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묵향인쇄 대표 “정교한 손글씨 ‘세필’ 맥 끊길까 걱정입니다”
광주 유일 ‘세필’ 명인 김재현 묵향인쇄 대표
한때 청첩장 등 하루 수 백장 작성…컴퓨터 보급에 수요 급감
‘광주 인쇄 장인’ 제1호 등록…“정자체 역사 사라지지 않기를”
2023년 02월 06일(월) 20:45
오래전 광주 동구 서남동의 한 인쇄가게에서는 하루에도 수 백장씩 사람사는 이야기가 가는 붓으로 정교하게 기록됐다. 오늘날처럼 컴퓨터가 보급 되기 이전에는 가느다란 붓으로 쓰는 ‘세필’이 각광을 받았다.

여수 출신 김재현 묵향인쇄 대표(68)는 ‘세필’(細筆) 장인이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와 광주시 등이 주최하는 ‘광주 인쇄 장인’ 제1호로 등록됐으며 분야는 ‘세필’.

김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묵향 인쇄소. 이곳에선 출력부터 복사, 명함제작, 현수막, 제본, 팜플렛 제작 등이 이루어진다. 다양한 인쇄기계가 복작하게 돌아가는 실내는 여느 인쇄소와 다를 바 없지만 한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인쇄소 한 켠에 어림잡아 100여 점 정도 돼 보이는 세필이 자리했다.

세필은 주로 안내장을 기록하는 형태가 일반적인데 종이는 한자지부터 타자지까지 다양하다. 1980년대만 해도 광주에는 다섯 명의 세필 전문가가 있었지만 현재는 김 대표 혼자 남았다.

40여 년 전, 그는 동구 서석동에 묵향인쇄를 열었다. 군대를 제대하면서 광주에 정착하게 됐고 당시 세필 관련 업을 하던 인쇄소 지인과 연이 닿아 종업원으로 일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하는 일에 소질이 있었던데다 학창 시절 서예학원에서 배운 글씨 덕분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김 대표는 당시를 ‘눈 코 뜰 새 없던’ 시절로 기억한다. 청첩장, 인사장, 부고장부터 관공서와 학교에서 의뢰하는 임명장과 졸업장 등에 이르기까지 세필을 찾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가장 바쁠 때인 연말에는 하루에도 몇 백장씩 작성하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경조사와 영광의 순간들을 글씨로나마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면서 “안내장을 받아 든 이들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글씨를 쓸 수 있냐’고 물을 때는 참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흔히 취미로 접하는 서예의 경우 예술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흘림체를 사용하는 반면, 세필은 고른 글씨로 정교하게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자체를 쓴다. 많은 이들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면서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값비싼 세필 작업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시대의 변화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김 대표는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인쇄업에 뛰어들어 관련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세필보다 인쇄업이 주가 됐지만, 그는 언제나 시대에 발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김 대표의 가슴 한켠에는 세필에 대한 애정이 자리한다. 어쩌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찾아와 세필 한장 써달라고 하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세필 수요가 줄면서 이를 업으로 하는 이들도 자연스레 사라졌어요. 서예를 기반으로 수십 년 간 숙달해야 하는 탓에 ‘세필 2세’를 꿈꾸는 이들도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가면 사람이 쓰는 정자체의 역사가 뒤안길로 사라질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글·사진=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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