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걷고 싶은 도시’ 예향의 미래다…걸으면 도시가 살아난다
세계도시들의 실험 한창
콜롬비아 보고타·덴마크 코펜하겐, ‘차없는 거리’ 시행
걷는 사람 위한 도시가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
공공시설물 정비, 대중교통수단 우선 인식변화 따라야
2022년 03월 14일(월) 18:25
도시 안에서 걷기와 휴식, 힐링이 가능한 보행(步行) 친화도시는 광주가 그려나가야 할 미래상이다.

경전선 폐선부지를 활용한 ‘푸른 길’과 순천 도심을 가르는 동천 길을 걷는 도시 산보자는 느림의 미학을 만끽한다.



◇시민권익위, ‘걷고 싶은 도시, 광주’ 실천의제 제안=“살기 좋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걷는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도시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즐겁게 걸을 수 있는 도시라면 살기 좋은 도시의 기본 조건은 갖춘 셈이다. 풍경은 원래 자연에 있었지만 이제는 도시도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걸으면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사회학자인 정수복은 지난 2009년 펴낸‘파리를 생각한다’(문학사 지성사 刊)에서 “파리를 걷다보면 수많은 삶의 이야기와 만나게 되고 그래서 철학적, 미학적, 역사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지리학적, 심리학적 성찰이 일어난다”면서 “파리는 무엇보다도 걷는 자를 위한 도시다”고 강조한다.

광주시가 ‘걷고 싶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 등 보행(步行) 친화적인 도시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선다. 광주시 시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5월 시민총회를 열고 2022년에 실천하고 싶은 3대 후보(걷기편한 길·안전한 골목길·골목상권 살리기) 의제(議題) 가운데 ‘걷기 편한 길’을 선정했다. 이어 ‘광주 시민총회 실행 TF’를 구성한 후 9월에 5개 자치구 96개동 3600여명의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 이를 토대로 추진방향과 실천계획 등을 수립했다.

시민권익위는 같은 해 12월 ‘걷고 싶은 도시, 광주’ 실현을 위한 권고문을 확정, 광주시에 전달했다. 추진목표는 ‘걸을 수 있고, 걷고 싶고, 함께 걷는 도시’로, 추진방향은 ‘쾌적한 거리, 안전한 거리, 편리한 거리, 매력(볼거리)있는 거리’로 설정했다.

‘2020 광주 시정 백서’에 따르면 수송 분담률은 ▲승용차 51.6% ▲버스 24.3% ▲택시 12.9% ▲지하철 3.1% ▲기타 8.1% 이다. 하지만 2016년(승용차 40.7%, 버스 34.7% 택시 13.3%, 지하철 3.5%, 기타 7.8%)과 비교하면 버스 분담률이 줄어든 대신 승용차 분담률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불과 4년 동안에 대중교통 수단 이용이 감소하고, 개인 승용차 운행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민 인식조사 결과와 수송분담률 변화를 감안하면 ‘걷고 싶은 도시, 광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도(步道) 등 관련 공공 시설물 정비를 비롯해 걷기와 대중교통수단을 우선하는 인식변화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통행을 막고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타임스퀘어’.
◇“걷고 싶은 도시라야 살고 싶은 도시”=그렇다면 ‘걷고 싶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들이 갖춰져야 할까?

‘1세대 도시학자’인 고(故) 강병기(1932~2007)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유고집 ‘걷고 싶은 도시라야 살고 싶은 도시다’(보성각 刊)를 통해 ‘걷고 싶은 도시의 조건’으로 ▲안전한 도시(안심할 수 있는 도시) ▲건강한 도시(도시의 건강성) ▲경제적인 편리성 ▲편안하고 배려하는 도시(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를 꼽았다. 정년 퇴임 후에도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대표를 맡아 활동했던 그는 ‘걷고 싶은가, 아닌가’라는 잣대만으로도 간단하게 한 도시의 삶의 질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刊)에서 어떤 거리는 걷기 싫고, 어떤 거리는 걷는 사람이 많은 지를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라는 잣대로 설명한다. 그는 저서에서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먼 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 위의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게 되면(높은 이벤트 밀도), 보행자는 자기 주도적인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새로운 체험이 가능하다.

또한 주변 거리의 움직임이 사람의 걷는 속도(평균 시속 4㎞)와 비슷한 값을 가질수록 사람들이 더 걷고 싶어 하는 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강남구의 정사각형 도로망이 아닌 뉴욕 맨해튼과 같은 직사각형 도로망을 만들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걷는 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 교수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려면 ‘한쪽에 지하철역이 있고 1.5㎞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으면 둘을 연결하는 길은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고 제안한다.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기 이전(1960년·사진 위)과 이후(2014년) 덴마크 코펜하겐시 중심거리인 ‘스트뢰에’( Stroget) 모습.
◇보고타·코펜하겐, ‘차 없는 거리’ 시행=‘자동차’에게 빼앗긴 도시공간을 거주자인 ‘사람’에게 되돌리고, 자동차와 보행자가 공존하는 이러한 변화는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다. 덴마크 코펜하겐과 콜롬비아 보고타 등 해외 여러 도시에서 보행자와 자전거를 우선하는 도로 설계와 ‘보행자 전용거리’ 개설, ‘자동차 없는 날’ 도입, 도심공원 조성 등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남미 콜롬비아 보고타시 엔리케 페날로사 시장은 재임 기간(1998~2000년, 2016~2019년)동안 보고타시를 자동차 위주의 도시에서 대중교통과 보행자를 위한 도시로 바꾸는 대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시클로비아’(Ciclovia·차 없는 거리) 제도가 대표적이다.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 오전 7시~오후 2시까지 특정 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아 시민들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시의 ‘자동차 없는 거리’ 정책도 눈에 띈다. 코펜하겐 시의회는 1962년 도심 중심거리인 스트뢰에(Stroget)에서 자동차 운행을 금지했다. 자동차가 급증함에 따라 도심의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심해져 도심을 자동차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할 상황에 처한 때였다. 코펜하겐 시의 선택은 차량 통행을 막고 보행자 전용 거리로 지정하는 ‘역발상’이었다. 초기 상인들의 우려와 달리 거리에 사람들이 밀려오며 주변 상점들도 번창했다. 당국은 스트뢰에 거리 실험이 성공적이자 보행자 전용 거리 지정을 점차 늘려나갔다.

광주시는 어떠한 시책으로 도심 차량유입을 줄이고, 쾌적한 보행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까?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서울시와 부산시, 대구시 등지에서 ‘15분 도시’(걷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지역 생활권 도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와 보행자가 공존하는 ‘걷고 싶은 도시 광주’는 시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걷고 싶은 도시’ ‘걷기 좋은 도시’ 만들기는 엔리케 페날로사(보고타) 시장 같은 ‘돈키호테’의 아이디어와 실천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행정 관료가 큰 밑그림을 그린다면 실질적인 나머지 그림 그리기는 시민들의 몫이다. 고(故) 강병기 교수는 저서 ‘걷고 싶은 도시라야 살고 싶은 도시다’에서 각각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을 강조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 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을 때, 그 사람에게는 도시가 없다. 물론 물리적 존재(Essence)로서의 도시라는 무엇인가는 존재하나, 실존(Existence)으로서 자기와 관계맺음 되는 도시는 없다는 말이다. 도시 속에 여러 인간 삶이 겹치고 쌓여서 도시인의 삶의 문화와 관계가 존재할 때 비로소 살아있는 도시로서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위키 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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