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초대석] 한국미술 아키비스트 김달진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
인생 규정 키워드는 ‘수집과 공유’
기록물 보존을 담당하는 전문가
부실했던 미술사 맥락 튼튼히 다져
유튜브 채널 통해 자료 아카이빙
‘미술자료 도서관’ 만드는 게 목표
2024년 04월 08일(월) 18:50
한국 근·현대미술 자료 수집과 기록에 평생을 바쳐온 ‘아키비스트’(Archivist)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관장.
‘한국미술 아키비스트’, ‘걸어다니는 미술백과사전’ 김달진(69)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의 인생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수집’과 ‘공유’이다. 명화 수집을 좋아하던 소년은 한국 근·현대미술 자료 수집과 기록에 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사적 수집에 그치지 않고 공적 공유로 확장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2016년 5월 유민문화재단·중앙일보 주관의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할 때 “한국민의 DNA에 새겨있는 기록의 역사를 빅데이터 시대에 새롭게 구현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의 표상인 그의 인생을 조명한 ‘김달진, 한국미술 아키비스트’(김재희 지음)가 최근 출간됐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품인 한국최초의 미술잡지 ‘서화협회보’ 창간호(1921년).
◇작가 335명 미술자료 스크랩한 ‘D폴더’=“매년 2~3차례 한국미술의 주요 흐름을 아카이브의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장소가 좁아서 다 보여줄 수가 없어서 결과물에 대한 단행본을 내는 것에 치중을 해요. 이번에도 윤진섭(미술평론)·강성원(비평미학) 선생님이 논문을 썼고 300쪽짜리 국·영문 책을 만들어냈죠.”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 자리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1층 전시실에서 ‘한국전위미술사: 영원한 탈주를 꿈꾸다’ 전(2023년 10월 30~3월 22일)을 개최했다. 근대 이후 ‘신흥(新興)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첫 등장하는 192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한국 전위미술(Avant-Garde)의 흐름을 ‘신흥하다’, ‘담장밖 그림’, ‘방독면과 수신호’ 등 7개 섹션으로 나눠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이었다. 한국최초의 미술잡지 ‘서화협회 회보’ 창간호(1921년)와 각종 팸플릿, 초청장, 신문기사, 잡지, 기념사진 등 김달진 관장이 직접 수집한 관련 실물 미술자료들을 통해 한국 전위미술의 지난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었다.

최근 출간된 ‘김달진, 한국미술 아키비스트’(벗나래 刊) 저자는 미술해설가이자 국립현대미술관 도슨트인 김재희 씨로, 장성출신 우호(又湖) 김영중(1926~2005) 조각가의 딸이다. 2022년 봄부터 김 관장을 16차례 인터뷰 하고, 김 관장의 방대한 일기장을 참고해 집필했다. 평생 동안 미술자료를 우직하게 수집해온 한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물 보존을 담당하는 전문가)의 한길 인생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저자는 ‘머리글’에서 “이 책은 김달진에 관한 첫 번째 책으로, 수집에 매료된 한 아이가 미술자료 전문가로 거듭나고, 수집한 미술자료를 공적인 매체와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까지의 과정을 주인공의 삶에 밀착해서 조명한 전기적 에세이다”라고 밝혔다.

2층 관장실 두 개 벽면에는 한국작가 335명의 스크랩북인 ‘D폴더’가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 김 관장은 ‘D폴더’를 활용해 2019년 ‘작고미술인 반추 기획전 (1999~2004년)’과 2021년 ‘다시 내딛다 기획전(2005~2009년)’, ‘D폴더:한국 근·현대미술 작가의 아카이브와 작품전’ (2023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D폴더’의 D는 ‘Daljin’과 ‘Data’, ‘Document’(문서)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신간에서 ‘한국미술 아키비스트’(Archivist)로 소개됐습니다. ‘한국 전위미술전’을 보면 사라져가는 미술자료들을 수집·정리하고 공유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아키비스트는 ‘Archive’(아카이브)+‘ist’(하는 사람)가 합쳐진 말로, 기록물 보존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직업사전’에도 등재됐습니다. 저는 실질적인 미술자료를 가지고 자료정리를 하는 거죠. 저로 인해 새로운 미술연표가 정리가 된 것입니다. 이게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기초적인 소스가 되는 거죠. 이것을 처음으로 정리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혹시 오기(誤記)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 다음 사람이 수정·보완하면 됩니다.”

(김달진 관장은 2013년 금성출판사에서 펴내는 중학교 2학년 도덕교과서 ‘직업속 가치탐구’ 코너에 ‘아키비스트’로 소개됐다. 그는 미술자료 수집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자료 하나하나를 우리 현대미술의 역사자료가 되도록 노력했어요.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와 다른 저만의 몫이죠”라고 밝혔다.)

▲‘D폴더’를 활용해 ‘작고 미술인 반추’ 기획전(1999~2004년)과 ‘D폴더: 한국 근현대미술작가의 아카이브와 작품’전(2023년) 등을 개최했습니다. 평생 스크랩해 오신 작가 335명의 ‘D폴더’ 내용이 궁금합니다.

“(천경자 화백자료를 스크랩한 ‘D폴더’를 꺼내며) 1950년대는 제가 수집을 안 했을 때니까 원본이 없잖아요. 이것은 나중에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가서 복사를 해서 넣어둡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중·고등학교 때 기사를 칼로 오려서 붙여놓은 거죠. 1969년 6월 3일자 동아일보 원본(이경성 미술평: 천경자 개인전 ‘미의식의 확대’)이잖아요. 이걸 보세요. 1974년 현대화랑에서 ‘아프리카 풍물화전’(9월 20~28일)할 때 만든 성냥갑입니다. 이게 살아있는 아카이브 자료죠.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신문과 잡지에 난 기사는 거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한 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김달진 관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왼쪽부터)(2016년 5월).
▲외부인이 찾아 와서 ‘D폴더’를 볼 수 있나요?

“공개하고 있죠. 복사할 때면 복사비를 당연히 내고, 미술관에서 빌려 가면 우리가 책정한 대여료를 받습니다. 이게 미술자료 공유화를 위한 하나의 실질적인 방법이라는 거죠. 2013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한국최초의 인상주의 그림으로 알려진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이 1939년이 아닌 1960년대에 그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 오 화백의 막내 따님(오순영)이 반론 자료 수집을 위해 저희 박물관을 5차례 방문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오지호 개성 남향집에 대한 연대기’ 연구 자료집을 완성했습니다.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개최한 ‘오지호 미술 아카이브전-팔레트 위의 철학’(2020년 12월 4~13일) 때는 국내 최초 컬러 화집인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년)을 비롯한 우리 박물관 소장자료 72점을 대여했습니다.”

▲평소에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고 강조하십니다. 박물관 소장 자료를 활용해 ‘신화적’인 글쓰기를 멈추고 ‘사실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한국전쟁 기간 중에 서울에서 열린 ‘백이의(白耳義·벨기에를 한자로 음차한 표기) 현대미술전’ 팸플릿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1960년대 초반까지는 팸플릿에 연도가 많이 빠져 있어요. 팸플릿을 가진 사람도 1953년이라고 혼돈했어요. 전쟁 중인데 큰 국제전이 열렸다는 게 좀 이상했죠. 제가 당시 신문을 뒤져보니 서울신문사 주최로 1952년 11월 10~16일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렸어요. 또한 작가의 행적을 행간과 행간에서 찾아내면서 더 정확해집니다. 어떤 것을 찾아 신화화된 것에 대한 근본적인 것을 되물어보고 역사 속에 서술합니다. 어떤 경우는 이것과 이것을 연결해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 그것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것을 찾아내는 거죠. 그러니까 아카이브라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세상에 다시 밝혀진다!’ 아카이브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자긍심, 자존감도 되는 거죠.”(김 관장은 60여 년 동안 국내에서 열린 외국미술 전시를 총망라해 ‘외국미술 국내전시 60년 1950~2011’(2012년 4월 25~7월 14일) 전을 개최한 바 있다.)

김달진 관장의 은인이자 멘토인 이경성(왼쪽)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장)(2002년).
◇“수전천석(水滴穿石)의 표상이 된 그림 같은 사람”=“그를 생각할 때면 두 개의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미련스런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다. 심지어 끈기와 우직함이 그의 DNA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 관장)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기록관(Archives)+박물관(Museum)을 합성한 복합문화 공간을 말한다. 그 라키비움의 선구자 김달진은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사람이다.”(유홍준 미술평론가)

독자들은 신간 ‘김달진, 한국미술 아키비스트’에 실린 두 명사의 추천사만으로도 김달진 관장의 인생행로와 정체성을 대략이나마 머릿속에 그릴 수 있으리라. 짐작하듯 김 관장은 50여 년 동안 우직하게 남들이 가지 않은 ‘미술자료 수집·보존·공유’라는 한길을 개척하며 걸어왔다. 이번 신간의 부제는 ‘새로운 가치창조, 수집에서 공유로’이다. 지난 2016년 5월 유민문화재단·중앙일보 주관의 ‘홍진기 창조인상’을 수상할 때 “한국민의 DNA에 새겨있는 기록의 역사를 빅데이터 시대에 새롭게 구현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달진, 한국미술 아키비스트’ 저자는 김달진 관장의 ‘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세 가지 일’로 ▲10권짜리 ‘서양미술전집’ 스크랩 ▲고교 3학년(1972년)때 ‘한국 근대미술 60년 전’ 관람 ▲이경성(1919~2009) 미술평론가(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와의 만남을 꼽는다.

“1972년 ‘한국근대미술60년전’의 중요한 포커스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본격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우리 근·현대미술작품을 조사·수집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죠. 그런데 60년 전에 나온 많은 작가들 가운데 유명작가 몇 명말고는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미술사에 중요한 작가인데도 의외로 없어서, 내가 (근·현대미술자료를) 모아 정리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1972년 경복궁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근대미술 60년 전’(6월 27~7월 26일)은 김 관장의 인생을 결정지은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그의 미술자료 수집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어준 은인이자 멘토였다. 1981년 9월 23일, 그는 미술자료 수집 담당 임시직(일당 4500원)으로 채용돼 첫 출근을 했다. 금요일마다 어김없이 사간동과 인사동, 동숭동 일대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가방과 쇼핑백 가득 전시 도록과 팸플릿을 챙기는 그에게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시절,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1927년작)과 함께 한 김 관장(1982년).
◇유튜브 ‘DJ MUSE’로 소통하는 ‘흰머리 청년’=김달진 관장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김달진미술연구소’를 개소한 때는 2001년 12월. 이어 2002년 9월에 미술정보 포털인 ‘달진닷컴’(daljin.com)을 오픈했다. 2008년 3월에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서울시 2종 전문박물관(제81호)으로 등록했다. 현재의 박물관 건물은 종로구 평창동→통의동→창성동→마포구 창전동에 이은 5번째 공간이다. 창전동 시절 전세기간 만료로 아스팔트에 나앉을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은행에서 거액을 융자받고 후원회의 지원으로 종로구 홍지동 오래된 3층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후 2015년 3월에 재개관했다.

현재 박물관은 도서관+기록관+박물관을 합성한 복합문화 공간, ‘라키비움’ 역할을 톡톡히 한다. 1차 한국 현대미술자료를 보고자하는 국내외 연구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방대한 자료를 모두 수용할 수 없는 공간부족 문제는 여전하다. 더구나 미술자료가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박물관 인근에 매월 127만원을 지불하며 자료보관 목적의 제2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일등별 뿐만 아니라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한국 미술계가 풍부해진다’는 지론을 편다. 그동안 수집해온 종이자료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빙’이 관건이지만 예산 부족으로 미진한 상태이다. 아카이브 관련 사업에 정부기관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매년 국가차원의 ‘미술연감’ 제작도 절실하다.

김 관장은 고희(古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젊은 시절처럼 여전히 ‘휴일 없이, 밤낮 없이’ 일한다. 새벽 5시께 기상해 새벽기도를 올리고 헬스장에 다녀온 후 신문 14종의 스크랩을 체크한다. 화제의 전시장을 돌아본 후 박물관에서 밤늦은 시각까지 유튜브 ‘DJ MUSE’에 올릴 동영상을 제작한다. 현재 구독자 3540명에, 동영상 2900 개가 업로드됐다. 직접 촬영하고 편집한다. 크게 미술계 전시소식을 전하는 ‘김달진이 가다’와 ‘김달진 미술사 이야기’, 박물관 소장자료를 소개하는 ‘작가와 함께’로 구성된다.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 자리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 관장의 꿈은 방대한 소장 자료를 디지털 DB화해 ‘미술자료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50여 년을 지속해온 그의 한국 근·현대 미술 아카이빙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잘한다고 박수를 치는데 그 내용은 잘 모르잖아요. 직원이 10명이 넘는데 지난해 보다 『월간서울아트가이드』 광고수익은 떨어지니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출간기념회에서도 얘기했는데 매일 어떤 자괴감과 회의감에 싸운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처음에는 취미를 가지고 미술자료를 수집했는데 어느 시점에 가서는 제가 꼭 해야 하는 사명감이 됐죠. 한국 근·현대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서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가 된다’를 제 나름대로 좌우명을 삼았습니다. 제 일은 죽을 때 까지 할 수밖에 없고 죽어야 끝나는 거죠.”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김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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