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공감이라는 ‘사회 백신’-김미령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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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눈은 쌓이고 달빛은 희미했다. 박제가(1750~1805)는 생각했다. ‘이런 날 벗을 찾지 않으면 또 언제 벗을 찾겠는가’ 그는 돈 10전을 움켜쥐고, 가슴엔 ‘이소경’(離騷經)을 품은 뒤, 원각사 탑 북쪽에 있는 유금(1741~1788)의 집을 찾아간다. 유금은 반가운 친구 박제가를 맞아 해금을 탄다. 어둠은 그렇게 깊어가고 눈은 소리 없이 뜰에 가득 쌓인다. 흥이 다하지 않았는지 박제가는 시 한 수를 지어 유금에게 제안을 한다.
“올 적엔 달빛이 희미했었는데 술 마시다 보니 눈이 깊이도 쌓였네. 이때 친구가 곁에 있지 않으면 장차 무엇으로 견딜 것인가. 내게는 즐겨 읽던 이소가 있고 그대는 해금을 안고 있으니 야심한 밤 문을 나서 이덕무를 찾아가세.”(박제가 정유각집)
유금의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해금 연주에 취해있던 박제가가 문득 이덕무가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유금에게 시 한 수를 건넨 것이다. ‘그대는 해금을 안고 밤 문을 나서겠나? 우리 이덕무에게 가세나’
한 폭의 그림이, 소담한 흰 눈을 잔뜩 묻혀 우리 앞으로 걸어오는 듯하다. 유금은 이날의 광경을 이렇게 그려낸다.
“손님은 ‘이소경’을 품에 지니고/ 눈 오는 한밤중에 나를 찾았네/ 불평한 그대 마음 나는 아노니/ 광릉산(廣陵散) 한 곡조를 연주하노라.”(박제가 정유각집)
18세기를 살았던 이덕무, 박제가, 유금. 세 사람은 모두 서자 출신이었다. 그들의 학문적 역량과 문인으로서의 출중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조선은 불모지, 기회가 없는 땅이었다. 그들의 심경은 초나라 회왕에 충성하다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 굴원의 작품 ‘이소경’이 대변한다.
손에 10전을 쥐고 유금을 찾은 박제가. 10전은 아마도 막걸리값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우한 심회와 쓸쓸함이 친구를 찾게 했고, 이심전심 그 ‘불평한 마음’을 알아차린 유금은 ‘광릉산’이라는 곡조의 거문고를 연주하며,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은 그들의 심정을 보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만남 속에는 시가 있었고 음악이 있었고 철학이 있었고, 또 사람에 대한 귀함이 있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씁쓸함도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조선 사회 변혁의 복판에 서 있었던 그들. 그들이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연대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인 요즘, TV에 비친 캠페인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일명 ‘사회 백신’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의 실천 주체 역시 ‘사람’이다. 박제가가 유금을 찾고 그들이 또 이덕무를 찾듯, 우리가 사람을 찾는 것은, 또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나를 변화시키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연대와 공감’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 백신’이지 않을까 한다. 올해 내 마음은 나와 너를 향해 얼마나 마음을 높이고 키웠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유금의 집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잔을 기울이며 해금 연주에 취해있던 박제가가 문득 이덕무가 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유금에게 시 한 수를 건넨 것이다. ‘그대는 해금을 안고 밤 문을 나서겠나? 우리 이덕무에게 가세나’
“손님은 ‘이소경’을 품에 지니고/ 눈 오는 한밤중에 나를 찾았네/ 불평한 그대 마음 나는 아노니/ 광릉산(廣陵散) 한 곡조를 연주하노라.”(박제가 정유각집)
18세기를 살았던 이덕무, 박제가, 유금. 세 사람은 모두 서자 출신이었다. 그들의 학문적 역량과 문인으로서의 출중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조선은 불모지, 기회가 없는 땅이었다. 그들의 심경은 초나라 회왕에 충성하다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쫓겨난 굴원의 작품 ‘이소경’이 대변한다.
손에 10전을 쥐고 유금을 찾은 박제가. 10전은 아마도 막걸리값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불우한 심회와 쓸쓸함이 친구를 찾게 했고, 이심전심 그 ‘불평한 마음’을 알아차린 유금은 ‘광릉산’이라는 곡조의 거문고를 연주하며,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은 그들의 심정을 보듬어 주었던 것이다. 그 만남 속에는 시가 있었고 음악이 있었고 철학이 있었고, 또 사람에 대한 귀함이 있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씁쓸함도 있었을 것이다. 18세기 조선 사회 변혁의 복판에 서 있었던 그들. 그들이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연대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인 요즘, TV에 비친 캠페인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일명 ‘사회 백신’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의 실천 주체 역시 ‘사람’이다. 박제가가 유금을 찾고 그들이 또 이덕무를 찾듯, 우리가 사람을 찾는 것은, 또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나를 변화시키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람을 향해 열린 마음,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연대와 공감’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회 백신’이지 않을까 한다. 올해 내 마음은 나와 너를 향해 얼마나 마음을 높이고 키웠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