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젓가락 금지의 기억
2023년 08월 24일(목) 00:00
대한민국의 대다수 남자들은 군대에 간다. 군인이 되지 않는 사람도 군사훈련을 기본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병역면제에 해당하는 혜택을 받은 축구선수 손흥민도 해병대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군대는 독특한 조직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일부다. 군대의 모든 분야가 특수한 형태로 구성되는데, 음식에서도 독자적인 역사를 쓰고 생태계를 만들어왔다. 병역을 이행한 대한민국 국민은 군대 음식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련한 추억도 있겠고, 쓴 아픔도 있다. 그런데 군대의 음식과 식생활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부분이고 이는 학술적으로, 사회적으로 연구할 만한 대상이기도 하다.

군대에서 먹이는 일을 급양, 보급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역사도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면 국민이 공유할 만한 독특한 내용이 많다. 예를 들면 필자는 최초로 잡채밥이라는 메뉴를 먹은 군번이며, 식후에 과일과 주스 등의 ‘후식’을 역시 최초로 보급받은 세대였다. 이는 당시 지휘관들이 여러 차례 강조한 일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주스나 과일을 보급할 만큼) ‘군대 좋아졌다’는 취지의 교육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대의 식사는 때로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으며, 그것은 전투력 유지라는 명분으로 꽤나 융통성이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면회 가서 충분한 식사를 하고 온 병사에게도 ‘정량’의 식사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고지하는 간부들이 있었다(쉽게 말해 사병에겐 군대 밥을 사양할 권리가 없다). 통제 우선의 편의적인 군대 통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입대하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사회에서는 먹지 않는 보리밥도, 한여름에 ‘양배추김치, 양배추국, 양배추무침’으로만 이루어진 이상한 식사도, 일요일 아침 외에는 절대로 라면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었다. 젓가락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훈련병 첫날부터 모든 병사는 ‘스포크’(포카락이라고도 불리는)라는 포크와 숟가락이 결합된 일체형 기물을 제공받았다. 반찬을 찍기에도 애매하고, 국을 뜨자면 흘리게 되는 이 기묘한 도구는 훈련병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이는 병사에게는 단절감을 가속시켰고, 군대로서는 통제력을 높이는 효과를 주었다.

그렇게 필자는 젓가락을 한 번도 못 써보고 30개월을 보내고 전역했다. 심지어 라면이 나온 날도 스포크로 먹어야 했다. 흥미로운 건 누구도 젓가락을 보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아마 지금 군대 당국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젓가락이 전장에서 쓸모없으니 평소에도 주지 않는 것이네, 젓가락을 자해나 위협도구로 사용할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네 등등 말이 돌 뿐이었다. 놀랍게도 이 문제는 최근까지도 명확하지 않다. 어떤 예비역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젓가락을 쓰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 다른 예비역은 ‘상꺾’(상병 중간 호봉이 지났다는 군대 은어) 이후에는 젓가락을 썼다느니, 또 어떤 예비역은 아예 신병부터 자유롭게 젓가락을 쓸 수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공군은 오래 전부터 젓가락 사용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대다수다.

자, 젓가락 하나 따위 쓰고 말고 뭐 대단한 일이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식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 사용에도 군대 내에서 일관된 원칙이 없었다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젓가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권침해나 넓게 보면 우리 한민족의 고유한 식사기술을 고의로 억제한 고약한 통제였다고 보는 게 옳다. 우리는 자라면서 젓가락질에 대한 집요한 가정교육을 받았고, 이는 중요한 사회적 교양으로 인정받았다. 왕년에 디제이 덕이라는 가수가 ‘젓가락질 못한다고 밥 못 먹나요’라고 외친 건 억압 사회를 향한 통렬한 야유로서 존중받을 일이다. 반대로 젓가락질을 하고 싶은 사람은 젓가락을 쓸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곳이 군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시아 사람들은 젓가락을 잘 쓴다. 일본과 중국은 숟가락은 거의 안 쓰는 젓가락 중심의 식사 문화다. 수저가 식탁에서 대등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문화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그런 젓가락을 강제로 쓰지 못하게 했던 지난 시절의 기억이, 많은 예비역들에게 결코 낭만의 군대 추억으로만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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