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서 이송됐거나 교도소 내부 방치 사망 추정
광주교도소 암매장 첫 확인…5·18 행불자 어디에서 희생돼 옮겨졌을까
3공수 주둔지 수십년간 주목…계엄군 진술 유독 많아 발굴만 5차례
광주~담양 이동 민간인 희생자 가능성도…암매장지 철저한 조사 필요
2022년 09월 26일(월) 19:48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발굴된 유골 한 구의 DNA 구조가 5·18당시 행불자와 동일한 것으로 밝혀져 암매장 조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020년 5·18진상조사위원회가 5·18 당시 사망자 등의 암매장지로 지목된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발굴 조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 <광주일보 자료 사진>
5·18민주화운동 당시 암매장된 행방불명자가 42년만에 Y(사망당시 23세)씨로 확인되면서 Y씨가 어디에서 희생돼 이동됐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제22호 사적지인 옛 광주교도소가 암매장지로 주목받아온 지는 수 십년이 됐지만, 이제야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그동안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암매장 추정지에 대한 발굴이 이뤄진 것은 다섯 차례에 달한다. 특정 장소에서 발굴을 지속적으로 진행한 이유는 옛 광주교도소가 암매장 관련 계엄군 진술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계엄군의 진술을 종합하면 광주교도소에 암매장된 행불자들의 유입 경로는 3군데로 좁혀진다.

▲전남대에서 이송되던 중 사망한 사람 ▲광주교도소 내부에서 사망한 사람 ▲광주~담양간 이동중인 민간인 희생자 등이다.

특히 이번에 유가족의 유전자와 일치한 행불자의 경우는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사망한 것은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는 점에서 전남대나 시내에서 계엄군에 의해 부상을 입고 이송되는 과정이나 교도소 내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20일부터 21일 사이 광주시내에서 체포한 시민들을 대검으로 살상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을 광주교도소로 이송해 방치 후 사망에 이르자 암매장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랐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 하고 있다.

옛 광주교도소는 1980년 5월 21일부터 5월 24일까지 3공수여단이 주둔했다. 이 기간 동안 시민들의 암매장 관련 증언들이 수십 년 동안 이어졌다.

대부분의 내용은 전남대에서 끌고 온 시민들과 교도소 주변에서 총에 맞아 숨진 시민들을 암매장 했다는 것으로 계엄군이 몰래 묻은 시신 11구(광주교도소 관사 인근 8구, 광주교도소 앞 야산 3구)는 5·18직후 교도소 주변에서 발굴됐다.

구체적인 계엄군의 증언을 보면 3공수 본부대 소속 A병장은 “1980년 5월 21일 전남대에서 시위를 하다 잡혀온 시민 중 9명이 질식 상태에서 숨져있는 것을 고참병들이 리어카 2대를 이용해 옮겨서 매장했다”고 진술했다.

또 3공수 11대대 소속 B소령은 “교도소 정문에 접근하는 차량에 사격, 시신 3구를 100여m 떨어진 도로 인근 야산에 암매장 했다”, “15대대 부대원이 광주교도소 남쪽 담장 인근에 22~25구의 주검이 묻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북쪽 담장 인근에도 10구를 묻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쏟아낸 바 있다.

이러한 증언은 수 십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1989년 국회 청문회 당시에는 3공수 소속이었던 D부사관이 “5월 22일 새벽 교도소 관사인근 소나무 숲에 시민들의 시신 5∼7구를 가매장했다”고 진술한 적도 있다.

여러 장소에 나뉘어 암매장 됐다는 유골이 한데 뭉쳐져 있는 점에 대해서도 오월 전문가들은 교도소 부속 건물과 시설 등을 짓기 위한 확장공사가 진행되면서 발견된 시신들을 무연고 묘로 합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광주교도소에서 발행한 ‘광주교도소사’등에 따르면 1983년 12월 유골이 발견된 공동묘지 인근에 경비교도대가 완공됐고, 1986년에는 광주교도소 서쪽 담장인근에 폐수처리장이 지어졌다.

이러한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시신들이 무연고자로 처리돼 합장됐다는 것이다. 이번에 Y씨의 유전자가 확인된 유골 더미도 무연고자 공동묘지에서 발견됐다.

무연고자 묘지는 교도소 안에서 사망했으나 가족 등 연고가 없어 매장하는 곳으로 2년 이내 시신을 인도할 사람이 없으면 화장 또는 합장이 진행된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동명동 있었던 광주교도소가 1971년 문흥동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무연고자 유해를 콘크리트 처리했고, 이후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발견된 유해들을 위에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9년 발굴 당시 법무부는 옛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 개인 묘 50기와 합장묘 2기(20구, 41구) 등 모두 111구의 유골을 관리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중 41구가 묻힌 합장묘를 개장해보니 기록되지 않은 시신이 무더기로 발굴돼 총 261구의 유해가 확인됐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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