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 박석무 우석대 석좌교수
2023년 03월 20일(월) 00:30
5월 민중항쟁 관련 진실한 책이 나왔다. 의도적으로 5·18을 왜곡하여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무리들이 아직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지금, 왜곡하려야 왜곡할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게, 초등 4년생이 총탄에 쓰러지고, 중학생·고등학생들이 잔인하게 학살을 당했다는 엄연한 진실들이 기록된 책이 나왔다. 무장 폭도들의 폭동에 ‘자위권’을 발동했고 ‘질서 유지’ 차원에서 계엄군이 투입되었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이제는 통할 여지가 없게, 새벽을 지킨 소년들이 역력히 증언해 주고 있다. “어머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라면서 부모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시민군에 뛰어들어 계엄군의 정조준 총탄에 쓰러진, 나라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던 전영진 열사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생생한데, 다시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요즘도 여당의 지도급 인사가 어떤 교회 목사의 말에 부화뇌동하여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을 반대한다고 공언하는 세상, 정부의 핵심 요직에 있는 인사도 북한군의 투입으로 5·18 폭동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니,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 두고만 볼 것인가. 정치 쇼를 하느라 입으로는 5·18을 욕하지 않으면서도 내심으로는 5·18민주항쟁의 고귀한 뜻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민낯이 하나하나 또 드러나고 있는 징조임에 분명하다.

항쟁 기간에 어린 소년들이 죽어간 기록이 자세하고, 고등학생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5월 27일 새벽을 지킨 소년들의 이야기는 5월 정신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만천하에 알려주는 위대한 증언이자 투쟁의 기록이다. 무너져가는 조국을 지키고 파괴되는 민주주의를 살려내려고 죽기로 맹세한 소년들의 정의로운 혼이 팔팔하게 살아있는 증언이요 기록이다.

이런 이유로 5·18은 의거요 민중항쟁이요, 학살자에 맞서 싸운 의로운 투쟁이었다. 소년 시민군들이 싸우던 과정에서 목격했던 진실들, 부녀자들이 시민군에게 먹이려고 주먹밥을 제공하던 일, 적십자병원 앞에 남녀노소 모두가 팔을 걷고 헌혈의 대열에 줄을 서던 모습, 그 많은 시민군들이 총을 들고 싸우면서도 길가의 전당포·은행·금은방 하나 손대지 않았던 사실, 이런 모든 진실은 의로움에 분노한 민중은 정의로운 일 아니고는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순진무구한 소년들의 증언이 바로 진실이다.

이 한 권의 책이야말로 군홧발과 총칼에 의해 고귀한 생명들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학살당했고, 비록 죽음이야 면했지만 생존하기까지의 참담한 고통을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이다. 죽어간 열사들의 위대한 투혼도 자랑스럽지만, 못 죽은 한으로 생을 걸고 항쟁의 진실을 밝히고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하고 있는 소년 투사들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개개인의 스토리를 모아놓고 보면 5월 항쟁의 전모가 완전하게 나타나고 쿠데타 세력인 계엄군들의 잔인무도한 학살 만행을 숨김없이 파악할 수 있는 자료집이다.

그동안의 5·18 관계 자료집은 주로 대학생이나 일반 시민들이 주역으로 정리되었지만, 이번에 발간된 소년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사실들을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자료집이다. 살기는 좋아하고 죽기는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대학생 선배들이 어린 소년들은 귀가하기를 권하며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했지만, 소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들이 새벽을 지켰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래서 필자는 그 책의 추천사에서 “소년들은 위대했고 계엄군은 잔인하고 무도했다”라는 말을 주저 없이 내걸었다. 그렇다! 위대한 소년들의 5·18 체험기와 증언록인 이 책은 5·18 진상을 밝히는 자료로서도 가장 귀중한 자료의 하나가 될 것이다. 책을 펴낸 ‘5·18민중항쟁 고등학생 동지회’가 자랑스럽다.

몇몇 소년들의 시민군 활동 과정을 읽어보면 5·18 학살의 전개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던가도 알게 되고, 술 취한 계엄군들이 양민 학살에 주저함 없이 총질하던 현장도 읽을 수 있다. 새벽을 지키다가 겨우 죽음은 면했지만 무자비하게 체포 구금되던 과정에서 그들이 저지른 만행도 역력히 알게 되는 기록이 많다. 인간인 계엄군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야수처럼 어린 학생들을 짓밟고 구타하던 모습은 5·18 학살의 잔인무도함을 여실히 파악할 수 있다.

장하다. 어린 소년들이여! 이제 그들도 모두 환갑이 넘은 중늙은이로 변한 사람이 많은데,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이 망가져 고생하는 시민군도 많고, 생활의 안정도 찾지 못한 사람도 많다. 어떻게 해야 5·18의 진실이 완전하게 밝혀지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제대로 치유할 방법이 있을 것인가. 책을 읽다 보면 눈물이 앞서기만 한다. 이 책이라도 널리 널리 보급되어 진실이 밝혀지는 날이 빨리 오기만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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