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닭은 병아리를 품고 죽더라-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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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워너비의 멤버인 김진호가 부른 가족사진이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 엄마,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어느 덧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철이 들 무렵의 나는, 어릴 적 찍은 낡은 가족사진 속의 아빠를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진 속의 젊은 아가씨 같은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 희생하며 그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는 노래이다.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신 눈물을 쏟아내게 하며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얼마 전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왔다. 지난번 찾아 뵈었을 때 전동차를 구입하고 싶다고 하셔서 배송 예약을 하고 왔기 때문에 잔금도 치르고 전동차도 받아야 해서 다시 시골에 간 것이었다. 이제 노령이라 운전을 하시면 안 되는데도 평생 운전하셨다는 자만심이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 있는 차를 운전하셨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형제들과 상의 끝에 그 차를 정리 해 버렸다. 아버지 입장에선 이제 이동 수단이 없어져서 답답하셨을 것이다. 이젠 거동이 많이 힘드시고 지팡이를 짚고 걸으셔야 할 정도로 연세가 드셨다. 나는 8남매 형제자매 중에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젊을 때 사진을 보면서 왜 내가 저기에 있지 할 정도로 많이 닮았다. 하지만 이제 많이 늙으셔서 구십을 바라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는 나하고 닮은 것을 찾기 힘들어 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릴 적 육상부 코치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역도 선수였던 전병관 씨의 고향인 전북 진안군 마량의 한 뚝길에서 운동할 때였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병충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논이나 밭둑에 불을 놓아 풀들을 태웠다. 그런데 모두 타버린 곳에서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은 채로 죽어 있었다고 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에도 충격이기도 했고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자식들을 보호하려고 그 뜨거운 불길에서 죽어갔을 어미 닭을 생각하니 무척 가슴이 뭉클하다. 어미 닭은 그 불길이 무섭지 않았을까. 죽음의 공포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어린 병아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어미 품속에서 자다 깨어난 듯 튀어 나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주님이 날개 아래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 마치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만군의 하나님은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자녀가 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이사야 31:5).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면 천지분간 못하고 돌아다니는 어린 병아리들과 같다.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이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인 셈이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이다.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하나님이 품안에 따뜻하게 품고 계신다는 것을 자주 잊어 버리곤 한다.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또한 당연하게 받아 들이거나 마치 부족한 것인 양 서운한 마음을 크게 갖는 것 아닌가 싶다.
나의 아이들과 어릴 적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다. 양계장에서 평생 알을 낳다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던 잎싹이라는 암탉이 그곳을 도망쳐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족제비로부터 생명을 구해 준 청둥오리의 알을 품어 부화하게 되고 아기 오리 초록이는 그 암탉을 엄마로 여긴다. 엄마와 닮지 않아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상처받은 아기 오리를 달래고 사랑을 주며 키워 나간다. 어느덧 장성하여 청둥오리 무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초록이, 그런 오리 새끼를 키우기 위해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아 버린 암탉은 결국 어느 추운 겨울 새끼를 살리기 위해 먹잇감을 구하는 엄마 족제비에게 기꺼이 자기를 잡아 먹으라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부모님을 나를 위한 희생의 존재로만 여기던 생각에 큰 영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그분들 또한 자녀요, 형제이며, 친구이고, 동료였다. 그리고 제자였다. 그리고 이 땅의 소중한 한 그루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존재였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주님이 날개 아래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 마치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만군의 하나님은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자녀가 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이사야 31:5).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면 천지분간 못하고 돌아다니는 어린 병아리들과 같다.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이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인 셈이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이다.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하나님이 품안에 따뜻하게 품고 계신다는 것을 자주 잊어 버리곤 한다.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또한 당연하게 받아 들이거나 마치 부족한 것인 양 서운한 마음을 크게 갖는 것 아닌가 싶다.
나의 아이들과 어릴 적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함께 본 적이 있다. 양계장에서 평생 알을 낳다가 죽을 운명을 가지고 있던 잎싹이라는 암탉이 그곳을 도망쳐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족제비로부터 생명을 구해 준 청둥오리의 알을 품어 부화하게 되고 아기 오리 초록이는 그 암탉을 엄마로 여긴다. 엄마와 닮지 않아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 상처받은 아기 오리를 달래고 사랑을 주며 키워 나간다. 어느덧 장성하여 청둥오리 무리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는 초록이, 그런 오리 새끼를 키우기 위해 모든 시간과 힘을 쏟아 버린 암탉은 결국 어느 추운 겨울 새끼를 살리기 위해 먹잇감을 구하는 엄마 족제비에게 기꺼이 자기를 잡아 먹으라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부모님을 나를 위한 희생의 존재로만 여기던 생각에 큰 영감을 주는 장면이었다. 그분들 또한 자녀요, 형제이며, 친구이고, 동료였다. 그리고 제자였다. 그리고 이 땅의 소중한 한 그루 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