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 일하러 간 딸 차가운 시신으로
“서울행 허락한 내 잘못” 딸 잃은 아버지의 절규
![]()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 골목 앞./서울=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 |
세월호 이후 단일 사고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도 생때같은 자녀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계속됐다.
30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 모(55·광주시 서구)씨는 정신을 잃고 오열하고 있었다.
두 달전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 취업한 딸 (23)이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평소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말을 하던 딸이 지난 7월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을 때만 해도 기특한 마음에 응원을 했다고 한다.
어린 딸을 서울로 보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스무살부터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딸이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어렵게 승낙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듣고 보니 직장생활을 하라고 서울로 보낸 내 선택이 딸을 죽음으로 몬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김씨는 29일 딸이 광주 친구들과 만나 이태원에 놀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0일 새벽 이태원의 사고 소식에 깜짝 놀란 김씨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계속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새벽 6시께 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주은 사람이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김씨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바로 서울로 향했다.
김씨는 ‘제발 (딸이) 중환자실에라도 누워있길’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지만, 기차 안에서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부모 말을 한번도 거역하지 않고 속을 썩인 적인 없는 딸이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의정부 병원에서 딸의 시신을 확인한 김씨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핼러윈이면 평소에도 사람이 몰린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아무도 통제를 안했는 지 모르겠다”면서 “내 소중한 딸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니…”라며 오열했다.
김씨 가족은 딸을 광주시 광산구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서울=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
30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 모(55·광주시 서구)씨는 정신을 잃고 오열하고 있었다.
두 달전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 취업한 딸 (23)이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고로 숨졌기 때문이다.
어린 딸을 서울로 보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스무살부터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딸이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어렵게 승낙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해듣고 보니 직장생활을 하라고 서울로 보낸 내 선택이 딸을 죽음으로 몬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김씨는 29일 딸이 광주 친구들과 만나 이태원에 놀러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안한 마음에 전화를 계속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새벽 6시께 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생면부지의 사람이었다.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휴대전화를 주은 사람이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김씨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바로 서울로 향했다.
김씨는 ‘제발 (딸이) 중환자실에라도 누워있길’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지만, 기차 안에서 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부모 말을 한번도 거역하지 않고 속을 썩인 적인 없는 딸이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의정부 병원에서 딸의 시신을 확인한 김씨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핼러윈이면 평소에도 사람이 몰린다는 사실을 알면서 왜 아무도 통제를 안했는 지 모르겠다”면서 “내 소중한 딸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니…”라며 오열했다.
김씨 가족은 딸을 광주시 광산구 장례식장으로 옮겨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서울=민현기 기자 hyun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