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시와 그림의 만남
‘그대가 그대에게 절을 올리니’
송기원 소설가·강대철 조각가
‘시화전’ 30일까지 오월미술관
예술·삶·이상세계의 단상 표현
2024년 01월 29일(월) 19:35
강대철 조각가의 그림과 송기원 소설가의 시화 작품에는 두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투영돼 있다.
보성 출신 송기원 작가. 시인이면서도 소설가인 그는 동인문학상 수상, 오영수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강대철 조각가는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전도유망한 작가였다. 1978년 국전 문공부 장관상과 제1회 중앙미술 대상을 수상했으며 10여 회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장편소설 2권과 수필집 3권을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문득 조각가로서의 삶과 세속의 업적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했다. 터를 잡은 곳은 장흥군 안양면. 어느 날 곡괭이로 토굴을 파면서 점토층으로 이뤄진 산의 속살과 맞닥뜨렸고, 조각가의 본능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토굴을 파면서 조각토굴‘을 완성했다.

송기원 소설가와 강대철 조각가가 시화전을 열고 있어 화제다.

강대철 조각가의 그림과 송기원 소설가의 시화 작품에는 두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이 투영돼 있다.
오월미술관에서 30일까지 진행되는 ‘그대가 그대에게 절을 올리니’는 이색적인 전시다. 모두 50여 점의 작품은 두 작가가 상정하는 예술, 삶, 이상 세계에 대한 단상 등을 표현하고 있다.

두 작가는 전시를 앞두고 각각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송기원 작가가 시선집 ‘그대는 언제나 밖에’와 잠언시집 ‘그대가 그대에게 절을 올리니’를 펴냈다. 강대철 조각가는 이에 앞서 시화집 ‘어느 날 문득’을 발간했다. 각각의 시집은 모두 살림 출판사에서 출간됐으며 짧으면서도 깊은 사유와 단상을 담고 있다.

송 작가는 전화 통화에서 “이번 시화전은 모두 강 조각가가 준비를 했다. 시화전의 시도 모두 그가 골라줄 만큼 많은 애정을 쏟았다”며 “이번 전시를 위해 잘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도 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화전의 시들은 일반적인 시가 아니라 잠언의 형식과 연관된 짧은 시들”이라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그런 주제의식을 담아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묵상 끝에서 건져 올린 잔잔한 울림을 지닌 시들과 만나게 된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문인이 지나온 삶에서 깨닫게 된 사유들은 곱씹어 볼 만하다.

“흐르는 물에 우선 마음을 맡기네/ 몸은 저절로 따라올 터이니/ 앞뒤 따질 것 없이/ 함께 물이 되어 흐르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는/ 흐름 사이에, 개구리밥들도/ 담홍색 손톱만한 꽃을/ 뒷소리인 듯 슬그머니 끼어드네.”

위 시 ‘개구리 밥’은 화자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작품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김으로써 물과 함께 흐른다는 자유의 의지를 표현한다. 시난고난한 젊은 날을 뒤로 하고 마음과 몸을 흐르는 물과 함께한다는 사유는 얼핏 도가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송 작가는 74년 시와 소설이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같은 해 11월 고은, 이문구, 박태순, 윤흥길, 이시영 등과 함께 ‘문학인 101인의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19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라는 조작극에 말려 10년형을 언도받고 구금생활을 했다.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구금에서 풀려났지만 다시 1985년 8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파란의 삶을 역사의 격랑에 휘말린 곡적의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지난 세월을 버텨왔다. 다음의 시 ‘푸른 불빛’이라는 작품이 주는 여운도 만만치 않다. 오랜 시간 광야와 같은 시절을 보내고 평온을 찾은 화자가 자신을 ‘푸른 불빛’으로 상정하고 있다.

“밤하늘에, 내가/ 푸른 불빛으로 박혀 있다// 구태여 내가 올라가거나/ 밤하늘이 내려온 것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혹은/ 아직 살아 있을 때부터// 밤하늘에, 내가/ 푸른 불ㅂㅣㅌ으로 박혀 있다.// 죽는다는 것도, 애오라지// 푸른 불빛으로 박혀 있는 순간일 뿐.”

강대철 조각가의 다양한 그림은 전시장 벽면에 부착돼 있다. ‘호머사피엔스의 유언’이라고 표기돼 있는 작품을 비롯해 ‘모란’, ‘휴일’, ‘회복기의 노래’ 등은 강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와 불교적인 분위기가 짙게 배어나온다. 마치 그의 시화집 ‘어느 날 문득’에 실린 시들이 발하는 느낌과 유사하다.

강 조각가는 시화집 ‘어느 날 문득’에서 “시골로 살림터를 옮겨 무명씨로 살아가면서 나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보낸 세월이 어느새 20년이 되어 가고 인생을 거의 다 써버린 이즈음에 그래도 어울려 한마디 하고 싶어 말을 내봅니다”라고 밝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06524500763810007
프린트 시간 : 2025년 06월 18일 02:2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