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체 손상 확인 못해…바닷물 끌어오는 ‘씨 체스트’ 손상됐을 수도
[전문가들이 본 신안 ‘청보호’ 전복사고 원인과 대책]
금지구역 조업 위해 브이패스 꺼 두는 어선 많아…구조작업 지체
5년 정기검사 외 결함·손상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 필요
금지구역 조업 위해 브이패스 꺼 두는 어선 많아…구조작업 지체
5년 정기검사 외 결함·손상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보완 필요
![]() 청보호 전복사고 사흘째인 6일 오후 목포해경전용부두에서 선원 가족들이 사고현장으로 가는 해경선에 오르고 있다. /목포=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
지난 4일 신안군 임자도 해상에서 ‘청보호’가 전복된 사고와 관련해 원인과 대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외부 충격에 의해 선체가 파손됐을 것이란 설을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 사고 당시 침수 신고 10분여만에 전복까지 이뤄질 만큼 선내로 물이 빠르게 차올랐다는 점에서다.
김광수 목포해양대 해양학부 교수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 외부 충격으로 선체에 작은 금이나 파공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에는 조그만 손상으로 시작돼 파손 여부를 알지 못했다가, 항해 도중 서서히 균열이 커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배가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이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FRP는 유리섬유나 탄소섬유 등을 플라스틱과 합성한 것으로, 철·나무에 비해 제작 단가가 저렴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해 파공이 생기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생존자와 해경이 선체 내·외부에서 뚜렷한 손상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선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외부에서 바닷물을 끌어오는 장치 ‘씨 체스트(Sea Chest)’가 손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 체스트는 바닷물을 청소용수, 엔진 냉각수 등으로 쓰기 위해 내부로 끌어오는 장치로, 흡입구와 파이프, 밸브, 펌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밸브나 파이프 등에 누수가 생겨 바닷물이 새어나왔을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 설명이다.
배를 진수하기 전에는 바닷물이 새지는 않는지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면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선체가 건조한 지 1년도 안돼 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선체 문제 발생 여부를 즉각 확인하고 신고하는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라며 “5년에 한번씩 받는 정기 검사뿐 아니더라도, 결함과 손상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끔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건조한 지 얼마 안 된 새 배라도 평소 수리·정비를 소홀히 해 파손, 균열 등을 방치했고, 이것이 사고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전 관리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더 촘촘하게 갖춰야 한다고 임 교수는 설명했다.
임 교수는 또 “청보호 내 구명보트가 제 때 작동하지 않는 등 이미 설치해 둔 장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무작정 안전장비를 쌓아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장비 점검과 안전교육 등에도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어선위치발신장치 겸 자동 입·출항 신고 장치인 ‘브이패스(V-pass)’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임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브이패스는 선체에 충돌이 감지되거나 일정 각도 이상 배가 기울면 인근 해경과 어업관리단 등에 경보와 함께 현재 위치 정보를 보내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다만 해경과 어업관리단은 이번 사고 관련 경보를 접수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존자 또한 휴대전화로 112에 전화해 사고 신고를 했으며, 신고자가 전화로 통화하면서 일일이 좌표를 불러 가며 구조 요청을 했다는 진술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조업금지 지역에서 조업하기 위해 일부러 브이패스를 꺼 두고 운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탓에 구조 작업이 다소 지체됐을 것이다”며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평소 청보호에서 침수가 반복됐고, 출항 당시에도 배에 기우는 이상 현상이 있었다는 등 생존자 진술도 ‘안전 불감증’의 증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사고 당시 선원들이 대부분 선미에 몰려 있었다는 점에서 안전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됐다.
일반적으로 배는 선미 쪽에 엔진 등 기관이 몰려 있어 선수 쪽보다 무거운데, 사고 당시 선원들은 선미 쪽에 6명가량이 몰려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선원들이 사고 대처요령 등 안전교육을 충분히 받았다면 대처가 더 빨랐을 것”이라며 “승선에 앞서 충분히 안전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해해경청에 따르면 지난 3년동안 목포, 완도, 여수 등 서해해경 관할 바다에서는 2020년 575건, 2021년 570건, 2022년 602건의 어선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중 전복사고는 2020년 14건, 2021년 17건, 2022년 20건으로 다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 실종, 부상 등 인명피해도 2020년 47건, 2021년 60건, 2021년 39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외부 충격에 의해 선체가 파손됐을 것이란 설을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다. 사고 당시 침수 신고 10분여만에 전복까지 이뤄질 만큼 선내로 물이 빠르게 차올랐다는 점에서다.
이번 배가 FRP(섬유강화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이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FRP는 유리섬유나 탄소섬유 등을 플라스틱과 합성한 것으로, 철·나무에 비해 제작 단가가 저렴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해 파공이 생기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생존자와 해경이 선체 내·외부에서 뚜렷한 손상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선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외부에서 바닷물을 끌어오는 장치 ‘씨 체스트(Sea Chest)’가 손상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씨 체스트는 바닷물을 청소용수, 엔진 냉각수 등으로 쓰기 위해 내부로 끌어오는 장치로, 흡입구와 파이프, 밸브, 펌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밸브나 파이프 등에 누수가 생겨 바닷물이 새어나왔을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선체가 건조한 지 1년도 안돼 사고를 당했다는 것은 선체 문제 발생 여부를 즉각 확인하고 신고하는 시스템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라며 “5년에 한번씩 받는 정기 검사뿐 아니더라도, 결함과 손상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끔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이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건조한 지 얼마 안 된 새 배라도 평소 수리·정비를 소홀히 해 파손, 균열 등을 방치했고, 이것이 사고까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전 관리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더 촘촘하게 갖춰야 한다고 임 교수는 설명했다.
임 교수는 또 “청보호 내 구명보트가 제 때 작동하지 않는 등 이미 설치해 둔 장비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무작정 안전장비를 쌓아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장비 점검과 안전교육 등에도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어선위치발신장치 겸 자동 입·출항 신고 장치인 ‘브이패스(V-pass)’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임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브이패스는 선체에 충돌이 감지되거나 일정 각도 이상 배가 기울면 인근 해경과 어업관리단 등에 경보와 함께 현재 위치 정보를 보내는 기능을 갖고 있다. 다만 해경과 어업관리단은 이번 사고 관련 경보를 접수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생존자 또한 휴대전화로 112에 전화해 사고 신고를 했으며, 신고자가 전화로 통화하면서 일일이 좌표를 불러 가며 구조 요청을 했다는 진술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조업금지 지역에서 조업하기 위해 일부러 브이패스를 꺼 두고 운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탓에 구조 작업이 다소 지체됐을 것이다”며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평소 청보호에서 침수가 반복됐고, 출항 당시에도 배에 기우는 이상 현상이 있었다는 등 생존자 진술도 ‘안전 불감증’의 증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 설명이다.
사고 당시 선원들이 대부분 선미에 몰려 있었다는 점에서 안전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됐다.
일반적으로 배는 선미 쪽에 엔진 등 기관이 몰려 있어 선수 쪽보다 무거운데, 사고 당시 선원들은 선미 쪽에 6명가량이 몰려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선원들이 사고 대처요령 등 안전교육을 충분히 받았다면 대처가 더 빨랐을 것”이라며 “승선에 앞서 충분히 안전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서해해경청에 따르면 지난 3년동안 목포, 완도, 여수 등 서해해경 관할 바다에서는 2020년 575건, 2021년 570건, 2022년 602건의 어선 사고가 발생했으며, 이 중 전복사고는 2020년 14건, 2021년 17건, 2022년 20건으로 다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망, 실종, 부상 등 인명피해도 2020년 47건, 2021년 60건, 2021년 39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