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의 시간-임동욱 선임기자·이사
2022년 07월 05일(화) 22:00
지난 4일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김진표 의원(5선)이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와 주목된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의장에 선출된 직후 인사말을 통해 “이제 우리 정치도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폐습과 결별할 때가 됐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도 더는 미룰 수 없다. 35년 된 낡은 헌법 체계를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다. 사회적 공감대도 넓게 형성되어 있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21대 국회 임기 안에 개헌을 이뤄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통합의 시대정신 담아야

김 의장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이제 정치권이 보다 진지하게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헌법이 개정된 지 35년,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흐름이다. 1987년 체제를 바꾸는 ‘개헌’을 통해 ‘통합’이라는 시대정신을 담아 미래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민주화를 시대정신으로 삼고 있다.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권적 기본권을 확장하는데 중점을 둔 헌법이다. 하지만 승자독식 구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심각하다. 정치를 왜곡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 전반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당장,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여야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전쟁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1987년 이후 치러진 일곱 차례의 대선에서 정권을 지키려는 진영과 빼앗으려는 진영의 전면전은 이념과 지역을 넘어 세대와 남녀 갈등의 확산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대 대선은 그 절정을 이뤘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반에 못 미치는 48.56%의 득표율을 얻어 이재명 민주당 후보(47.83%)를 0.73%포인트 차이로 제치며 역대 최소 격차의 승리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극적인 승리의 이면에는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민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국정 전반에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며 국가적 동력을 좀먹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다. 지금까지 모든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은 개헌에 공감하고 정치권과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수많은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권력구조 개편에 맞물린 정치적 이해관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는 정치권이 개헌을 국가 발전과 사회 개혁을 위한 시대적 요구로 보지 않고 정권 획득을 위한 정파적 이해관계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민주당 출신인 김진표 국회의장의 개헌 주장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곧바로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 모든 역량을 집중해 경제를 발전·안정시켜야 할 시기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개설해 개헌을 논의하자는 것은 새 정부의 힘을 빼자는 것”이라며 반발, 개헌 논의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정치적 셈법으로는 여야의 개헌 합의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될 수밖에 없다. 개헌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국가 대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를 허물고 타협과 협치를 위한 개헌, 사회권적 기본권과 지방분권 강화, 기후변화 대응 등 미래를 위한 치밀한 밑그림을 담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물론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지방분권 강화, 기후변화 대응 등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부분을 중심으로 원 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의 당위성 가운데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권력구조 개편은 넘어서야 할 벽이다.

여야 정치권, 미래 위한 결단을

이런 가운데 개헌의 걸림돌이었던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된 만큼 국가와 국민, 미래를 위한 정치권의 결단만이 남았다는 지적이다. 시간도 넉넉하다. 연말까지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내년 1년 동안 충분히 논의, 내후년 초에 개헌안을 발의한 뒤,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코로나19가 극복되고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국면은 개헌의 극적인 효과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개헌의 키는 윤석열 대통령이 쥐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 체제에서 윤 대통령의 결단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막혀있던 개헌의 물꼬를 트게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과 함께 협치와 통합, 미래로 가는 지름길인 ‘개헌’의 문을 열어가는 시대적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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