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아픔·안타까움…굴곡의 역사 속 ‘민주의 봄’ 되새기다
12월 12일에 ‘서울의 봄’ 관람해보니
개봉 20일 만에 700만명 돌파
쿠데타 비극 9일간의 이야기
17일 광주서 감독·배우 무대인사
2023년 12월 13일(수) 20:15
전두광과 하나회 맴버들이 모여 ‘쿠데타’를 모의하는 장면.
역사의 흐름이란 때로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다.

1979년 12월 12일의 대한민국이 꼭 그랬다. 박정희 대통령 사후 혼란스러웠던 정국, 이제야말로 민주의 꽃이 이 땅에 만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만연했었다. 아마도 1968년 체코 군부의 압제와 파시즘에 염증을 느껴 일어난 ‘프라하의 봄’을 목도하며 상상해본 봄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섣부른 희망은 신군부의 군홧발에 산산조각이 났다.

역사의 비극을 담아낸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20일 만에 누적 관람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기염을 토했다. 우리의 기대치를 한참 이탈해 버린 역사에 대한 공분(公憤) 때문인 것 같다. 12·12는 바꿔 쓸 수 없는 현대사의 아픈 질곡이지만, 문화예술로 다시 풀어낸 ‘현재화된 역사’는 오늘의 광주 시민들은 물론 전국 관객들에게 깊은 사유는 물론 역사를 성찰하게 만든다.

기자 또한 44년 전 12·12 쿠데타가 발발했던 12월 12일에 맞춰 지난 12일 수완지구 모 멀티플렉스에서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작품은 12·12사태의 배경부터 전개, 이와 얽혀 있는 하나회, 국방장관(김의성 분)의 비겁함 등을 초점화하면서 쿠데타의 비극을 시간 순대로 보여준다. 단 9시간의 이야기 속에서 ‘전두광’(황정민 분)은 군부 세력을 재편하고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등에 업은 채, 최규하 전 대통령 등을 압박하며 실권을 장악해간다.

헌정사상 민주주의가 능멸당한, 참혹하면서도 엄동 혹한의 시기를 ‘봄’으로 은유할 순 없겠다. 반어적 의미를 담은 ‘서울의 봄’은 그 자체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신군부 세력을 향한 분노, 굴종의 역사 등을 환기하며 시종일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정해진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 서사는 영화의 역설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전두광의 반란과 서울을 향한 진군, 폭압적인 군부의 권모술수가 펼쳐지지만 관객들은 그저 ‘관람’할 뿐이라는 사실은 무력감을 넘어 분노로 다가온다. 이 같은 연유에서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관람하다 상승한 맥박 수치를 SNS에 공유하는 ‘심박수 챌린지’ 등이 인기몰이 중이다.

작중 실존 인물 장태완 장군이 현신한 이태신(정우성 분)은 ‘군인은 정치로부터 멀어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강직한 인물이다. 그를 비롯한 작품 속 의인들과 정치군인 하나회의 대립구도는 영화를 보는 내내 팽팽한 긴장관계를 더했다. 실제 장태완 장군의 성격이 다혈질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영화 속 정우성은 차분했다.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모습은 영화와 현실을 비교하며 감상하는 묘미를 선사했다.

상영 내내 누군가는 주먹을 쥐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또 어떤 관객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속 장면들은 44년 전의 시간을 빠르게 역류해 들어갔고, 관객들은 무력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신군부의 불의에 대해 ‘영화적 복수’는 이뤄진 것 같다. 작중 전두환이 ‘전두광’으로 명명되지만 여기에 대해 광주 시민들은 “왜 전두환이를 전두광이로 지칭했느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전두환의 이름을 극화해 그저 ‘단 한 글자’를 바꿔 정치적 욕망에만 붙들인 광인(狂人) 같은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기에 전두 ‘광’이 적절해 보였다.

이날 영화를 관람한 최섭(53) 씨도 “전두 환이 아니라 전두 ‘광’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통쾌하다”며 “12·12사태나 5·18을 모티브로 영화가 많이 창작돼 광주정신과 민주주의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엔딩 크레딧이 내리고 군가 ‘전선을 간다’가 침울한 버전으로 흘러 나왔다. 원래는 군인정신을 표상하는 의미가 담긴 군가인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신군부의 왜곡된 군인정신을 질타하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다. 영화가 의도한 것이라면 대성공인 셈. 12·12쿠데타는 이듬해 광주 5·18을 촉발한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북구에 거주하는 박수현(여·26) 씨도 “영화를 보니 분노, 아픔, 안타까움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여운으로 남아 한번 더 관람하고 싶다”며 “700만 관람객 돌파를 넘어 1000만 그 이상의 신화를 썼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의 봄’은 오는 17일 메가박스 전대, 롯데시네마 광주, CGV 각 지점, 메가박스 하남 등지에서 주말 무대인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안세호 배우가 출연한다.

반드시 극장가를 찾아 객석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있다. ‘서울의 봄’은 관객들의 한숨과 분노, 울먹임 등이 뒤섞이면서 ‘공분’으로 필름메이킹을 완성하는 수작이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02466100761789007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16일 08:3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