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구락지 헤엄질’ 탈출…수영을 제대로 배우리라
임의진 시인의 광주 속살 순례기 ‘언저리와 변두리’ 시즌 2
<10> 남부대학교 시립 국제수영장
“개구리 수영법 익혀 뛰어들었는데
용케 죽지않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1930년 시민공원에 광주 첫 수영장
국제 규격 시설 ‘남부대 수영장’서
2019년 광주 세계 수영 선수권대회
2023년 11월 23일(목) 19:05
지난 2019년 제18회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가 열린 남부대학교 수영장은 국제대회 규격에 맞는 규모의 최신 시설로 우리 지역의 자랑이다. /최현배 기자 choi@
원더우먼을 북한에선 ‘방방 뜨는 애미나이’라고 부른다는데, 그러면 아쿠아맨은 뭐라고 부를까. 보통 여기선 헤엄 잘 치는 사람을 물개나 물귀신이라 한다. 어린 시절 동네 형들 따라다니며 수영을 배우고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저수지로 진출했다. 해마다 한 두 명씩 진짜 물귀신이 되어 은하수에서 헤엄치고자 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일명 ‘깨꾸락지 헤엄질’, 개구리 수영법을 익혀 물에 뛰어들었는데 용케 죽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제대로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몇 해 전 일이다. 전까지는 깨구락지를 면치 못했어. 금세 하체에 힘이 풀리고 뒤집힌 채 둥둥 떠 있다가 살아나오기를 여러 차례. 그런 저질 실력으로 저수지는 물론 태평양 바다까지 진출했다 아닌가.

한번은 EBS 교육방송 촬영차 멕시코 바다로 고고. 멕시코의 태평양 연안 바흐 칼리포르니아에 있는 로스카보스 도시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다. 거대한 고래상어를 만나 같이 헤엄치고, 참치 낚시도 하기로. 개구리 수영밖에 못한다고 말했음에도 피디는 촬영분을 뽑아야 한다며 어금니를 꽉 문 채 내 시선을 뿌리쳤다. 이 나이에 질질 짤 수도 없고, ‘아이고 예수님 부처님 용왕님 살려줍쇼’ 기도가 절로 나왔다. 얼굴빛이 노랗고, 울상이 되어 있는데 촬영 중엔 웃어야 된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에고.

어디만치 갔더니 바닷속에 정말 공룡만큼 큰 고래상어가 몇 마리 나타났다. 자! 이제 바다로 뛰어들라는 신호. 물에 들어가니 바닷속이 정말 악마의 입구멍인가 싶을 정도로 시꺼멓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구별에서 가장 깊은 바닷속이래. 게다가 고래상어는 사람 좋아하는 개처럼 달려들고, 녀석이 입을 벌릴 때 정면에 있으면 빨려 들어간다나 어쩐대나. 여차했다간 구약성서의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서 살게 될지도 몰라라. 그만 되었으니 배로 올라오라는 신호는 안 떨어졌다. 계속 한번 더, 한번 더. 와 진짜 이거 너무하네. 힘에 부쳐서 오줌이 찍. 오줌 냄새를 맡았나 고래상어들이 도망가고, 피디는 얼른 그 놈을 뒤쫓아가라는 신호. 나 그때 죽을 뻔 보았다.

개고생 끝에 대충 촬영분을 뽑고 돌아오는 석양의 요트에서 각오를 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리라. 죽다 살았으니 담엔 꼭 수영을 배우리라. 그러다 맞은 코로나 역병의 시대,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수영장이래서 내 수북 집에서 가까운 ‘남부대학교 시립국제 수영장’을 찾았다. 주부들 속에 끼여 배우기가 뭐하고 그래서 강사를 한 분 소개받아 개인 레슨을 받았다. 한 해 꾸준히 배웠더니 강사님 칭찬을 듣는 수준까지는 되었다. 육지 수영과 바다 수준이 다르긴 하다만, 다시 지중해나 멕시코, 칠레, 브라질의 바다로 간다면 제대로 수영을 뽐낼 수 있겠는데. 나 이래봬도 이제 ‘배운 놈’아닌가, 수영 배운 놈.

광주에선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스포츠경기가 여러 차례 열렸는데, 제18회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가 2019년 여름 광주에서 열렸다. 대회의 슬로건은 ‘평화의 물결 속으로(Dive into Peace)‘였고, 대회 마스코트로 무등산 개울과 샛강, 영산강에 사는 천연기념물 수달 한 쌍이었다. 이름도 귀여운 수리와 달이. 그러면서 만들어진 남부대학교 수영장은 국제대회 규격에 맞는 규모에다가 최신 시설물이다 보니 우리 지역의 자랑이며 보배라 하겠다. 물개 물귀신들이 오늘도 이곳에 모여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과 잠수까지 배우고, 병아리떼 아이들은 물론이고 인명구조요원 교육생들도 같이 물속으로 다이빙.

광주 하면 ‘광주천’이라들 그러는데, 이는 어쩌면 누군가들이 광주를 폄하 비하할 때 쓰는 말같다. 조그만 실개 천이 구도심을 관통하고 있는 걸 놀림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영산강 줄기가 도도히 흘러 남해안까지 나아가는 경로에 광주가 놓여있다. 해상왕 장보고의 땅 전라도, 무수한 섬을 끼고 있는 이 전라도 땅, 하고도 그 바다의 시원이 되는 강줄기를 뻗은 무등산과 변두리 봉우리들. 산 허리 내린 눈이 녹으면 개운하고 깔끔하게 씻겨 내려가고, 강물은 휘몰아치다가 바다로 접어들게 된다.

1930년대 가네보 전남공장(지금의 전남·일신방직 전신)을 세우면서 약속한 시민공원 조성사업의 첫단계로 문을 연 수영장. <광주시청 아카이브 자료>
1930년대 가네보 전남공장(전남, 일신방직 전신)이 세워지면서 기부를 목적으로 시민공원 조성사업을 약속했는데 그게 수영장이었다. 그래서 수영장이 광주에 처음 생겼다. 텅빈 들에 세워진 수영장, 1946년 기록물 사진속 아이들과 자전거 탄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맨발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겨울이 가장 힘들었겠지. 꽁꽁 언 수영장에 짚신을 신고 썰매를 지치던 아이들. 전쟁의 참화가 휩쓸어가고, 보릿고개 나락고개 거치면서 수영장 자리에 공장과 집들이 차례차례 생겨났다.

어두컴컴한 어머니의 자궁속 물길을 헤엄치고 나와 파닥거리면서 눈을 뜬 나와 당신은, 아쿠아맨 또 아쿠아걸. 젖몸살이 난 엄마, 몸 전체가 모유이고 물인 여인에 의지해 우리모두 목숨을 부지했다. 거친 세월의 물살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이 또 인생 아니런가. 여기저기 마을마다 우물이 났고, 우물에 등목을 하고, 우물을 마시고, 그 물은 논밭으로 흘러갔다. 빗물을 모으려고 저수지와 댐을 지었고, 실개천은 흐르고 흘러 강을 이뤘다. 절름발이 장애인 형도 물에 들어가면 더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 물에서 놀고 헤엄치며 이곳이 인도의 ‘바라나시’나 되는 것처럼 성스러운 의식을 치루면서 성장했다.

임의진 작 ‘연락선’
내 고향 강진, 탐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마을. 강진은 강과 바다를 끼고 두 개의 길로 갈라지는데, 나는 만덕과 망호 사초리로 난 그 바닷길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처음 목회를 하신 곳은 건너편 목리 다리를 지나 칠량. 그러니까 마량가는 길목 초입의 송산이었다. 갯벌 이름으로 불리던 마을. 길을 따라 쭉 가다보면 가마터들이 차례로 있어 청자, 백자, 옹기를 굽는 연기가 솔솔. 반파된 배나 풍랑에 뒤집힌 배를 지붕 삼아 게들과 망둥이들이 살림을 차려 살던 곳.

고향 사람들은 바다를 ‘바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루의 절반 물이 든 바다와 물 빠진 바닥을 보며 살게 돼. 논밭 말고 뻘밭도 밭이라 했다. 그 바닥에서 물질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기본 헤엄치기. 책이나 읽던 소년은 그때 개구리 수영을 배워 목숨 하나 부지하고 살아남았다. 그러다 이젠 목리 장어, 뱀장어 수준으로 쭉쭉 헤엄을 치며 물놀이를 즐기게 됐다. 아홉골 물이 중심에 모인다는 ‘옥루골’이 바로 강진이다. 뻘밭의 게처럼 그 강진에서 뭍으로 기어나와 광주권에 살게 된 뒤로, 나는 여태 그리운 것이 강이요 바다며 내 동무들 헤엄치던 그 물길인 게다.

임의진 작 ‘고래의 바다’
언젠가 록커이자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었다. 강가에서 바친 기도가 눈에 띄었다. “강물 소리는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성모상을 바라보며 나는 짧은 기도를 드렸다. ‘만일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겪게 하소서. 저에겐 살아가야 할 날들이 있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기도는 강물 소리에 섞여 하느님의 귀에 닿았을 것이다.”

하느님은 강가에서 바치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왜냐면 하느님은 강물이요, 바다이며 저 하늘의 은하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양버들은 항상 강가에 서서 헤드뱅잉을 하면서 찬미하고, 풀벌레는 나뭇잎에 새는 나뭇가지에 앉아 기도를 종알거리고, 낮달은 그 가지 끝에 기대어 오늘도 무사평안을 비는 게다. 코미디 방송에 종종 나오는 ‘웅이 아부지’도 밥을 다 먹으면 그 강변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대화가 부족한 사람들’은 저 강물과 먼저 대화를 시도할 일이다. 먼저 신의 지혜, 자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채송화와 비비추, 애기똥풀에 달빛이 쏟아지고, 하늘엔 순긋별 반짝이는 밤. 해당화 피는 뚝방길 따라 배나무골의 돌배주가 익는 함석집. 복사꽃 나뭇가지가 꽃대를 흔들며 치성을 드리는 꽃다운 밤에 정든 님과 둘이서 돌배주 마시다가 물에 뛰어들어 이태백이 되고파라. 또 수영으로 현해탄을 건넌 조오련이나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처럼 성큼 물에 뛰어들어 멀리멀리 어디 섬에 닿으면 아낙이 끓여낸 백합죽 한 그릇이 반갑겠다. 물개와 물귀신이 섬에 닿으면 들려오는 정겨운 사투리. “물비암도 아니고 멧뒤아지도 아닌디 무슨 수로 건너왔소이?” “디진다고 헤엄쳤재라이” “와따 장허시오. 암시랑토 안탕께 다행이요만...” <끝>



임의진

시인. 화가. 사진도 찍는다. 참꽃피는마을 ,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 여행자의노래 1-10, 심야버스 등의 수필집, 시집, 음반 등을 펴냈으며 EBS 세계테마기행,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등에 종종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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