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즐비한 미술관⋯한 발 건너 고흐와 렘브란트를 만나다
뮤지엄 광장 ‘I amsterdam’ 조형물
암스테르담 랜드마크 인증샷 인파 북적
국립미술관 연도별 구분 컬렉션 전시
2022년 05월 15일(일) 22:00
암스테르담의 관광 1번지인 뮤지엄 광장(Museumplein)에 자리하고 있는 반 고흐 미술관 전경. 1973년 문을 연 미술관은 단일 미술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 고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흔히 예술의 도시라고 하면 프랑스 파리나 오스트리아의 빈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둘러본 이가 있다면 생각이 달라진다. 도시의 한 복판에는 세기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내로라 하는 미술관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이름 하여 ‘뮤지엄광장’(Museumplein). 일명 라이크스(Rijks)미술관으로 불리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부터 반 고흐 미술관, 렘브란트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뮤지엄 광장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뮤지엄 광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사람구경’을 하게 된다. 다름 아닌 암스테르담의 랜드마크인 조형물 ‘I amsterdam(나는 암스테르담이다)’ 이다.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우선적으로 찾는 명소인 이 곳은 오전부터 인증샷을 찍으려는 인파로 북적인다.

‘I amsterdam’에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으로 향한다. 한시라도 빨리 고흐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맞은편의 반 고흐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국립미술관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 혼재된 고풍스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885년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이자 네덜란드를 지배했던 루이 1세가 기획해 건립했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와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들을 하나 둘씩 모아 세운 게 시작이었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걸린 기간은 1876~1885년까지 약 9년.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설계한 네덜란드 출신의 거장 피에르 카이퍼스(Pierre Cuypers)가 공모에 참가해 미술관 프로젝트를 맡았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연구도서관 서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미술관은 1100-1600년대, 1700-1800년대, 1800-1900년대, 1900-1950년, 1950-2000년대 등의 연도별로 구분해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에 활약했던 렘브란트(1606-1669년)와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국립미술관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시민계급이 두각을 나타냈던 시기다. 신흥 귀족이나 상인들은 자신의 ‘달라진’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호화로운 저택을 짓는 가 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 주변 사람들의 초상화와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를 인테리어 처럼 집에 걸어두었다.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과 취향을 담은 이들 그림들로 인해 네덜란드만의 독자적인 화풍이 싹트게 된 것이다.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등이 이 시기에 각광받았던 작가들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렘브란트의 ‘야경’( 夜警·night watch)이다. 1642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가로 4.5m, 세로 3.7m의 대작으로 네덜란드의 자부심을 대표하기도 한다. 미술관 2층의 중앙홀 맨 마지막 갤러리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야경’은 정반대쪽의 입구에서도 금방 시야에 들어 온다.

‘야경’이 미술관의 베스트가 된 건 시민 정신을 담고 있어서다. 대부분의 유럽 미술관이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나 신화의 주인공이 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대표 컬렉션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야경’의 인물들은 평범한 이웃들이다. 낮을 배경으로 민병대의 초상화를 그렸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덧입혀진 유약이 색이 바래 명암의 대비가 심해지면서 마치 야간에 순찰을 도는 모습 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국립미술관의 대표작인 렘브란트의 ‘야경’(1642년 작)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또 다른 걸작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컬렉션이다. 빛과 사물을 포착하는 데 뛰어난 페르메이르는 생전에 남긴 작품이 35점에 불과한 데 이 곳에만 ‘우유를 따르는 여인’(Milkmaid·1660년),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1663년), ‘연애편지’(The love letter·1669-1670), ‘골목길’(The littele street) 등 4점이 소장돼 있다..

이와함께 국립미술관 연구도서관(The Rijksmuseum Research Library)은 미술관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걸작이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공공도서관으로 거장들의 명작 못지 않는 국보급의 희귀도서와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내셔널 트레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장품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서적에서 부터 논문, 카탈로그, 잡지, 디지털 자료, 노트북 등 최첨단 기기까지 약 50만 여 점이 비치돼 있다.

#반 고흐 미술관

뮤지엄광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은 반 고흐 미술관이다. 1973년 문을 연 고흐미술관은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d)가 디자인한 본관 빌딩과 일본인 건축가 쿠로카와가 설계해 1999년에 개관한 부속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천재화가 고흐의 예술세계와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으로 단일 미술관으로는 반 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뮤지엄광장의 상징 조형물 ‘I amsterdam’ 앞은 연중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관광객들 사이에 유독 반 고흐 미술관이 인기가 많은 건 컬렉션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해바라기’, ‘노란 집’, ‘아를의 침실’, ‘자화상’ 등 유화 200여 점과 드로잉 500여 점,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700통의 편지, 고흐 개인의 유품 등이 소장돼 있다.

전 세계인들이 고흐를 좋아하는 데에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도 빼놓을 수 없다. 평생 가난과 싸우며 창작열을 불태웠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정신발작으로 병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결국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한 불운의 화가였기 때문이다. 1853년 3월 네덜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흐는 화방과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27세 무렵 화가의 삶을 꿈꾼다. 고흐가 화가가 될 결심을 한 데에는 동생 테오(Theo)의 영향이 컸다. 생전 2000여 점의 작품을 그렸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단 1점도 팔지 못했던 고흐를 동생 테오는 물심양면으로 작품 활동을 지원한 일화는 유명하다.

과거 튤립과 풍차의 나라로 유명한 네덜란드는 오늘날 매년 전 세계에서 4000만 명의 관광객(2017년 기준)이 다녀가는 관광대국으로 자리잡았다. 암스테리담 여행의 꽃이자 관광 1번지인 뮤지엄 광장은 미술관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빼어난 미술인프라는 문화관광의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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