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100년 이어 온 ‘지산축구대회’ 아시나요
1921년 추석 우치-본촌면 공차기 시합…6·25때도 열려
1957년 광주 편입 후 북구 건국동·양산동서 대회 이어와
항일운동 역사 깃든 지산축구대회 100주년 기념비 제막
2024년 01월 29일(월) 20:20
29일 오전 광주시 북구 본촌동에서 ‘지산축구대회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전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지산(芝山)지역 한마당 축구대회’(지산축구대회) 100회를 기념하는 비가 세워졌다.

29일 광주시 북구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광주시 북구 본촌동에서는 ‘지산축구대회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기념비는 100회를 맞은 지산축구대회를 기념하고 명맥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지산체육회가 세웠다.

광주시 북구 건국동과 양산동 일곡동을 아우르는 지명인 지산의 이름을 딴 축구대회는 1921년 8월 15일(추석) 우치면과 본촌면의 공차기 시합으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추석 명절 지역민과 고향을 찾은 귀향객들의 한마당을 위해 창설된 축구 대회는 6·25 전쟁 중에도 열렸다.

지산축구대회는 1929년 개최된 경평(서울과 평양) 축구대회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선수 구성은 마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규모가 큰 마을은 2~3개 팀이 출전하기도 했지만 작은 마을은 선수가 부족해 고향을 찾은 친척들이 선수로 나섰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축구공도 없어 볏짚이나 천으로 둥글게 만든 공을 차기도 했다. 골대도 나무로 만든 탓에 공에 맞으면 부서지기까지 했다.

쉬는 시간에 부서진 나무골대를 수리해 경기를 재개하기도 했다.

열기도 뜨거워 축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주민들 모두 일손을 놓고 장구와 꽹과리를 두드리며 흥을 북돋았다. 마을 승리를 위해 너도나도 음식을 만들어 화합의 구심점이 됐다.

일제 강점기에는 징병·징용을 거부하는 항일운동의 장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마을은 상품으로 받은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도 벌였다.

1957년 광산군 지산면이 광주시로 편입돼 현재는 광주시 북구 건국동, 양산동 일대를 중심으로 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2003년부터는 지산초와 양산초, 광주북초, 주암초 학교 졸업생들이 모여 축구를 즐기고 있으며 같은해 ‘지산 축구대회’에서 ‘지산지역 한마당 축구대회’로 명칭도 변경됐다.

하지만 지난 2020년부터 2년간 정부의 코로나 19방역 조치에 따라 창설이래 처음으로 축구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 탓에 지난해 100회 지산축구대회가 성대하게 치뤄 졌다.

북구는 2014년 제93회 지산축구대회부터 대회 개최 보조금(2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해 100주년 행사 때는 50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김동윤 지산체육회장은 “대회 100년 역사와 경험을 토대로 광주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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