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 “영특함과 당당함, 여성운동가 나혜석이 가장 인상적”
‘한일여성문학자 그녀들의…’ 발간
젊은작가 한강·김애란 작품도 다뤄
10년째 인문학 프로그램 진행
2022년 06월 13일(월) 18:40
“10여 년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힘듦이었지만 책이 태어나줘서 고맙고 홀가분합니다.(웃음)”

어떤 일에 대해 10년간 몰입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학 밖에서 활동하는 학자가 특정한 연구 주제를 오랫동안 천착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명혜영 박사(광주시민인문학 대표)의 얼굴에는 평온하면서도 약간의 피곤함이 비쳤다. 연구하는 학자로, 시민인문학을 이끌고 있는 대표로, 인문학을 전파하는 강사로 1인 다역을 맡고 있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인문학을 모토로 시민단체를 이끌어온 지가 얼추 10년이 됐다. 지난 2012년 생생공감 무등지성이라는 인문학커뮤니티를 근저로 해 2014년 광주시민인문학이 법인을 갖추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니 그 자체로 대단하다.

흔히들 세상은 ‘밥이 되지 않는’ 인문학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천 인문학을 모토로 내건 그런 일환이다.

명 대표가 이번에 펴낸 ‘한일 여성문학자, 그녀들의 ‘개인-되기’-연애·성욕·광기’는 한일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사람’, ‘개인 되기’의 중요성을 들여다본다. ‘여자’이기에 앞서 개인의 존엄성, 프라이버시가 우선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대 정문 앞 인문학 카페 노블은 인문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시민인문학이 둥지를 튼 곳으로 벽면 책장에는 다양한 책들과 미술 작품이 내걸려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멍을 때리거나 삼삼오오 모여앉아 토론을 하기에 맞춤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명 대표는 오후에 있을 인문학 강좌 관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활동을 한 때문인지 카페 노블과 그가 잘 어울렸다.

“근현대(1896~2016)를 관통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여성문학 39작품을 다뤘습니다. 주제는 크게 연애, 성욕 등을 대입해 풀어냈어요. 학술서적임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주제가 일상과 밀접한 것들이어서 친숙하게 읽을 수 있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진솔하게 여성의 삶이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명 박사에 따르면 서구의 근대는 ‘신에서 인간으로’ 대체되는 시기였다. 이에 맞춰 인간 즉 개인이 창조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 대접을 못 받은 여성들은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시나 소설, 수필 등 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주장을 이어왔다. 특히 연애나 결혼, 주부의 역할 등 사적영역으로 분류돼 관심 밖의 영역이었던 곳에 빛을 비추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일 여성문학자, 그녀들의 ‘개인-되기’’를 펴낸 명혜영 광주시민인문학 대표.
그 연장선에서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삶과 연애 등 사적인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가급적 그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 가능한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 페미니스트 1세대인 나혜석과 김명순의 소설 ‘4년 전 일기 중에서’ 등 단편에서는 당시 신여성들의 연애관을 엿볼 수 있어요. 박완서의 작품에서는 중년과 노년 여성들의 삶이 세밀하게 다뤄지고 있는데, 저 또한 비슷한 나이대로 접어드니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웃음) 젊은 세대 작가로는 한강, 김금희, 김애란 등의 작가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김애란의 ‘하루의 축’은 단편인 만큼 메타포를 풀어내는 작업이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일본 작가들 가운데는 “노년 문학을 완성시킨 우노 치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일본의 전쟁과 전후를 모두 겪은 세대로 다양한 세계관을 문학작품에서 잘 녹여낸 점이 특징이다. 특히 ‘행복’이라는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행복은 국가와 문화를 뛰어넘어 매우 공감이 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명 박사가 가장 흠모하는 작가는 화가이자 문필가인 나혜석이다. 그는 “시대를 읽는 영특함과 당당함, 여성운동가로서의 선각자적인 면모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이번 책에 실린 글들은 상당 부분 인문학 커뮤니티인 시민인문학에서 진행된 강좌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근대 여성들의 삶 등을 모티브로 수강생들의 질문이나 궁금증을 푸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말에서 함께 공부하기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는 10월까지 긴 호흡을 가지고 ‘50+ Well alone, 관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헤겔철학이나 문예비평, 독립영화읽기, 인문택시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향후에도 지금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시민인문학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키(key)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전문적이고 다양화할 수 있는 시민교양대학 같은 단체를 목표로 꾸준히 활동할 생각입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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