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미술관 공공조형물] 제주 풍광과 조화…‘또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다
도립미술관·현대미술관 등 예술성 뛰어난 야외 정원 조각 작품들 ‘인상적’
오설록 티뮤지엄, ‘녹차꽃’서 영감 얻은 오승열 ‘고감산함삽’ MZ세대 인기
안도 다다오 설계 본태박물관, 하우메 플렌자 ‘어린이들의 영혼’ 감동 선사
2022년 11월 01일(화) 10:30
제주 오설록 티뮤지엄의 명물로 자리잡은 오승열 작가의 ‘고감산함삽’(苦甘酸咸澁·2014년 작). 녹차꽃을 닮은 5개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쓰거나 달고, 짠맛이 나는 인생의 희노애락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푸른 바다와 한라산, 그리고 억새.

가을의 절정에 접어든 제주도는 천혜의 자연 경관으로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덕분인지 제주 전역에는 모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가족 단위 여행객에서 부터 중·고등학교 수학여행단들로 북적였다. 그중에서도 90여 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에는 예술작품들을 감상하며 추억의 한페이지를 간직하려는 이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특히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본태박물관, 오설록 티뮤지엄, 제주4·3항쟁 기념관의 야외 정원에는 예술성 높은 공공조형물이 즐비해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제주시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한 ‘오설록 티뮤지엄’(이하 티뮤지엄)을 찾던 날,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인근의 주차장은 수십 여 대의 대형 버스들로 가득찼다. 새삼 근래 제주도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티뮤지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싱그러운 녹색빛의 서광 차밭과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티뮤지엄은 자연친화적인 티스톤과 차문화 유산의 가치를 살펴볼 수 있는 갤러리,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 등으로 구성돼 힐링의 쉼터이자 교육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해 방문객이 200만 명에 가깝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간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강시권의 ‘정중동-사유’.
그중에서도 티뮤지엄 야외 정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은 MZ세대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아이콘이다. 도로 맞은편의 서광차밭에서도 금방 눈에 띌 만큼 순백의 자태를 자랑하는 오승열 작가의 ‘고감산함삽’(苦甘酸咸澁·2014년 작)이다. 녹차꽃을 닮은 5개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를 둘러싸고 있는 녹차밭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5개의 꽃잎은 쓰고, 달거나, 시고 , 짜며, 떫은 인생의 맛을 비유한 작품으로 인생을 너무 복잡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며 살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짙은 녹색의 차밭과 잔디로 둘러싸인 건물 앞에 자리한 ‘고감산함삽’은 화이트톤과 선명한 대조를 보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형물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단절돼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인증샷을 남기는 요즘의 여행 트렌드를 반영하듯 조형물 주변은 사진을 찍으며 낭만을 만끽하려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니스프리 제주하우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등장한다. 녹차밭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한 5마리의 말(馬)형상이다. 섬유강화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이근세 작가의 ‘무위지향마’(無爲志向馬, 2014년)다. 장자(莊子)가 무위자연을 꿈꾸며 그렸던 이상향인 ‘무하유지향’을 연상케 하는 작품으로 최대한 작위적인 요소를 배제해 자연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디자인했다. 산책로 곳곳에 배치된 5마리의 말과 주변에 흩뿌려진 동백꽃 모양의 발자국은 바쁜 일상에 지친 관광객들이 잠시나마 유유자적할 수 있는 이상적 공간을 제공한다.

제주현대미술관 야외정원에 설치된 한창조 작가의 ‘한글’.
이들 작품이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건 ‘APMAP’(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가 계기가 됐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APMAP는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야외 현장에서 조형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개최한다. 성장가능성이 높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성 짙은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현대미술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나가기’ 위해서다.

지난 2013년 제1회 통합생산물류기지(경기도 오산 아모레 퍼시픽뷰티 캠퍼스)를 시작으로 2014년 녹차밭(제주 서광차밭), 2015년 경기도 용인 R&D센터 등 전국의 주요 사업장을 무대로 릴레이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제주의 공공조형물은 순수 예술장르인 박물관, 미술관에서 더 빛을 발한다. 도립미술관, 현대미술관, 김창열 미술관 등 대표적인 미술관의 야외정원에는 색깔있는 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제주의 풍광과 조화를 이루며 또 하나의 ‘작품’을 선사하고 있다.

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중산간 지역에 들어선 도립미술관은 다양한 형상의 조각상으로 꾸민 야외 조각공원을 품고 있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미술관으로 걸어 올라 가다 보면 가장 먼저 임춘배 작가의 ‘토템’(2009년 작)을 만나게 된다. 제주현무암을 소재로 만든 독특한 형상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 뒤에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제작된 네 명의 인물이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강민석의 ‘이것은 무엇인가?’(2010년 작), 진입로 왼편에는 김방희작가의 ‘돌, 印象-1003’, 강시권의 ‘정중동-사유’, 이승수의 ‘제주이야기’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본태박물관의 공공조형물인 하우메 플렌자 작 ‘어린이들의 영혼’ (Children‘s Soul, 오른쪽). 왼쪽의 빨간색 작품은 춤추는 집시의 모습을 표현한 로트르클라인모콰르의 ’Gitane‘이다.
도립미술관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제주현대미술관의 야외 조형물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작’이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문화예술인 마을 안에 자리한 제주현대미술관은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근현대 미술의 거목 김흥수 화백이 무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다. 특별전시실, 상설전시실(김흥수 화백전), 기획전시실, 아트숍, 세미나실 등을 갖춘 현대미술관에서 인기가 많은 곳은 바로 야외 조각공원이다. 저지예술인마을과 인접해 있는 장소성을 살려 유명 작가들의 조각상들을 전시해 예술특구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조각가 한창조의 ‘한글’(2006년 작)로 블루 계열의 □자가 압도적인 스케일을 뽐낸다. 특히 이 곳에는 동물과 식물이 혼합된 김미인&서정국 작가의 ‘샤크루’, ‘블랙 앤 화이트’, ‘로치타’, ‘몽샤’, ‘판판’, ‘포엘’ 등 새로운 개념의 동물들이 자리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밖에 서귀포시 안덕면의 본태(本態)박물은 미술관 설립자인 이행자(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 여사의 소장품이 모태가 된 곳으로 ‘본태’(本態)라는 박물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전통 공예와 현대 미술을 통해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미술관의 야외광장은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을 대거 설치해 관광객들의 방문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을 비롯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의 하우메 플렌자 작 ‘어린이들의 영혼’(Children’s Soul), 춤추는 집시의 모습을 표현한 로트르 클라인모콰르의 ‘Gitane’등은 잊을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안도 다다오 설계한 미술관 건물과 주변의 풍광이 어우러져 관람객은 물론 시민들의 문화 쉼터로 인기가 높다.

/제주=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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