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육회와 육사시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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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가면 대체로 양동시장에 들른다. 별 건 아니고 대포 한 잔 하고 육회감을 좀 사기 위해서다. 육회감은 마트에서는 안 판다. 생으로 먹는 것이니, 변질이나 식중독이슈가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산다고 식중독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이른바‘ 고객’ 관리에 유별난 유통업체서는 곤란한 문제는 아예 원천봉쇄해버린다고나 할까.
그럼 뷔페에서는 어떻게 육회를 그렇게 척척 내놓을 수 있을까. 뷔페라고 무슨 대수가 있는 건 아니다. 대체로 뷔페 손님들이 육회를 많이 찾으니 갖추는 게 유리하고, 이런 뷔페에서 내놓은 소고기 육회는 수입육을 쓰게 마련인데, 아주 싼 부위라 이문이 괜찮다. 게다가 냉동고기를 쓰고, 곧바로 손님이 드시니 식중독 문제도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 물론 위생 소독 같은 걸 하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육회는 요리하기도 편해서 이문이 좋을 것이다. 고기는 썰고 간장과 설탕, 마늘이 중심이 된 양념을 곁들여주기만 하면 되니까.
얘기가 샜는데, 하여튼 전국의 여느 시장에 가도 광주 정도 수준의 육회를 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광주의 시장이 점차 유통업체의 공세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도 육회만큼은 꿋꿋하게 좋은 걸 낸다. 광주 사람들은 육회를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 명색이 요리사라, 광주 시장의 식육점 주인에게 많이 배운다. 소 육회는 크게 엉덩이살과 앞다리살, 뒷다리살 일부를 쓴다. 물론 채끝등심이나 안심 같은 것도 좋은 육회감이다. 하지만 워낙 비싼 부위이고, 주로 구이나 스테이크로 파는 게 훨씬 유리하므로 육회가 되기는 아주 힘들다. 그러니까, 구워서 살살 녹는 부위는 육회로는 먹기 어렵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된다. 더구나 구이용은 대개 ‘숙성’을 오래 거친다. 감칠맛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다. 육회는 가급적 도축 후 빨리 먹는 것이 유리하니까 이 문제에서도 결이 달라진다.
좀 다른 얘기인데, 유럽도 육회를 즐겨 먹는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는 국민 요리에 들어간다. 우리는 서양의 기준을 미국으로 삼는다. 미국과 가장 많이 접촉해왔고, 식문화도 미국 것을 서양식의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양 문화의 뿌리는 당연히 프랑스, 이탈리아다. 미국인이 유럽에 놀러가서 육회를 보고 기겁을 한다. 다진 육회를 구워서 빵에 끼워먹는 나라가 미국(햄버거)이니, 그걸 날로 먹는 걸 보고 놀라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거리의 관광식당에도 대개 알 라 카르트(단품 메뉴)로 육회를 판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보겠다고 어설픈 현지어 실력으로 메뉴판을 보았다가는 큰일난다. ‘쇠고기’까지만 찾고 주문했는데, 날 육회를 받아든 일화를 나도 실제 겪었다. 쇠고기 뒤에 ‘날것’이라고 적혀 있는 걸 독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 이들 나라에 가서 일부러 육회를 드시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영어로 ‘스테이크’하고 분명하게 요구하는 게 좋다. 물론 육회 맛도 아주 좋다. 약간의 마늘을 첨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치즈와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로 간단하게 양념해서 낸다. 날고기를 얇게 저미고 그 위에 소스를 뿌려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고기를 ‘카르파치오’라고 한다. 카르파치오는 르네상스시기에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의 실명(비토레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 1460~1527)을 따서 붙인 요리 이름이다. 붉고 강력한 색감을 좋아했던 화가의 그림 스타일을 육회에 끌어가 쓴 셈이다.
어쨌든 광주 식육점, 정확히 말하면 양동시장 내 양동식육점으로 돌아가자. 손님이 보도록 작은 숙성고를 진열해 놓고 있는데, 이 안에 보물이 있다. 앞박살이라고도 하고 상박살이라고 부르는 육회감이다. 미리 전화해보고 가는 게 좋다. 귀한 부위가 늘 있는 건 아니니까. 갈고리에 걸려 척하니 숙성고 안에 있는 검붉은 상박살을 보면 절로 군침이 돈다. 넓적하게 썰어서 소금 기름장에 찍어도 먹고 양념에 살살 무쳐서 먹기도 한다. 아무래도 속칭 ‘육사시미’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하겠다. 상박살은 앞다리 사태에 속하는 부위인데 한 마리를 잡아봐야 1킬로 정도나 나온다고 한다.
육사시미란 말은 적당한 우리말을 찾았으면 한다. 보통 성냥개비처럼 길게 죽죽 썬 양념요리를 육회라고 부르고, 날고기를 화투장 만하게 썰어서 먹는 것을 따로 육사시미라고 식당에서 호칭해버리고 말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육회/소고기회”라고 부르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이는 이 요리가 어떻게 탄생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양념육회와 구별하다가 생긴 말인데 그걸 육회라고 부르라고 하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육회, 육사시미 좋아하는 광주 시민이 적당한 말을 만들어주시면 더 어울리겠다. 오랫동안 그냥 육회(날고기란 뜻의 카르네 크루다)라고 하던 걸 ‘카르파치오’라고 멋지게 불렀던 이탈리아의 전례도 있으니.
<음식칼럼니스트>
좀 다른 얘기인데, 유럽도 육회를 즐겨 먹는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는 국민 요리에 들어간다. 우리는 서양의 기준을 미국으로 삼는다. 미국과 가장 많이 접촉해왔고, 식문화도 미국 것을 서양식의 표준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서양 문화의 뿌리는 당연히 프랑스, 이탈리아다. 미국인이 유럽에 놀러가서 육회를 보고 기겁을 한다. 다진 육회를 구워서 빵에 끼워먹는 나라가 미국(햄버거)이니, 그걸 날로 먹는 걸 보고 놀라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최고급 레스토랑이나 거리의 관광식당에도 대개 알 라 카르트(단품 메뉴)로 육회를 판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보겠다고 어설픈 현지어 실력으로 메뉴판을 보았다가는 큰일난다. ‘쇠고기’까지만 찾고 주문했는데, 날 육회를 받아든 일화를 나도 실제 겪었다. 쇠고기 뒤에 ‘날것’이라고 적혀 있는 걸 독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니, 이들 나라에 가서 일부러 육회를 드시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영어로 ‘스테이크’하고 분명하게 요구하는 게 좋다. 물론 육회 맛도 아주 좋다. 약간의 마늘을 첨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치즈와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로 간단하게 양념해서 낸다. 날고기를 얇게 저미고 그 위에 소스를 뿌려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고기를 ‘카르파치오’라고 한다. 카르파치오는 르네상스시기에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의 실명(비토레 카르파치오Vittore Carpaccio 1460~1527)을 따서 붙인 요리 이름이다. 붉고 강력한 색감을 좋아했던 화가의 그림 스타일을 육회에 끌어가 쓴 셈이다.
어쨌든 광주 식육점, 정확히 말하면 양동시장 내 양동식육점으로 돌아가자. 손님이 보도록 작은 숙성고를 진열해 놓고 있는데, 이 안에 보물이 있다. 앞박살이라고도 하고 상박살이라고 부르는 육회감이다. 미리 전화해보고 가는 게 좋다. 귀한 부위가 늘 있는 건 아니니까. 갈고리에 걸려 척하니 숙성고 안에 있는 검붉은 상박살을 보면 절로 군침이 돈다. 넓적하게 썰어서 소금 기름장에 찍어도 먹고 양념에 살살 무쳐서 먹기도 한다. 아무래도 속칭 ‘육사시미’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하겠다. 상박살은 앞다리 사태에 속하는 부위인데 한 마리를 잡아봐야 1킬로 정도나 나온다고 한다.
육사시미란 말은 적당한 우리말을 찾았으면 한다. 보통 성냥개비처럼 길게 죽죽 썬 양념요리를 육회라고 부르고, 날고기를 화투장 만하게 썰어서 먹는 것을 따로 육사시미라고 식당에서 호칭해버리고 말았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육회/소고기회”라고 부르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이는 이 요리가 어떻게 탄생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양념육회와 구별하다가 생긴 말인데 그걸 육회라고 부르라고 하면 누가 알아듣겠는가.
육회, 육사시미 좋아하는 광주 시민이 적당한 말을 만들어주시면 더 어울리겠다. 오랫동안 그냥 육회(날고기란 뜻의 카르네 크루다)라고 하던 걸 ‘카르파치오’라고 멋지게 불렀던 이탈리아의 전례도 있으니.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