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유기, 모성(母性)과 사회 안전망 사이- 채희종 정치담당 편집국장
2023년 08월 08일(화) 22:00
갓난 아기를 생매장했다는 뉴스의 끔찍함에 놀라고, 또 그 사건 가해자가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한 달여 전부터 영아 유기 수사가 전국적으로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도 포털 사이트에 ‘영아 유기’라는 단어를 치면 연일 여러 건의 기사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세 명의 자녀를 양육 중인 부부가 두 아이를 수년 간격으로 낳아 숨지게 했다는 기사에서부터 아기 시신을 냉장고에 장기간 보관한 채 생활한 부부, 아이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엄마, 살아 있는 상태에서 매장한 엄마, 출산 3개월 전부터 범행을 모의한 후 낳은 지 닷새 된 아기를 살해해 하천에 버린 부부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잔혹 범죄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절망 속 이성 상실한 잔혹한 선택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범죄의 끔찍함이 아니다. 인류를 지탱해 온 기본 요소인 가족, 그 가족의 유대감과 어떤 형태의 정신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믿어온 부모의 사랑, 특히 인간의 가장 위대한 본성으로 추앙받는 어머니의 사랑(母性)이 부정되는 불편함이다.

패륜을 저지른 부모들은 하나같이 경찰에서 아이를 기를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답했으며, 미혼이나 동거 남녀들은 출산 사실을 주위에서 알까봐 두려웠다는 게 공통된 답변이었다. 이들에게는 부모의 본성이나 모성보다는 본인의 생존과 생계가 먼저 작동했는가 하면, 주변 시선에 대한 두려움 등 절망 속 이성을 상실한 선택만이 있었다.

이번 영아 유기 사태를 보더라도 사실 부모의 사랑이나 모성은 위대하지만 절대적인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영아 유기나 살해는 사회 공동체 유지라는 측면에서 감춰졌을 뿐 공공연하고 보편적이기까지 한 면이 있었다. 인류 초기나 고대는 물론 중세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 비율이 세 배 이상인 지역이 많았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노동력 공급을 위한 인위적인 조절로 분석한다.

대항 능력이 전무한 영아를 부모가 자신의 생존과 상황에 따라 유기하기나 살해하기 시작한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동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아 유기·살해는 조선왕조실록에만도 수십 여 곳에 걸쳐 기록될 정도로 역사적 증거는 넘쳐난다. 특히 신화가 인간의 본성을 극대화한 메타포라는 점에서, 현대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그리스 신화는 창세 신화편이라고 할 수 있는 첫장부터 영아 살해를 다룬다. 또한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들은 상당수가 영아 유기와 연결돼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아들로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거세하고 권력을 차지했지만, “너도 나와 똑같이 자식들에게 왕좌를 뺏길 것”이라는 아버지의 예언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먹어 치우고 만다. 절대자가 권력 유지를 위해 자식을 제거하는 상황의 은유로도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단어로, 자식의 아버지로부터 지원이 끊기면 아이를 살해하거나 버리는 현상을 ‘메데이아 효과’라고 한다. 그리스 영웅 ‘이아손’의 아내인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하려고 하자, 자신의 배로 낳은 두 아들을 죽여 버린다. 이후 아테네로 도망가 그곳의 왕인 ‘아이게우스’와 결혼한다. 혼자 출산했거나 이혼으로 경제적 기반을 잃은 여성이 자식을 유기하고 새로운 남성을 만난 것으로 밝혀진 이번 영아 유기 사건 수사 결과와 그대로 맞닿아 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태어나자마자 숲속에 버려져 목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그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과 어머니 헤카베는 임신했을 때, 태내 아이가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이 때문에 파리스가 태어나자 차마 직접 죽이지 못했던 부부는 이불에 싸서 하인에게 건네며 버리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산짐승 먹이가 되게 하려는 의도였다.



맘 놓고 출산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신화 중 가장 유명한 얘기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도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부모에 의해 산속에 버려진다. 인류가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린 생명체를 버렸던 영아 유기의 역사는 이미 고대 시대 신화에서도 중요하게 다룬 사회 현상인 것이다.

영아 유기의 현실은 어찌 보면 신화보다 더 냉혹하다. 우리는 자식을 버리거나 살해한 부모들에게 ‘반려견도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데, 어찌 부모가…’라고 비난하며 한편으로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이며, 주변의 보호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출산율이 떨어져 이제는 이민이 아니고는 대안이 없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일단 태어난 생명은 어떠한 경우라도 희생되지 않도록 국가의 제도와 사회적 보호망이 가동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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