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그림-이은화 지음
2023년 02월 03일(금) 09:00
때론 누군가의 뒷모습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등을 보인 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또 그와 똑같은 시선으로 어떤 풍경을 바라보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아마도 뒷 모습을 담은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이 그림일 터다. 작가와 작품의 이름은 잘 몰라도, 거대한 바위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대표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품 ‘안개 바다 위 방랑자’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사연 있는 그림-고통과 환희를 넘나든 예술가 32인의 이야기’의 표지에 담긴 작품 역시 한 여인의 뒷모습이다.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이 작품을 그린 이는 카스파르 다트 프리드리히로, 모델은 바로 그의 아내다. 은둔과 고독의 화가로 불린 그는 사람의 뒷모습을 주로 그렸다.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술사를, 런던예술대에서 회화 전공으로 순수미술 석사를 취득하고 뮤지엄스토리텔러로 활동중인 이은화 작가의 ‘사연 있는 그림’은 대표작에 얽힌 사연을 통해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만나는 책이다. 그들은 지독한 가난과 사회적 차별, 끔찍한 성범죄,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책에는 고흐, 모네, 피카소 등 익숙한 작가들도 있지만, 낯선 작가들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미술사(史)에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영국의 미술가 리처드 롱은 낯선 작가다. ‘걷는 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전 세계 도처에서 걷기와 일시적인 흔적 남기기를 통해 작품을 제작해왔다. 미대생 시절,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오라’는 과제를 받은 그는 푸른 잔디밭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직선으로 쉼 없이 걸었고 걷기의 반복으로 새겨진 잔디 위의 흔적은 첫 작품 ‘걸어서 만든 선’이 됐다. 영국 동해안에서 주운 돌 하나를 서해안에 내려두고, 서해안에서 주운 돌을 다시 동해안에 내려놓는 20일간의 도보여행은 작품 ‘교차하는 돌’이 됐다.

차별과 고난을 딛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여성작가들이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성범죄 피해자에서 미술사 최초의 위대한 여성화가로 거듭난 17세기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 ‘자화상-회화의 알레고리’는 자신을 창조자이자 창조물 그 자체로 묘사하며 강렬한 인상을 던진다. 또 1961년 총을 쏴서 그린 그림 일명 ‘사격 회화’로 알려진 니키 드 생팔, 인상주의 홍일점 베르트 모리즈 작가 등도 만날 수 있다.‘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숲으로 간 미술관’ 등 미술관 관련 책도 꾸준히 출간한 저자가 각각의 그림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을 자세히 소개한 점도 눈길을 끈다.

<상상출판·1만75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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