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4계] 동지섣달 석화(石花)가 피는 곳, 장흥 남포마을
동지섣달 꽃보다 귀한 장흥 바다의 보물, 석화
제철 석화 요리부터 소등섬 일출까지…알찬 1박 2일
도마 안중근 의사의 기상이 서린 정남진과 해동사
2024년 02월 02일(금) 19:25
장흥남포마을 굴까기 공동작업.
겨울 동장군의 기세에 바다까지 얼 때가 있다. 남해바다 갯벌 위에 하얀 살얼음이 필 무렵 피어나는 꽃이 있으니 바로 석화다. 일명 돌에서 피는 꽃, 석화(石花)라고 불리는 굴은 남도의 겨울 바다가 준 맛있는 선물이다. 겨울 바다의 멋과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석화의 고향은 정남진 장흥이 자랑하는 남포마을이다.

남포마을은 장흥군 용산면에서 바다를 향해 20여분 정도 더 달려가야 만날 수 있는 작은 갯마을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해변을 따라 온통 석화 밭이다. 남포마을 석화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100%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양식으로 키우는 다른 지역의 굴과 달리 갯바위에 붙어 사는데 썰물과 밀물을 맞으며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청정바다의 기운을 듬뿍 먹고 자란 남포마을 석화는 크기는 작아도 알이 탱탱하고 향이 좋아서 최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다에 눈이 내려앉을 때면 남포마을 석화를 맛보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데 덕분에 장흥을 대표하는 겨울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장흥 남포마을에서는 동지부터 이듬해 설날까지 한창 추운 한겨울에 석화를 수확한다. 물때에 맞춰서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작업을 하는데, 바닷가 갯바위에서 따 온 석화는 마을 공동작업장에서 손질한 후에 즉석에서 생굴로 판매하거나 석화구이로 내놓는다. 겨울이면 도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굴구이의 원조가 장흥 남포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이곳의 석화구이 역사는 오래됐다. 마을 사람들이 바다에서 갓 따온 석화를 새참삼아 껍질째 숯불에 구워먹던 것을 마을에 온 여행자들이 우연히 맛보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원조는 뭐가 달라도 다른 법, 겨울 바닷가에서 맛보는 석화구이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맛이다. 석화구이로 배를 채운 후에 떡국으로 입가심을 하면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짭쪼름한 맛에 향긋한 향이 어우러진 석화는 일찍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의 우유’로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해서 겨울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장흥 남포마을 소등섬
남포마을의 자랑이 석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자리한 표지석을 중심으로 정동쪽으로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이 강원도 강릉이라면 정남쪽 끝은 장흥 남포마을이다. 정남진 장흥을 알리는 표지석이 마을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정남진 표지석을 뒤로 하고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소등섬이 눈길을 끈다. 마을 해안가에서 50m 떨어진 곳에 마을을 지키듯이 솟은 작은 섬으로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마다 길이 열린다. 작은 소나무숲이 우거진 소등섬은 소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작은 불빛’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먼 바다에 고기잡이를 나간 가족들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던 곳으로 뱃사람들에게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던 소중한 섬이다. 그래선지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소등섬을 지키는 삼신할머니에게 정성스레 당제를 올리는데 보름날에 맞춰 남포마을을 찾으면 구경할 수 있다. 단, 마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공간인 만큼 소등섬을 둘러볼 때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다.

소등섬은 일몰과 일출 명소로 사랑받고 있는데 특히 겨울철 일출 풍경이 특별하다. 남해에서 맞는 일출은 동해에서 경험하는 해돋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해 일출이 장엄하다면 남해바다 작은 섬의 일출은 소박하고 단아하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펜션이나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소등섬 위로 떠오른 일출까지 직관하고 돌아오면 알찬 1박 2일 여행이 될 것이다.

남포마을에서 득량만 해안가를 따라 30분 정도 남쪽으로 더 내달리면 관산읍 삼산리에 닿는다. 이곳에 정남진 전망대가 있다. 지상 10층(46m) 규모의 전망대는 남해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모양새가 웅장하다. 1층 홍보관을 둘러본 뒤 10층 전망층에 오르면 사방 거칠 것 없이 시야가 터진다. 남해바다를 수놓은 득량도,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금당도, 금일도, 생일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정남진 전망대는 일출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데 장흥군에서 해마다 해맞이 축제를 이곳에서 연다.

정남진 전망대 안중근 의사 동상.
전망대 통일광장에는 정남진을 가리키는 커다란 한반도 지도가 바닥에 새겨져 있는데 그 옆으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안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높이 4m의 동상으로 안중근 의사가 단지(斷指)한 왼손으로 태평양 너머의 일본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니다. 정남진 장흥과 안중근 의사의 인연은 해동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장흥 장동면 만수산 자락에 자리한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국내 유일의 사당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장흥의 죽산 안씨 가문은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문중 사당 옆에 작은 사당을 짓고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해동사 안에는 안중근 의사가 친필로 남긴 유묵과 사진 등이 보존돼 있는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오전 9시 30분을 기억하며 멈춰 선 괘종시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지섣달 꽃 보듯이 본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 개성 명기 황진이가 화담 서경덕을 흠모하면서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맑고 깨끗한 장흥 바다가 일년 동안 고이 품고 있다가 동지섣달에만 보여 주는 꽃 석화(石花), 동짓달 긴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에 서리서리 넣어두었다가 정든 님이 오신 밤에 굽이굽이 펼쳐내어 보여주고 싶은 남도의 귀한 보물이다.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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