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하)-도심속 조형물] 예술 입힌 공공장소…도시 전체가 ‘살아 있는’ 미술관
노르웨이왕궁·오슬로 중앙역·피오르시티…도심 속 공원 시민 휴식공간
예술소장품 위원회, 국제 공모작·시민 수상작 설치 ‘만인을 위한 미술관’
뭉크 미술관 앞 ‘어머니’ 눈길…조형물-도보 코스 연계 ‘시티 투어’ 운영
2022년 11월 13일(일) 22:30
오슬로의 공공장소, 거리 등 1000 여 곳에는 세계적인 작가들의 예술작품에서 부터 시민과 어린이들이 참여한 조형물까지 다양한 조각상들이 설치돼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오슬로의 뭉크미술관 앞에 자리한 트레이스 에민의 ‘어머니’(The Mother).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걷기 좋은 도시다. 인구 65만 명이 살고 있는 오슬로의 중심가는 통행 차량이 많지 않고 위압적인 고층 건물과 아파트 숲이 드물다. 그 대신 트램과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도심속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오슬로의 심장으로 불리는 칼 요한슨거리(Karl Johans Gate)는 도보관광의 하이라이트다. 현재 국왕과 여왕 등 왕족일가가 머무는 노르웨이 왕궁에서 오슬로 중앙역에 이르는 1.5km의 거리는 수많은 볼거리들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슬로가 걷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공공장소와 예술작품을 접목한 오슬로 시의 ‘큰 그림’이 있었다. ‘오슬로시 예술소장품 위원회’(The City of Oslo Art Collection, 예술소장품 위원회)는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공기관이나 거리, 공원, 항만재개발(Water front)지역, 교차로, 공터 등 1000여 곳의 공공장소에 예술을 입혀 도시 전체를 ‘살아 있는’ 미술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노르웨이 궁전 부근의 ‘잉그리드 알렉산드라공주 조각공원’에는 초등학생들의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인상적인 조형물들이 10여 점 설치돼 있다. 공원에서 인기가 많은 ‘무지개’.
예술소장품 위원회는 시 예산으로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의 조형물은 국제 공모전을 통해 작품을 설치한다. 또한 오슬로 시가 주최하는 아트페스티벌 등에 출품된 작품들을 유치하거나 노르웨이 작가들의 작품을 기증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오슬로의 1000여 곳에 설치된 공공미술이 모두 전문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은 아니다. 시는 ‘만인을 위한 미술관’을 모토로 왕궁 주변의 공원 등 일부 장소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어 수상작들을 설치한다. 이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튀는’ 작품들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오슬로를 상징하는 공공조형물은 크게 노르웨이 왕궁과 오슬로 중앙역, 그리고 ‘피오르시티’(Fjord City)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 피오르시티는 워터프런트 지역에 미술관, 도서관, 박물관 등 매머드 문화시설을 건립해 시너지 효과를 겨냥한 초대형 예술프로젝트다. 이들 가운데 노르웨이 왕궁은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긴 북유럽의 지리적 특성상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많다. 오슬로 시는 왕궁 주변의 ‘궁전 공원’(Palace Park), ‘잉그리드 알렉산드라 공주 조각공원’(Ingrid Alexandra Scrupture Park)에 칼 요한슨 왕과 손야 왕비(Queen Sonja)모습을 형상화 한 동상과 동화 속에서 뛰어나온 듯한 조형물들을 설치해 시민들의 문화쉼터로 가꿨다. 특히 현재의 왕과 왕비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2016년 문을 연 잉그리드 알렉산드라 공주 조각공원에는 오슬로 시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모전에서 입상한 5~6학년생들의 톡톡튀는 작품 12점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오슬로의 교차로에 서있는 ‘레드 산타’(Red Santa).
일명 ‘어린이 공원’으로 불리는 이 곳의 조형물들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초등학생들의 상상력과 위트가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공원 최초로 설치된 ‘곤경에 처한 토끼’(Rabbit in Trouble)에서 부터 ‘기하학적인 여우’(Geometrical Fox), ‘무지개’, ‘지구의 손’(Earth’s hand) 등 다양한 형상들이 공원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노르웨이 왕궁에서 나와 시내 중심가로 내려가다 보면 연중 인파로 북적이는 오슬로 중앙역이 나온다. ‘모든 길은 중앙역으로 통한다’고 할 만큼 오슬로 여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오슬로의 명물이자 포토존으로 인기많은 ‘호랑이’(The Tiger)가 등장한다. 호랑이가 오슬로 한복판에 ‘내려온’ 것은 오슬로시와 민간기업의 콜라보 덕분이다. 1990년 대 말 한 부동산 회사는 밀레니엄을 맞아 시민들의 이용이 많은 중앙역 부근에 기념조형물을 제안했다. 이에 오슬로 시는 공모를 통해 노르웨이 출신의 조각가 엘레나 엥겔슨(Elena Engelsen)를 선정한 후 호랑이 조각상을 의뢰했다.

오슬로시가 호랑이 조형물을 구상한 것은 오슬로의 옛 별명인 ‘호랑이 도시’(Tigerstaden)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유명 시인 뵈오르슨이 1870년 발표한 시 ‘마지막 노래’(Sidste Sang)에서 안정된 삶을 상징하는 시골의 말(馬)과 위험하고 자비없는 도시의 호랑이를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 이후 오슬로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에 맞서 싸우는 역동적인 도시로 각인됐다. 4.5m의 청동으로 제작된 호랑이 조각상은 시민들에게는 자부심을,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하는 아이콘이다.

무엇보다 ‘조각의 도시’ 오슬로는 워터프런트에서 정점을 찍는다. 중앙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이 곳은 중앙도서관, 오페라하우스, 뭉크미술관 등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문화시설이 밀집한 예술특구이다. 그중에서 뭉크미술관 인근에 세워져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어머니’(The Mother)는 오슬로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조형물이다.

오슬로에는 역사와 관련이 있는 조형물들도 많다. 중앙역에 자리하고 있는 ‘호랑이’( The Tiger)와 구시가지에 설치된 ‘Christiania Torv’.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의 손에서 탄생한 ‘어머니’는 오슬로시가 지난해 도심으로 이전한 뭉크미술관 신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국제 공모전을 거쳐 뽑은 작품이다. 에민은 5살 때 어머니를 잃은 뭉크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영원한 안식처인 미술관 옆에 뱃속에 아이를 품은 엄마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오슬로 항을 바라보는 9m 높이, 18.5t에 달하는 초대형 브론즈 작품을 설치했다. 뭉크미술관 앞에서 오슬로 시민들과 뭉크를 보호하겠다는 강한 모성애를 담고 있는 걸작이다.

이밖에 오슬로 전역에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깜짝 등장하는 조형물들이 많다. 구시가지인 크바드라투렌의 광장에 자리한 손가락 조형물 ‘Christiania Torv’와 외곽 지역의 교차로에 설치된 ‘레드 산타’(Red Santa)가 대표적이다. ‘Christiania Torv’는 1624년 발생한 대화재로 오슬로 구시가지가 폐허가 되자 당시 덴마크 출신의 노르웨이 왕 크리스티안 4세가 크바드라투렌 광장을 가르키며 ‘새로운 도시가 시작되는 곳’(The New town will be here)으로 지정한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일명 ‘크리스마스 트리’로 불리는 6m 높이의 ‘레드 산타’는 미국 출신의 폴 매카시(Paul McCarthy)의 작품이다. 도시 외곽의 삭막한 순환로에서 만나게 되는 조형물은 이 곳을 지나는 시민 뿐만 아니라 운전자들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의 선물 같다.

이처럼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 공원이나 다름없는 오슬로는 이들 조형물을 도보 코스와 연계해 차별화된 ‘시티 투어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과감한 기획력과 지속적인 관리, 그리고 차별화된 마케팅. 북유럽의 복지강국에서 글로벌 문화도시로 변신중인 오슬로의 저력이다.

/오슬로=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668346200745487340
프린트 시간 : 2025년 04월 30일 19:0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