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 (하)] 도시 곳곳 공공미술 3500점…삶과 예술 ‘공존의 미학’
최우선 가치는 ‘예술 있는 삶’
예술 접목한 도시계획 추진
작가 협업 통해 명품도시 조성
100년 된 건축물 미술관 변신
광장에 세계적 미술가 작품 설치
건물 외벽의 굴뚝 인생샷 성지로
2022년 11월 28일(월) 23:30
핀란드 헬싱키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공공조형물은 공모방식을 통해 선정된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핀란드인들의 단합과 협력을 상징하는 ‘세명의 대장장이’(The Three Smith)
“헬싱키의 모든 시민들은 최적의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핀란드의 공공미술을 총괄하고 있는 헬싱키 아트 뮤지엄(Helsingki Art Museum, 이하 HAM)의 최우선 가치는 ‘예술이 있는 삶’이다. 헬싱키에서 예술은 ‘국가적 의무’라고 할 만큼 수준높은 공공미술을 통해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를 가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시 전체에 3500여 점의 공공미술이 자리하고 있는 헬싱키는 24시간 내에 감상할 수 있는 조각작품만 480여 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50여 점은 공원과 거리, 광장 등에서 만날 수 있다. <편집자 주>

낙후된 공장지역인 아라비아란타에 설치된 ‘시베리안 까치’(Siberian Jay)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도시다. 다른 유럽의 도시 처럼 그 출발지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중앙역이다. 헬싱키를 방문하는 이라면 누구나 중앙역 입구의 범상치 않은 ‘포스’에 압도된다. ‘핀란드의 관문’으로 불리는 중앙역은 하루 평균 40만 명이 이용하는 역사이자 모스크바와 성 페테르부르크를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중앙역이 유럽에서 내로라하는 역사(驛舍)로 꼽히고 있는 것은 독특한 건축미 때문이다.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 엘리엘 사리넨(Eliel Saarinen 1873~1950년)은 헬싱키 시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아르누보 양식이 가미된 적갈색 화강암 외관, 우아한 대형 아치의 정문, 49m의 시계탑 등 볼거리가 많은 콘셉트를 제안해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특히 1914년 모습을 드러낸 기차역 양쪽 면에 설치된 ‘석등을 든 남자들’(Lantern Carriers) 조각상은 백미다. 마치 이집트 고대 미술품의 남자를 연상케 하는 4명의 조각상은 윤곽이 뚜렷한 턱선과 단발 머리가 인상적이다. 지구본 형태의 석등을 들고 있는 이들은 밤에는 조명 시설을 통해 멀리서도 중앙역의 존재를 알린다. 도심 한복판에서 낮과 밤에도 중앙역을 지키고 있는 수호천사는 제1의 랜드마크가 됐다.

아모스 렉스 현대미술관의 굴뚝과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 ‘둥지’(The Nest)
중앙역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3명의 대장장이(The Three Smith)도 헬싱키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헬싱키의 쇼핑 1번지인 ‘스톡만(Stockman)백화점 앞에 건립된 청동 조각상은 3명의 대장장이가 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이다. 1913년 펠릭스 닐런드(Felix Nylund)는 핀란드인들의 단결과 협동을 촉구하기 위해 10m 크기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표현했다. 당시 헬싱키재단(The Pro Helsingfors Foundation)의 공모를 통해 제작된 이 작품은 완공과 동시에 헬싱키 시에 기증된 후 현재 HAM이 운영하는 ‘아트 컬렉션’(Collection of the Helsinki Art Museum)에 소속돼 있다.

헬싱키에는 건물 전체가 하나의 조형물이자 작품인 곳도 많다. 지난 2018년 8월 도심 중심가인 라시팔라치(Lasipalatsi) 광장에 개관한 아모스 렉스(Amos Rex)현대미술관이 그곳이다. 낮은 언덕의 구조물에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미는 듯한 잠만경 모양의 굴뚝이 동화 속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1930년대 세워진 건물을 20세기 예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시민들의 놀이터이자 쉼터처럼 활용하고 있다. 잠망경처럼 생긴 유리천장은 지하의 미술관에 자연광을 끌어들이고, 밤이면 미술관 불빛이 땅 위로 새어나오게 하는 조명 역할을 한다. 특히 지난해 여름 아모스렉스의 굴뚝과 건물 외벽에 설치된 일본작가 타다시 카와마타(Tadashi Kawamata)의 ‘둥지’(The Nest)는 방문객들의 카메라셔터를 누르게 하는 명물이다. 헬싱키 재활용센터에서 구한 폐자재와 나무를 이용해 제작한 ‘둥지’는 삭막하고 답답한 도심에 숨통을 불어 넣는 쉼터역할을 한다.

아모스 렉스 현대미술관의 굴뚝과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 ‘둥지’(The Nest)
무엇보다 헬싱키의 공공미술은 허름하고 오래된 시 외곽이나 재개발 거주지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 등 유입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주택이 부족한 헬싱키시는 쇠락한 공장 지대와 항만 인근에 공동주택단지를 조성하는 등 도시계획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은 100년을 내다 보고 도시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민 참여와 도시 디자인이다. 대표적인 현장이 ‘아라비아란타’(Arabiaranta), 칼라사타마(Kalasatama)다. 1950년 대까지만 해도 유럽 최대의 그릇 공장지역이었던 아라비아란타는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거대한 폐창고로 전락했지만 새로운 주택단지로 조성하는 헬싱키시의 도시개발에 따라 인터넷과 무선통신으로 가상마을을 만들고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살기 좋은 명품 도시’로 변신했다. 여기에는 헬싱키시가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는 ‘1%법’이 크게 작용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나 집단 주거시설에는 의무적으로 예술작품을 설치토록 하는 법으로, 국제공모 방식 등을 통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5~10층 높이의 아파트 단지내 쉼터와 놀이터 등에는 다양한 형상의 조형물들이 자리해 눈길을 끈다. 30~40대 젊은 층이 거주하고 있는 한 주택 단지에서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유명 예술가 빌루 자안니수(Villu Jannisoo)가 제작한 6m 크기의 철제 새 조형물 ‘시베리안 까치’(Siberian Jay)를 만날 수 있다.

1914년 건립된 헬싱키 중앙역은 핀란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양 벽면에 설치된 ‘석등을 든 남자들’(Lantern Carriers)은 헬싱키를 수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칼라사타마의 카펠란나우키오(Capellanaukio) 광장에는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스웨덴 작가 제이콥 다힐그렌(Jacob Dahlgren)의 핑크색 조형물 ‘어느 아침, 영원불멸의 조각’(Early One Morning, Eternity Scrulpture)이 터를 잡고 있다. 마치 연필로 그림을 그린 듯한 10m 높이의 작품은 감각적인 색채와 리듬감 있는 디자인이 주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다.

특히 지난 2021년 창설된 헬싱키 비엔날레(Hesinki Biennale)는 거리의 공공조형물에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 발전소 역할을 하고 있다. 비엔날레 전시장에 출품된 작품들을 공원이나 광장으로 옮겨 시민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헬싱키 공공미술을 운영하고 있는 HAM의 관장이 헬싱키 비엔날레의 수석 큐레이터를 겸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HAM 공공미술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타루 타폴라(Taru Tappola)는 “공공미술은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일상에서 자유롭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면서 “헬싱키시는 최적의 장소에 맞는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내외 예술가 그룹과의 콜라보, 미술관 큐레이터들의 토론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헬싱키=글·사진 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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