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작가 소설 ‘선재의 노래’ 발간…“슬픔이 슬픔을 어루만지며 위로”
할머니 죽음 맞은 10대 소년 이야기
글 쓰며 상실의 아픔 위안 받아
내년 상반기 후속편 2권 출간 예정
2023년 05월 23일(화) 18:45
공선옥 작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사람은 어린이 마음이 되는 것 같아요.”

곡성 출신 공선옥 작가(60)는 지난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을 겪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런저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게 된다. 타인이 또는 나와 무관한 사람이 당하는 슬픔은 ‘고통이 클 것이다’ 정도로 지레짐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그 슬픔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는 차원이 달라진다.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통과 무참함을 느끼게 된다.

공선옥 소설가가 이번에 펴낸 청소년 소설 ‘선재의 노래’(창비)는 사랑하는 이가 영영 떠나버린 세상에 홀로 남은 아이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전화 통화에서 “내가 아픔을 겪다 보니까 내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소설가는 남의 이야기를 자신의 일처럼 쓸 수 있고 나의 이야기를 제 삼자의 이야기처럼 쓰는 존재임을 가정하면, 이번 이야기는 상실의 아픔을 모티브로 독자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을 거였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부연했다. “깊고 깊은 슬픔 속에서 선재 이야기를 썼다. 글을 쓰면서 나는 선재가 되었다. 육십 살 나는, 글을 쓰면서 열세 살이 되었다. 선재는 글 밖으로 나와 내 등을 쐐애, 쐐애, 쓸어 주었다. 슬픔이 슬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선재는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가끔 부모님 빈자리를 느끼지만 할머니는 사랑으로 선재를 보살핀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크게 부족함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어느 날 선재는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린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줄 줄 알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소설 속 선재의 말은 상실의 강도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은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다.”

선재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연락이 닿는 친척도 없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집에는 특유의 할머니 체취가 남아 있다.

선재의 뇌리에 할머니와 했던 지난날들이 설핏 스쳐간다. 특히 괜한 심통에 어리광을 부렸던 날 보았던 할머니의 깊은 울음소리를 비롯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돌아온 자신의 말을 받아주던 할머니의 다정한 목소리는 선재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번 소설은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올해의예술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수상한 공 작가의 청소년 소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전작들에서 어려움과 싸워가며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청소년을 그렸던 것처럼,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애도와 성장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행히 소설에는 친척은 없지만 마을 주민들과 친구 등이 선재를 챙긴다. 홀로 남은 선재를 걱정하며 찾아온 상필이와 마을 할아버지는 든든한 친구라 할 수 있다.

공 작가는 “이번 소설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이며 연작 소설의 첫 번째 해당하는 서사”라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두 권 정도 소설이 더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연작소설은 선재의 친구인 상필이가 할머니를 잃어버린 슬픔을 다룬 이야기이며 세 번째 연작은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보라색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밝혔다.

작가는 서사는 거의 다 썼고 지금은 마지막 작업을 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혼자 된 할머니는 어린아이 마음이 돼버린다”며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할머니의 고통과 슬픔을 먼저 그 고통을 경험한 선재와 상필이 위로하는 내용이 될 것 같다는 얘기였다.

현재 공 작가는 2015년 가을부터 담양 수북에 거주하고 있다. 요즘 근황을 물었더니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시간은 한정돼 있고 체력이 부친다”며 소설에 대한 열정을 에둘러 표현했다.

작가에게 지금 슬픔을 당했거나 가까운 이를 잃어버려 고통 가운데 있는 이를 위해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라는 말을 물었더니 그는 “견디다 보면 힘이 생깁니다. 내성이 생기니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소설 속 선재를 통해 위로받은 작가의 고백일 터였다. “열세 살 선재의 슬픔에 육십 살 내 슬픔이 기대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났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사방에서 꽃이 피고 새 움이 돋는 봄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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