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안에도 ‘슈퍼 박테리아’가 나타날 수 있다- 유재식 조선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2023년 02월 02일(목) 00:15
인류의 근대 의학사는 세균과의 싸움이라 봐도 무방하다. 1876년 파스퇴르가 ‘세균’이라는 미생물을 처음 발견했고, 1930년대 중반 설파제라고 흔히 불리는 첫 항생제가 개발됐으며, 1940년 경에는 페니실린의 대량 합성에 성공해 2차 세계대전에서 감염으로 죽어갔던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됐다.

그러나 인간이 페니실린을 개발하자, 세균은 페니실린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드는 돌연변이 세균을 만들어 이를 무력화시켰다. 그러자 다시 인간은 페니실린을 분해한 효소를 억제하는 억제제를 혼합해 이 돌연변이 세균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했으며, 이 항생제의 종류가 현재 치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치과에서도 관혈적 수술 이후 처방하는 이런 종류의 항생제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이다.

슈퍼 박테리아는 한마디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항생제에도 치료되지 않고,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이 강한 세균을 뜻한다. 특히 세균의 생태계 교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병원(중환자실 등)에서 다양한 항생제들에 내성을 갖는 슈퍼 박테리아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많은 항생제와 접촉하는 세균들이 결국에는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균들은 속칭 이스케이프(ESKAPE) 균이라고 불리운다. ESKAPE라는 말은 언뜻 보면 ESCAPE의 철자를 잘못 쓴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그 의도에 맞게 명명된 것이다. 항생제는 다양한 기전으로 세균을 파괴하는데, 이 이스케이프 균은 교묘하게 이런 항생제의 효과를 피하고 탈출한다(=ESCAPE)는 의미로 이름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ESKAPE 균은 각각 장알균(Enterococcus faecium),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 폐렴간균(Klebsiella pneumoniae), 아세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 엔테로박터류(Enterobacter spp) 등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이다.

최근 모 병원 신생아실에서 영유아 사망 소식이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 사망 원인의 주범이 바로 이스케이프 균이었다. 이 균들은 병원 안에서 존재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화된 환자나 면역체계가 무너진 환자의 수술 부위에 감염돼 경험적으로 사용하는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렇게 면역력이 크게 저하되거나 중증의 전신 질환을 가진 노령의 환자가 아닌 경우에도, 치과에서 관혈적 시술을 받고 난 후 이런 이스케이프 균에 감염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경우 치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험적 항생제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부위가 잘 낫지 않게 된다. 이때 세균 배양 및 항생제 감수성 검사의 시기를 놓치면 패혈증 등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기도 하고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아직까지 치과에서 항생제 내성을 가진 균에 대한 심각성이 보고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본 병원에서도 이스케이프 균 감염증 환자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감염증을 막기 위해서 치과 종사자는 관혈적 시술시 멸균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환자를 볼 때마다 99.9% 세균 박멸이 가능한 손 씻기를 시행해야 한다. 또한 치과 치료 후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고 항생제를 복용하는데도 불구하고 감염의 증상이 심해지는 경우에는 대학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 즉시 내원하는 것도 늘어나는 감염증에 대한 합병증을 막는 방법일 것이다.

손 씻기는 치과에 내원하는 환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에 철저히 신경을 써야 하며, 다양한 것과 접촉했던 손을 입안에 손을 넣는 등의 행위는 최대한 자제하여야 한다. 또한 치과의사가 처방해준 항생제를 증상이 호전되면 중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내성균 발생이 가능하기 때문에 꼭 처방한 용법·용량·기간을 지켜 복용해야 한다.

세균과의 싸움에서 완전히 승리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소한 원칙을 지켜가며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이고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지역 단위로 홍보 등을 통해 이런 감염증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고, 감염 방지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우리 지역민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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