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큐피드의 화살- 박용수 동신여고 교사·수필가
2023년 03월 26일(일) 22:00
우린 복식이 더 강했다. 그것도 혼합 복식, 시골 중학교라서 선수도 경험도 많지 않았다. 읍내 선수들은 고등학생 같았다. 키도 크고 힘도 좋아서 단식은 시합이 되지 않았다. 우린 복식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와 조를 이루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힘을 빼, 드라이브 각도에 따라 공이 어디로 튈 줄 몰라. 탁구나 인생도 그리고 사랑도 그래서 어려운 게지!”

부드러움에서 강한 힘이 나온다며 그 애는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하지만 그 앤 당호와 짝을 이루면 지는 법이 없었다. 다들 단짝이라고 했다. 둘이 한 조가 되어 공을 치는 모습은 한 쌍의 학이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우리에게 라켓은 총처럼 소중했다. 그래서 각자 라켓에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넣곤 했다. 하트 표시가 되어 있는 그 애 라켓. 그 라켓은 나를 보고 늘 사랑해 말하는 것 같았고, 내 라켓 속 화살은 항상 그녀 하트를 향해 있었다.

친구들이 귀가한 어느 날, 탁구대 위에 라켓 하나가 보였다. 그 애 손때가 묻은 라켓이었다. 땀내도 났다. 가만히 라켓을 만져 보고 가슴에 품어도 보았다. 그 애처럼 포근했다. 그리고 난 하트 정중앙을 향해 내 화살을 크게 그려 넣었다. 우리 승리를 아니 사랑을 위해 큐피드의 화살을.

다음날 아이들이 라켓을 둘러싸고 신나게 키들거리고 있었다. 난 내가 했다고 선뜻 나서지 못했다. 순간 아이들은 모두 당호를 보고 있었다. 당호나 당호를 보는 그 애 볼도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뒤 두 녀석의 연애는 더 기정사실화되었다. 쌩콩한 나를 본 그 애는 큐피드의 화살이 박힌 라켓을 흔들며 싱글싱글 웃었다.

‘저 화살은 내가 쏜 건 데…’

그 뒤로 난 탁구를 그만두었다. 무얼 하나 포기하니, 할 게 공부밖에 없었다. 운동에 대한 열등감이었는지 마침 공부가 쏙쏙 들어왔다. 그 앤 운동으로 난 공부로, 우린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코치 생활을 접고 최근에 고향에 돌아와 탁구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난 난 화분 하나를 들고 탁구장으로 갔다. 제법 큰 탁구장이었다.

나를 본 그녀가 아니 아줌마가 종종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화분인양 가볍게 안아 주며 토닥토닥 반겼다. 그녀에게서 그 옛날 땀 냄새, 후끈한 라켓 냄새가 났다.

“남편, 아니 당호는?” 생각지도 않는 말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이야?”

그녀는 좀 놀란 듯 했다, 졸업 후 만난 적이 없다는 그녀 말에 되레 내가 놀랐다.

“그럼 여태 혼자 산거야?”

탁구는 공을 주고받는 경기이다. 사랑도 비슷하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 애 말대로 사랑은 탁구공처럼 어디로 튈 줄 몰랐다.

조금 아니 많이 성급했다. 호흡이 잘 맞아서 둘은 결혼할 거라고 확신했다. 내게 그녀의 공이 와도 난 외면했다. 단단한 관념의 틈을 뚫고 새로운 생각이 들어설 수 없었다. 그녀 말대로 어깨에 힘을 뺏어야 했다. 사랑이 동사라는 말이 아련히 떠올랐다.

나오는데 보니 탁구장 간판이 ‘사랑의 큐피드’였다.

그녀는 어쩜 그때 내가 쏜 화살을 맞고 여태 화살의 주인공을 기다리느라 혼자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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