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삶이 함께하는 ‘북유럽의 베네치아’
빙하와 숲의 나라 오슬로를 180도 바꾼 ‘피오르 시티’
뭉크미술관·오페라하우스·중앙도서관 밀집 메가 문화벨트
짧은 여름 즐기자…도심속 수변가 물놀이 시민들 눈길
2022년 12월 12일(월) 10:30
오슬로시는 항만재개발지역에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인프라를 건립하는 ‘피오르시티’(Fjord City) 프로젝트를 통해 북유럽의 문화도시로 변신중이다. 사진 왼쪽부터 오슬로 중앙도서관,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오슬로 관광청 제공>
오슬로에 대한 첫 인상은 여행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였다. 볼거리가 몰려 있는 도심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비한 피오르드와 오로라로 잘 알려진 청정국가이지만 뭉크미술관, 오페라하우스,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시내 중심가의 ‘피오르시티’(Fjord City) 예술특구를 둘러보니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말이 실감났다.

#오슬로를 바꾼 ‘피오르 시티’

뭉크미술관은 오슬로 여행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중앙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하지만 뭉크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한 여정이다. 중앙 도서관과 오페라하우스, 수변가, 뭉크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 가다 보면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오슬로의 명소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중앙역 광장에서 미술관으로 떠나는 길에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건 독특한 외관을 지난 중앙도서관이다. 중앙도서관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오슬로 전역에 20개의 분관을 거느리고 있다. 1785년 7000권의 장서와 150종의 원고를 기증한 사업가 칼 다이치맨(Carl Deichman)의 기증이 모태가 됐다.

도심 속 문화쉼터인 중앙도서관 내부 모습.
지난 2020년 6월 개관한 중앙도서관은 5층 건물로 맨 꼭대기인 5층이 넓게 튀어나와 멀리서 보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앙역에서 바라봤을 때 도서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명소인 오페라하우스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다. 중앙도서관에 들어서면 색다른 공간연출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기능중심의 여타 도서관과 달리 복합문화시설 같은 역동적인 인테리어가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제한된 공간에 장서를 최대한 비치하기 보다는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각층에는 장르별 도서 이외에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도서관 2층의 한켠에는 시민들이 드럼이나 피아노, 기타를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적막한 도서관에서 시끄러운 악기연주라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공간의 이질적인 조합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중앙도서관은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사일런트 룸’(Silent Room)때문이다. 사이런트 룸에 들어서면 오슬로 숲의 나무로 꾸민 인테리어가 마치 사색의 밤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케이티 패터슨의 공공예술프로젝트 ‘미래의 도서관’(Future Library)에는 100개의 유리 서랍이 설치돼 있다. ‘미래도서관’이라는 명칭은 1년에 1명씩, 앞으로 100년 동안 100명의 작가를 선정해 이들이 미래세대를 위해 집필한 원고를 이 서랍에 보관한다는 의미이다. 지난 2019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 강씨가 첫번째 작가로 선정돼 현재 이 서랍에 보관돼 있다. 100개의 서랍이 다 채워지는 오는 2114년이 되면 이 원고들은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북반구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중앙도서관에서 나오면 수변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시민들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 짧은 북유럽의 지리적 특성상 시민들은 황금과도 같은 여름 시즌을 만끽하기 위해 도심속 수변가에서도 삼삼오오 수영을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인상적인 것은 수영복 차림을 한 시민들 뿐만 아니라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중앙도서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오페라하우스 때문이다.

‘피오르 시티’ 프로젝트 가운데 2008년 가장 먼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오페라하우스는 오슬로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독보적인 건축미를 자랑한다. 노르웨이 정부가 지난 1999년 국립오페라단과 발레단의 상주 공연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한 후 무려 500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완공했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오페라하우스 답게 3만8600㎡의 면적에 1364석의 대극장과 400석, 200석의 소극장을 갖추고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보면 마치 망망대해에 떠있는 빙산이 연상된다. 순백의 하얀 지붕은 비스듬하게 기울어 지상까지 연결된 이색적인 디자인의 건물이다. 기울어진 형태(사선)의 하얀 지붕과 유리로 설치된 덕분에 바로 이웃해 있는 중앙도서관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건축회사 스뇌헤타는 빙하와 숲의 나라인 노르웨이를 상징하기 위해 빙산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중앙 로비는 높이 15m의 대형 유리 창문을 통해 오슬로항과 바다가 펼쳐진다.

특히 비스듬한 평면으로 조성되어 계단 없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옥상정원이 인상적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15m 높이의 유리창과 한 가운데 자리한 떡갈나무 구조물이 대조를 이루며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1층 로비와 야외 카페에는 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이 없는 날에도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려는 시민들로 북적거린다.

피오르시티 프로젝트의 핵심시설인 뭉크미술관 전경. 지난 8월 말, 오슬로 시민들이 미술관 앞에서 저물어 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오슬로의 아이콘 ‘뭉크미술관’

‘피오르 시티’를 둘러 보는 여정의 종착지는 오페라하우스와 인접해 있는 뭉크미술관이다. 에르바르트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뭉크미술관은 원래 오슬로 외곽의 토옌이란 곳에 있었다. 오슬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오슬로 중심가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중앙도서관, 오페라하우스 등과 가까운 곳에 미술관을 건립해 거대한 문화벨트로 키유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노르웨이 정부의 바람대로, 오슬로 중심가 수변구역에 13층짜리 신축건물로 이전해 다시 문을 연 뭉크미술관은 코로나19의 악조건 속에서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뭉크 미술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노르웨이의 유산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절규’는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오슬로로 불러 들이는 브랜드다. 새 뭉크박물관은 이 점을 감안해 아예 ‘절규의 방’을 따로 만들어 관람객들이 뭉크의 대표작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구 뭉크미술관에선 종종 ‘절규’가 해외 미술관에 대여중인 경우가 있어 관람객들의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술관측은 매시 정각에 ‘절규의 방’에서 관람객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름하여 ‘Unveiling Munch’(뭉크, 베일을 벗다). 회화, 스케치, 판화 버전의 ‘절규’를 한 곳에 전시한 뒤 회화 작품은 1시간 단위로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매시 정각, 캄캄한 방에 들어서면 닫혀 있던 커튼이 열리면서 ‘절규’의 작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낼 때면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이같은 극적 효과가 통해서인지 개관 후 약 8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밖에 13층의 맨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오슬로 시내의 아름다운 풍광도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오슬로=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670808600746553331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09일 22:3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