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 확인 습관 된 어머니, 내려 놓으시라 말릴 걸…”
기록적 폭우 속 함평천 수문관리 나갔다 숨진 60대 사연
1년 전부터 관리원 맡으며 밤낮으로 성실히 현장 점검
사고 당일 남편과 나서…수문에 걸린 수초 치우다 참변
“‘마을의 기둥’ 어머니 같은 분 잃어” 이웃도 슬픔에 잠겨
2023년 06월 29일(목) 21:40
29일 무안군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함평천 수문 관리자 A씨 빈소에서 막내아들이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가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5분 정도 멍하니 바라보시더니 갑자기 옷을 챙겨 입고 나가셨어요.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29일 무안군 무안읍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함평천 수문 관리인 A(여·68)씨의 빈소에는 무거운 적막감이 돌았다.

A씨는 지난 27일 밤 광주·전남에 폭우가 쏟아지자 함평천 수문을 열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됐으며, 29일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A씨가 하루아침에 떠나버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오열조차 하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삼키기만 반복했다.

소식을 듣고 27일 밤 11시께 서울에서 함평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는 큰아들 B(44)씨는 허망한 마음에 하염없이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B씨는 “당장이라도 어머니가 ‘무슨 일 있느냐’며 걸어 오실 것 같다”며 “어떻게 전국에서 단 한 명인 수해 사망자가 우리 어머니일 수 있느냐”고 고개를 떨궜다.

A씨 부부와 함께 거주하던 막내 아들 C(42)씨 또한 “어머니가 지난해부터 수문 관리인 일을 맡으신 이후 수문을 바라보시는 게 습관처럼 굳으셨다”며 “아침운동을 나갈 때, 마을사람들과 마실 갈 때,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 수시로 수문을 확인하실 만큼 성실하셨는데, 조금 내려놓으셔도 된다고 말릴 걸 그랬다”며 눈물을 훔쳤다.

함평소방은 29일 오전 10시 40분께 함평군 엄다면 학야리 엄다배수펌프장 인근 교량 밑에서 숨진 채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 36시간만이었다.

함평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7일 밤 10시 30분께 남편과 함께 함평천 수문을 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A씨는 6개의 수문 중 3곳의 문에 수초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고,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나무 장대를 들고 수문에 걸린 수초를 걷어내려다 불어난 강물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

소방당국은 엄다배수펌프장 수문을 열고 강물 수위를 낮춰 가며 수색을 하던 중, 최초 신고 장소인 엄다면 송로리의 수문으로부터 1㎞가량 떨어진 교량에서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가족뿐 아니라 마을 이웃들에게도 ‘어머니같은 분’으로 기억에 남았다.

A씨는 함평군 학교면에서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으며, 동생들을 먹여 살리겠다며 10대 후반부터 공장 일을 하면서 가정을 위해 헌신했다.

스물 두 살 되던 해에 남편과 결혼해 함평군 엄다면에 신혼집을 차린 A씨는 이후 20여년동안 나주시청 직원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며 두 아들을 키웠다. 2000년께부터는 남편과 함께 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A씨의 동생들은 “쉬는 날 없이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농삿일을 도울만큼 근면성실했던 큰 누님은 어머니같은 분이셨다”며 “성당 봉사활동에 참가하거나 주말마다 마을 이웃들에게 김치와 쌀을 나눠주는 등 남을 돕는 일을 좋아했다”고 입을 모았다.

빈소에 찾아온 마을 이웃 주민들도 A씨의 비보를 믿지 못하겠다며 눈물을 떨궜다. 이들은 “A씨가 올해 부녀회장까지 맡을만큼 의욕이 넘쳤다”며 “김장철이면 김치를, 수확기에는 쌀을 챙겨주면서 이웃들과 나눴고 매일같이 연로하신 어르신에게 연락을 돌리는 등 마을의 기둥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지성옥 함평군 엄다면 학야1리 이장은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는 남편과 함께 노인일자리, 환경정화 등 마을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자 늘 노력하던 부부였다”며 “사고 당시에도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수문을 열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니, 온 마을이 슬픔에 잠겨버렸다”며 한숨을 쉬었다.

/함평 글·사진=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함평=한수영 기자 hs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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