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날들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부국장
2023년 05월 10일(수) 00:00
“서울 전시 때, 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지난 4월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며 작품 한 점 한 점을 설명하던 작가가 말했다. 수묵 채색으로 세밀하게 그린 이 작품 앞에 서면 낮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화면에서 거의 사라져 희미한 실루엣처럼 보이는 노인과 “아”하는 입모양과 함께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이는 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 ‘검은 먹, 한 점’(8월 13일까지)전에서 만나는 김호석 작가의 ‘정신의 생’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림 속 인물은 김 작가의 어머니와 아내지만, 우리는 두 사람의 자리에 자신의 삶을 놓아 보게 된다.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게 하는 ‘자식인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 여름날 행복한 추억을 소환하는 ‘수박씨 뱉기 좋은 날’, 아내를 살뜰히 챙기는 노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인 ‘마지막 선물’ 역시 ‘우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김호석전과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

쉽게 잊히지 않은 작품들은 지난해 지인 장례식장에서 받은 책자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어머니-기억을 접으신 마지막 날들’이라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50여 페이지의 소박한 책자에는 치매를 앓았던 어머니와 보낸 일상이 담겨 있었다. 좋아하는 짜장면을 드시는 모습, 화투치고 나들이 하는 모습,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 등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책자는 “존재해 주심이 당신이 베푼, 인생의 마지막 역할”이었음을 알게 된 그의 ‘사모곡’이었다.

반대로 스타작가 김하나의 ‘빅토리 노트’는 그의 엄마가 46년 전 쓴 육아 일기를 기반으로 한 책이다. 엄마는 딸이 태어나던 때부터 다섯 살 생일까지 일상을 기록했고, 스무 살 딸이 대학에서 떨어진 날 육아 일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엄마의 사랑이 담긴 육아 일기는 김 작가가 힘겨울 때마다 든든한 응원군이었고, ‘인생 보물 1호’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몰려 있는 5월은 자연스레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 달이다. ‘무슨 날’에만 특별히 기념하는 게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바쁜 일상을 핑계로 잊고 있던 이들을 떠올리고, 더불어 마음까지 전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5월은 사랑하는 가족을 불시에 잃은 이들을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하는 달이기도 하다. 서로 얼굴 맞대고 마음을 나누며 손 맞잡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 그들에게, 어쩌면 5월만큼 잔인한 달도 없을 터다.

최근 광주의 어른 ‘오월 어머니들’은 전두환 대신 사죄하러 온 전우원 씨를 넓은 마음으로 품어줘 갚은 감동을 줬다. 가족을 앗아간 장본인의 손자였지만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며 그를 용서하고 안아 줬다.

어머니들이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 농사’전(31일까지 메이홀)를 연다. 1년간 수다도 떨고 울고 웃으며 주홍 작가와 작업한 작품 중 인상적인 건 ‘오월 어머니들이 생각하는 어머니’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1년 중 5월이 사라지고, 11개월만 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들은 그림을 그리며, 역사를 마주한 ‘광주의 어머니’ 대신 아이와 남편과 평온했던 ‘보통의 어머니’가 됐다. 서툰 솜씨로 그려나간 그림 속엔 ‘동시에 앞으로 보듬고 뒤로는 업고 키운’ 아이들과 행복했던 모습, 보자기에 도시락 싸서 온 가족 나들이 가던 추억들이 담겨 있어 뭉클하다.

어머니들은 ‘내가 좋아하는 오월 꽃’을 그릴 땐 회한에 잠기기도 했다. 꽃들의 축제인 오월에 정작 이 아름다운 꽃들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골목에서 이런 저런 꽃을 열심히 살피고,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했다”고 말했다.



마음을 나누는 일 ‘5월의 선물’

지난해 취재차 ‘단원고 4·16 기억 교실’을 찾았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잔잔한 기타 반주에 맞춰, 그저 305명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주는 영상이었다.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자, 누나이고 동생이었을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잊지 않는 것은 전시장 안내를 맡았던 유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바람이 머무는 날엔/ 엄마 목소리 귀에 울려/ 헤어져 있어도 시간이 흘러도/ 어제처럼 한결같이// 어둠이 깊어질 때면/ 엄마 얼굴 그려 보네/ 거울 앞에 서서 미소 지으면/ 바라보는 모습/ 어쩜 이리 닮았는지”

조수미의 노래 ‘바람이 머무는 날’은 사람들이 ‘눈물 버튼’이라 부르는 곡이다. 엄마라는 존재, 엄마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는 누구에게나 아련하기에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멜로디에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은 떠난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일, 곁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고 마음을 전하는 일,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어쩌면 5월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인지 모른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부국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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