹여냈다.

“강연을 가서 독자들에게 ‘우리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느냐’, ‘우리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해줘서 고맙다’ 이런 이야기도 듣곤 하죠.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제가 독자들에게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독후감 심사를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친구가 그 책을 읽고 독후감 맨 아래에 ‘나도 하늘말나리야!’라고 썼더라고요.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거나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자유인데 내가 생각했던 걸 그대로 받아들인 어린이 독자가 있어서 특별히 기뻤지요.”

◇‘디아스포라’ 사할린 한인들의 삶 그리는 작품 준비=이금이 작가는 등단 이후 동화에서 청소년 소설로, 역사소설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지평(地平)을 넓혀왔다. 40년 동안 쓴 50여 권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과 ‘유진과 유진’은 뮤지컬로 ‘2차 창작’됐다. 특히 역사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상반된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난 두 소녀(수남·채령)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깊이 있게 조명했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떠나 하와이에 ‘사진 신부’로 이주해 정착하는 세 소녀(버들·홍주·송화)의 삶을 그려낸다. 두 작품의 무대는 비좁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 유럽, 하와이다. 현재 준비 중인 새 작품은 사할린이 주 무대다.

언론매체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뿌리를 내리는 여성들의 장대한 드라마를 그린 두 작품과 앞으로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다루려는 작품까지 포괄해 ‘여성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 삼부작’이라 이름 붙였다. 작가는 원래 1월부터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다루는 새 작품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데르센상’ 최종후보로 선정된 후 언론 인터뷰 등 해야 할 일이 계속 생기면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작가는 5월 하순에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 왓카나이시(稚內市)로 일주일간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징용으로 끌려가는 한인들이 사할린주 코르사코프로 가는 배를 탔던 항구다. 올해 안에 원고를 써서 내년에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작가는 어떻게 해서 아동·청소년문학의 영역을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를 중심에 둔 역사소설의 바다로 나아갔을까.

“내 아이들의 청소년기와 맞물려서 정말 10년 동안 쉬지 않고 청소년들의 현실을 그렸어요. 10년을 쓰고 나니까 작품의 무대가 집-학교-학원으로 좁아지고, 주제도 좁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계속 이렇게 쓸 수는 없다’라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내 작품의 시공간을 달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판타지나 SF를 쓸 수 있었다면 장르를 바꿨을지도 몰라요.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작품무대가 하와이에 한정되지만,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예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청소년 나이대 등장인물들이 자기 운명을 개척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를 쓴거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를 다룬 이야기를 써야겠다’가 먼저가 아니고 ‘내 작품의 무대를 더 넓혀서 청소년들에게 다른 시공간을 보여주고 싶다’가 먼저였던 거죠.”

지난 4월 8일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북 토크를 하고 있는 이금이 작가(왼쪽)와 김서정 평론가. <이금이 작가 제공>
◇전작보다 성장한 글 쓰고 싶어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하와이로 떠난 10대 ‘사진 신부’와 같이 가슴에 깃든 이야기를 수년간 품으며 교감하는 ‘마음으로 글쓰기’ 단계를 거친다. 작가의 마음 안에서 완전히 체화(體化)돼야 비로소 꺼내서 쓸 수 있다. 등단 이후 한결같이 40년을 이끌어온 작가의 창작 원동력은 무얼까, 그리고 마음에서 풀어낼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앞으로 선보일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장대한 서사를 기대한다.

“제 안에 들어온 이야기죠. 그들이 간절하게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그걸 안 꺼내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저도 (안에 들어온) 이야기가 완성되면 빨리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게 저로 하여금 계속 쓰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사할린을 두 번 갔었어요. 본격적으로 답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사할린 동포들에게 중요했던 장소들은 다녀왔어요. 그분들이 억척같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열심히 역사의 행간(行間)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든 전작들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지고 또 성장한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저의 방향이라면 방향입니다. ‘이 작가는 자기 작품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어.’ 라는 얘기를 듣고 싶거든요. 그래서 나를 믿고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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