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만학도’ 정백안·서경임씨 부부 “학교 댕기니 좋소…글 알게 되니 참말 좋소”
목포제일정보중고
4년 전 초등 1단계 시작으로 올 중학과정 입학
성인 중·고등 학력 인정 시설 올 신입생 419명
2022년 03월 02일(수) 21:40
“학교댕기니 좋소야. 집이 가만 있어도 징합디다. 이렇게 댕기고 구경항게 참말 좋소.”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 4년 동안 초등 과정을 익히고 최근 중학과정에 입학한 정백안(79·오른쪽)·서경임(74)씨 부부의 말이다. 4년여 전 한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따라 만학도가 된 이들 부부는 배움의 즐거움에 눈을 떠 하루하루 꿈을 키워가고 있다.

목포제일정보중고에서 2일 2022학년도 입학식이 열렸다. 이곳은 성인을 위한 중·고등학교 학력인정 과정을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로, 지난 60년 동안 배움의 기회를 놓친 만학도들의 꿈을 이뤄준 공간이다.

이곳 신입생들은 저마다 배움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정씨 부부 또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정씨는 영암군 군서면, 서씨는 삼호면 출신으로 똑같이 세 살에 부모를 잃었다. 서씨의 경우 호적은 커녕 이름조차 없어 마을에서 ‘천둥이’라 불렸다.

“마을 이장님이 이름과 호적을 만들어 주셨는데, 1951년생으로 잘못 올린 호적으로 지금껏 살고 있지요. 마을 이장님이 생일과 이름을 면사무소에 등재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이제 천둥이가 아니고 경임이다. 경임이라고 불러라’고 하신 게 아직도 기억나요.”(서경임)

정씨와 서씨는 중매로 만난 이후 영암군 군서면 온천에 터를 잡았다. 영암읍장과 해남읍장에서 생선을 팔며 30여년 생계를 이어온 이들은 2남 1녀를 키워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자식 농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도 서씨에겐 못 이룬 꿈이 남아있었다. 글을 못 읽는 한을 풀고자 서씨는 정씨에게 ‘학교에 나가 한글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엔 글을 모르고서도 자식 잘 키우고 평생을 잘 살아왔는데, 이 나이에 힘들게 배워서 뭐하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아내가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 등굣길에 올랐습니다. 막상 학교에 나와 공부하다보니 여간 잘 한 결정이 아니었네요.(웃음)”(정백안)

부부는 지난 2018년 초등 1단계를 시작해 해마다 차근차근 단계를 올렸다. 지난 2020년 이미 3단계 초등과정을 마쳤지만, 자신감이 부족해 3단계를 1년 더 공부했다. 올해는 자신감을 갖고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정씨는 “영어, 수학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국어를 배워서 좋다. 글을 알게 되니 더 바랄 것도 없다”며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자식들이 모두 와서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 줄텐데 아이들이 못 와서 아쉽다”고 웃었다.

한편 올해 목포제일정보중고에는 총 419명 신입생이 입학했다. 초등학교 과정에 183명,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에 각각 79명, 155명이 입학했다. 초등문해학력인정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력을 얻은 뒤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14명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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