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예술의 메카 ‘아트 인더 메트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
<10> 스웨덴 스톡홀름 - 지하철 (상)
중앙역 중심으로 연결된 100개 역사 중 90곳 예술향기 ‘거리의 미술관’
사람과 사람, 문화와 예술 소통…예술가·건축가 제안으로 공공미술 도입
시민들에 ‘문화가 있는 삶’ 선사…지하철 핫 스팟 15곳 정기 투어 진행
2022년 11월 21일(월) 09:00
스웨덴 정부는 지난 1953년부터 시민들의 문화향유기회를 높이기 위해 스톡홀름 지하철 역사 90곳에 예술가 150명과 함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개성 넘치는 벽화와 미디어아트가 돋보이는 오덴플랜 역.
북유럽의 진주로 불리는 스웨덴은 ‘별칭’이 많다. 노벨상의 나라이자 세계적인 팝그룹 ‘ABBA’고향이고, 말괄량이 삐삐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토의 절반 이상이 삼림으로 덮여 있고 10만 여개에 달하는 호수가 흩어져 있는 청정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웨덴은 ‘예술가들의 천국’으로 꼽히는 곳이다. 1950년 대 부터 예술을 공공영역으로 끌어들인 데다 공공건축 예산의 1%를 장식미술에 사용하는 소위 ‘1%법’을 제정한 것이다. 그중에서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공공예술의 메카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름 아닌 ‘아트 인 더 메트로’(Art in the Metro)이다. 15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아트 지하철은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한 공공재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하철’로 선정되는 등 스톡홀름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리드글)



#‘세상에서 가장 긴 지하미술관’.

스톡홀름 전역을 관통하는 지하철은 ‘움직이는’ 갤러리이다. 전체 길이가 110km에 달하고 장르도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을 아우른다. 그래서인지 스톡홀름 시민들에게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굳이 짬을 내 전시장을 찾지 않아도 예술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거리의 미술관’이다. 출근길에서 만나는 예술작품은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하는 등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7개 노선이 중앙역(T-Centralen)을 중심으로 연결된 스톡홀름 지하철은 총 100개의 역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90곳이 예술가들의 개성넘치는 ‘작품’으로 꾸며져 칙칙한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지하철 역사의 벽면을 화사한 색감으로 물들인 벽화에서 부터 지하철 역사의 ‘과거’를 재현한 아카이브, 젊은 세대들의 트렌드를 반영한 미디어아트 역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지하철역에서 티켓을 끊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다 보면 ‘예술동굴’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색다른 감흥에 빠진다. 이들 가운데 독특한 색깔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하철 역사는 약 15개. 3개의 노선이 지나가는 중앙역은 지난해 미국 CNN으로 부터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지하철역’으로 선정됐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 1953년부터 시민들의 문화향유기회를 높이기 위해 스톡홀름 지하철 역사 90곳에 예술가 150명과 함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실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개성 넘치는 벽화와 미디어아트가 돋보이는 중앙역 내부 모습.
#T-중앙역(T-centralen)

중양역의 지하로 내려가면 가장 먼저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블루 톤의 벽화가 시선을 잡아 끈다. 블루라인이 지나는 역사(驛舍)는 아트 지하철이 첫선을 보인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다른 역들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은 이 곳은 푸른 색상의 덩쿨식물이 벽을 타고 뻗어나가는 벽화로 유명하다. 스웨덴 출신의 예술가 펄 올로프 울트베드(Per Olof Ultvedt)는 블루라인의 특징을 살려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의 푸른 색상을 기조로 한 벽화를 그렸다. 초대형 백색 캔버스에 블루계열의 덩쿨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모습은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많다. 또한 울트베드는 1975년 이 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헌신에 감사의 의미로 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다른 곳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일부는 색이 바래고, 낡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남아 운치를 느끼게 한다.



옛 왕궁의 잔해물을 보존하고 있는 쿤스트레드 고르덴 역.
#쿤스트레드고르덴(Kungstradgarden)역

‘왕의 정원’이라는 뜻의 쿤스트레드고르덴(Kungstradgarden)은 스톡홀름 지하철의 플랫폼 같은 곳이다. 1635년 마카로스 왕궁(Marklos Palace)이 들어선 자리였으나 19세기 초 발생한 화재로 왕궁과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이 소실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3년 지하철을 개통한 스톡홀름시는 옛 왕궁이었던 이 지역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화재로 타다 남은 건물의 잔해와 조각상을 역사에 설치했다. 여기에 예술가들의 벽화를 그려 넣어 공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아트 인 더 메트로’로 불린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 15 명의 제안으로 세상에 나왔다. 당시만 해도 가난한 노동자들은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들었다. 주머니가 가볍다 보니 그림을 구입하기가 힘들고 미술관 나들이도 여의치 않아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같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예술가들은 ‘문화복지’ 차원에서 스톡홀름시에 ‘아트 지하철’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시민들의 발인 지하철 역사에 작가들의 그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면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인 스톡홀름시는 이후 단계적으로 ‘전시장’을 확장시켜 현재 90여 곳에 이르는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꾸몄다.

스톡홀름 지하철의 거점 역사 답게 역 지하로 내려가는 선로와 통로에는 전시와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1950년 대의 벽화에서 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회화와 조각, 디자인, 사진,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전시돼 흥미롭다.



무지개 벽화로 유명한 스타디온 역 내부
무지개 벽화로 유명한 스타디온 역 S자 조형물.
#스타디온(Stadion)역

다른 역사들에 비해 현대적인 색책가 물씬 풍기는 지하철이다. 우선 지하로 내려가면 벽 전체가 7가지 색상의 무지개로 뒤덮여 있어 화려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지하 공간, 암석 위에 자리한 무지개의 빛깔을 보고 있으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요즘 SNS 등에 자주 등장할 만큼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많다. 레드 라인의 역사에 무지개 색상이 등장하게 된 건 올림픽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계기가 됐다. 역사 인근에 1912년 올림픽이 열렸던 스톡홀름 올림픽 공원이 자리한 지리적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5개 대륙을 상징하는 올림픽 링은 스웨덴 사회의 다문화에 대한 열린 마인드를 의미한다.



#솔나 센트럼(Solna Centrum)역

북유럽 최대 규모의 쇼핑센터인 스칸디나비아 몰이 자리한 역사 답게 강렬한 보색 조합이 인상적이다. 태양이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져 블루라인노선이 지날 때면 한폭의 풍경화를 탄생시킨다. 예술가 칼 오로브 비조르크(Karl Olov Bjork)와 앤더스 알베르그(Anders Aberg)는 965m 길이의 벽을 붉은 색으로 뒤덮인 하늘과 가문비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형상화 했다.

이밖에 사람들이 앉는 의자까지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설치한 스카릅네크(Skarpnck)역, 왕립기술연구원이 위치한 장소성을 보여주는 테크니스카 헤스콜란(Tekniska Hgskolan)역, 젊은 작가들의 미디어아트를 만날 수 있는 오덴플랜(Odenplan)역, 북유럽 감성이 느껴지는 시청사(Radhuset)역 등 다양하다.

이처럼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사람과 사람, 문화와 예술이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이다. 일찍이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제안으로 공공미술을 도입해 ‘문화가 있는 삶’을 구현한 덕분이다. 또한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스톡홀름 지하철의 핫 스팟 15곳을 둘러보는 정기 투어도 진행한다.



/스톡홀름=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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