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이 봄에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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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국내 여행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여행의 방법과 질의 변화다. 특히 음식을 찾는, 이른바 미식 여행의 붐이 일어났다. 나는 이런 국내 ‘맛 여행’에 대한 오랜 경험이 있어서인지, 친구들이 툭 하면 전화를 건다. 어디 어디에 출장 가는데, 딱 한 그릇을 먹고 온다면 무얼 추천하겠느냐는 내용부터 제주 3박4일짜리 여행의 ‘맛 루트’까지 짜 달라는 이도 있다. 얼마나 국내 맛집에 관심과 열정이 높아졌는지, 예전에 내가 ‘발굴’했다고 생각하던 집이 그새 유명해져서 길게 줄이 서거나 ‘맛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원래 여행은 맛이 팔할이다. 다만 한국은 경제적 위상이나 문화적 기호에 비해 맛 여행이 상당히 늦게 번성하기 시작한 편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식당 안내서 미슐랭가이드가 유료로 안내서를 팔기 시작한 게 백 년쯤 되는 데 비하면 우리의 미식 여행은 아직 걸음마라고나 할까. 물론 유럽은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등으로 부르주아가 일찌감치 득세하면서 돈이 많았기 때문에 미식 문화도 동반 성장했다. 우리는 봉건시대를 지나 강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음식을 돈 주고 사먹는 문화의 기회가 늦었다.
그러다가 마치 한국이 늘 그렇듯이 압축 성장을 시작했다. 아마도 에스엔에스가 스파크를 일으킨 듯하다. 신문이 잘 나갈 때는 주말판 여행면이 큰 영향을 끼쳤다. 소개된 식당은 한동안 마비가 될 정도로 손님이 몰렸다. 70년대의 ‘길따라 맛따라’ 풍의 방송, 백파 홍성유(소설가이자 음식 칼럼니스트)가 주간지에 붐을 일으킨 맛집 소개, 김순경 선생 등 국내 맛집에 해박한 기자 출신 필자들의 기사가 한몫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은 맛집이란 말도 이젠 흔한 용어가 되었지만 80년대에 등장했었다. 여성지의 바캉스 부록에 따르던 맛집 소개 책이 역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던 때도 80년대다. 그런 시작은 이제 인터넷 블로그를 지나 에스엔에스가 담당하고 있다. 여러 매체가 같이 이런 미식을 끌고 가는 게 맞겠지만.
코로나가 위중해져서 지역의 맛있는 식당을 가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꿈처럼 여겨진다. 부산의 중앙동이나 광복동 같은 옛 거리에는 고등어가 지금 너무도 맛있을 때인데 못 간다. 기름이 자르르 올라 구워도 좋고, 무 넣고 매콤하게 지져도 내는 고등어를 못 먹다니! 또 부산에 가서 회백반 안 먹고 오면 서운하다. 명성횟집에서는 값이 헐해도 너무 헐한 회백반이 침을 돋운다. 이 집의 겨울 메뉴는 어묵백반이다. 이것은 근대의 혼재된 역사의 맛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온갖 백반집들이 지역에서 번성하지만, 그래도 대원식당을 비롯한 순천의 한식집 두어 군데는 역사 있고 격조가 잇는 밥상을 내는데, 역시 언감생심가 볼 엄두를 못 낸다. 고흥에 가서 기름이 오른 노랑가오리회도 먹고 싶고, 익산의 회관거리 영빈회관에서 한때 번성하던 화려한 이리의 질벅한 밥상도 만나고 싶다. 아, 익산은 이름도 특별한 백여사 식당에 가야 하는데….
가까운 전주는 또 어떤가. 전주는 물이 좋고 콩이 좋아서 콩나물국밥이 맛있다. 맛있다 정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이 국밥집들끼리 전투를 치른다. 마치 부산에서 돼지국밥집들이 그러하듯이. 왱이집·삼백집 같은 전설들 사이에 신흥 강호도 뜬다. 미가옥이라는 집이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 생긴다는 콩나물국밥의 격전지. 내일 또 어떤 집이 뜰지 기대된다.
전주에 전설적인 화교 중국집 홍콩반점은 사라졌다지만, 일품향의 만두는 건재하다고 들었다. 만두 하니까 생각나는데 대구 태산만두의 화교 솜씨 찐만두는 또 얼마나 최고였던가. 대구가 은근히 맛이 있는데 통닭과 떡볶이, 칼국수 같은 집들이 젊은이들에게 회자된다. 하나, 나는 종로(서울의 종로와 같은 이름이다)의 오랜 화상 중국집을 간다. 대구만의 야키우동(실은 볶은 짬뽕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르다)을 한 그릇 하고, 동무들이 있으면 전가복도 먹어야 하는데.
강원도로 올라가면 강릉의 해성횟집에 가서 삼식이 매운탕으로 얼큼하게 속을 데우련다. 회가 없는 횟집이라니. 다시 전라도로. 목포 초원식당은 아짐들이 손으로 일일이 발라낸 순살로 만든 게장무침이 일품이고, 한여름 손님 몰릴 때를 피해 요즘 가야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민어집들도 두엇 있으니, 들러서 부레와 고소한 간을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면 이 또한 혀의 호사다. 나주로 올라가서 나주곰탕도 한 그릇 하는데, 나는 이 집들의 수육이 더 좋다. 주로 머릿고기로 내는데 깊고 은근하게 삶은 고기의 맛이 한우의 진짜 맛이라고 생각한다. 마블링 좋은 구운 고기는 현대의 유행이고, 과거 우리는 삶은 소고기로 한우 맛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국수는 전국의 많은 지역이 다 한 가락 한다. 대구는 특이하게 칼국수집와 잔치국수집이 번성한다. 대전 등 충청도 지역 못지않다. 동곡할머니 국수와 이금애 잔치국수를 먹어 보면 왜 대구가 국수를 잘 다루는 도시인지 인정할 것이다. 음식으로 상상의 팔도유람을 다닌다. 이제 봄에는 진짜 가 볼 수 있겠지. 그 기대를 안고 산다. 모두들 기다리자. 힘을 내자.
<음식칼럼니스트>
코로나가 위중해져서 지역의 맛있는 식당을 가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꿈처럼 여겨진다. 부산의 중앙동이나 광복동 같은 옛 거리에는 고등어가 지금 너무도 맛있을 때인데 못 간다. 기름이 자르르 올라 구워도 좋고, 무 넣고 매콤하게 지져도 내는 고등어를 못 먹다니! 또 부산에 가서 회백반 안 먹고 오면 서운하다. 명성횟집에서는 값이 헐해도 너무 헐한 회백반이 침을 돋운다. 이 집의 겨울 메뉴는 어묵백반이다. 이것은 근대의 혼재된 역사의 맛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온갖 백반집들이 지역에서 번성하지만, 그래도 대원식당을 비롯한 순천의 한식집 두어 군데는 역사 있고 격조가 잇는 밥상을 내는데, 역시 언감생심가 볼 엄두를 못 낸다. 고흥에 가서 기름이 오른 노랑가오리회도 먹고 싶고, 익산의 회관거리 영빈회관에서 한때 번성하던 화려한 이리의 질벅한 밥상도 만나고 싶다. 아, 익산은 이름도 특별한 백여사 식당에 가야 하는데….
가까운 전주는 또 어떤가. 전주는 물이 좋고 콩이 좋아서 콩나물국밥이 맛있다. 맛있다 정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이 국밥집들끼리 전투를 치른다. 마치 부산에서 돼지국밥집들이 그러하듯이. 왱이집·삼백집 같은 전설들 사이에 신흥 강호도 뜬다. 미가옥이라는 집이다. 자고 일어나면 하나 생긴다는 콩나물국밥의 격전지. 내일 또 어떤 집이 뜰지 기대된다.
전주에 전설적인 화교 중국집 홍콩반점은 사라졌다지만, 일품향의 만두는 건재하다고 들었다. 만두 하니까 생각나는데 대구 태산만두의 화교 솜씨 찐만두는 또 얼마나 최고였던가. 대구가 은근히 맛이 있는데 통닭과 떡볶이, 칼국수 같은 집들이 젊은이들에게 회자된다. 하나, 나는 종로(서울의 종로와 같은 이름이다)의 오랜 화상 중국집을 간다. 대구만의 야키우동(실은 볶은 짬뽕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빠르다)을 한 그릇 하고, 동무들이 있으면 전가복도 먹어야 하는데.
강원도로 올라가면 강릉의 해성횟집에 가서 삼식이 매운탕으로 얼큼하게 속을 데우련다. 회가 없는 횟집이라니. 다시 전라도로. 목포 초원식당은 아짐들이 손으로 일일이 발라낸 순살로 만든 게장무침이 일품이고, 한여름 손님 몰릴 때를 피해 요즘 가야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민어집들도 두엇 있으니, 들러서 부레와 고소한 간을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면 이 또한 혀의 호사다. 나주로 올라가서 나주곰탕도 한 그릇 하는데, 나는 이 집들의 수육이 더 좋다. 주로 머릿고기로 내는데 깊고 은근하게 삶은 고기의 맛이 한우의 진짜 맛이라고 생각한다. 마블링 좋은 구운 고기는 현대의 유행이고, 과거 우리는 삶은 소고기로 한우 맛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국수는 전국의 많은 지역이 다 한 가락 한다. 대구는 특이하게 칼국수집와 잔치국수집이 번성한다. 대전 등 충청도 지역 못지않다. 동곡할머니 국수와 이금애 잔치국수를 먹어 보면 왜 대구가 국수를 잘 다루는 도시인지 인정할 것이다. 음식으로 상상의 팔도유람을 다닌다. 이제 봄에는 진짜 가 볼 수 있겠지. 그 기대를 안고 산다. 모두들 기다리자. 힘을 내자.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